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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도 너무 다른, 말 뿐인 '젊음의 거리'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 한양대학교 앞. 군데군데 갈라진 골목. 삼겹살, 치킨호프, 곱창구이 등의 간판이 가득한 거리를 걷다 보면 바닥에 흰 페인트로 쓰여진 글씨가 눈에 띈다.

‘이곳부터 음식문화거리, 카페거리입니다’. 관련 표지판 하나 찾아볼 수 없고, 가로등 귀퉁이에 ‘카페거리’란 이름조차 없는 이곳이 바로 지난해 서울시가 ‘걷기 명소’로 지정한 ‘한양대 음식문화 카페거리’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새로운 ‘도시 정비 계획’의 일환으로 왕십리역 인근 도로를 ‘맛의 거리’, ‘젊음의 거리’, ‘꿈의 거리’, ‘즐거운 거리’, ‘열정의 거리’, ‘카페거리 둘레길’이란 테마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난 15일. 이들 도로는 어떤 변화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는 상태다. 4억원이 투입된 사업이지만 거리 이름이 써 있는 푯말조차 보기 어렵다.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사거리에서 길동 사거리까지 약 530m 구간으로 이어지는 ‘서울디자인거리’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천호대로는 과거 ‘국제 명품거리’로 만들겠다며 거리 공공시설물 디자인을 통합했지만 현재 ‘디자인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평범한 거리일 뿐이다.

서울시는 오세훈 전 시장 시절인 지난 2007년 이곳을 포함해 디자인 거리 10곳을 선정해 한 곳당 44억원씩, 무려 440억원을 투입했다. 2008년과 2009년에도 각각 10곳, 5곳을 추가해 총 25곳에 1,100억원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시장이 바뀌면서 담당사업도 흐지부지됐고, 후속 관리도 멈춰 섰다. 디자인거리 인근에서 공방 사업을 하는 최모씨는 “이 곳에서 오래 살았지만 디자인거리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다. 도시 재생한다고 많이 바꾸긴 하는데 실질적으로 유입인구가 생길만한 상권이 아니라 그냥 이름만 갖다 붙여놓은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만화거리 만든다고 동네에 작가들이 입주하기도 했지만 실망하고 다시 다른 지역으로 나가는 아티스트들도 있다”며 이름만 강조하는 실속없는 거리사업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처럼 홍보성 ‘테마’를 앞세운 거리 조성 사업은 매년 이어지고 있지만 ‘알맹이’ 없는 사업에 도시는 매번 상권 변화로 이어지지 않은 채 방치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앞서 ‘카페 거리’ 사례에서 보듯 서울시의 예산만 낭비하는 전시행정은 박원순 시장 재임 기간에도 이어지고 있다. 강동구 성내동에 위치한 만화가 강풀의 이름을 딴 ‘강풀의 만화거리’. 상대적으로 개발에서 소외되고 저층 주택이 밀집한 거리에 활기와 변화를 주고자 계획됐지만, 주택가 벽면에 관련 작품해설 몇 개만 있을 뿐 눈에 띄는 콘텐츠가 없어 부실사업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해설사 투어’를 포함해 블로그 등에서 1,000여건 이상 검색되기도 한 사업이지만 지속적인 콘텐츠가 없어 다시 발길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한 주민은 “거리 재생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 없이 예산만 확보해 쓰고 보자는 안이한 행정이 반복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강동구청이 ‘도새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조성한 강풀 만화거리. 유명 웹툰 작가 작품을 마을 곳곳에 설치해 스토리가 있는 마을로 탈바꿈하겠다 말했지만 거리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재서기자




성동구에서 부동산업체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이색, 테마거리로 바꾼다고 거창하게 말해도 결국 다시 먹자골목으로 바뀌는 게 대부분이다. 이 지역은 곱창이 유명해 곱창 먹으려고 오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상권 띄운다고 하다가 있던 곱창집들마저 뿔뿔이 흩어졌다. 사실 정작 바뀌어야 하는 건 도로, 계단 등 보행 환경인데 안 바뀌고 그대로다”고 말했다.

왕십리 앞 카페거리에서 만난 이모씨는 “여기가 그런 테마가 있는 줄 몰랐다. 그냥 원래 역세권에 있는 먹자골목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박원순 서울 시장은 16일 시내 17곳을 새롭게 탈바꿈하겠다는 ‘2025 도시재생 전략계획’을 발표했다. 영등포구 경인로, 강북 수유1동, 종로 신영동 등 일대로 서울시는 5년간 총 2,000억원을 투입해 거리 조성 및 상권 활성화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주민들을 참여시켜 지역 특성에 맞는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구체적인 활성화 방안과 관리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각 지역에서 거리가 열악하다고 판단해 사업을 신청하면 사업효과를 예측하고 예산을 주는 시스템”이라며 “거리 환경 개선 설계부터 공사까지 구에서 관리를 하는데 후속 진행 여부는 별도 관리를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실패를 반복해온 거리 활성화 사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특성을 면밀하게 파악해 지역에 뿌리 내리고 있는 사업을 키우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울연구원의 민승현 연구원은 “낙후된 지역을 살린다고 젊음의 거리 등 테마거리 사업이 추진돼 왔지만 간판 몇 개정도 바뀌는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며 “해당 지역을 이끌어갈 핵심 산업에 대한 고찰과 선택을 통해 유동인구를 늘릴 수 있는 산업적 차원의 지원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수현기자·최재서인턴기자 valu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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