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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된 대선, 다시 국가개조다] 최근 3년 법정부담금 45조...어설픈 정부개입에 멍드는 시장

<5> 올곧은 시장경제 작동

미르재단 등 정권마다 '교묘한 준조세'...법인세 대비 부담금 비중 36%

SW산업발전법·도서정가제 등 시대 착오 규제도 시장 해쳐

한국만 있는 부담금법 고쳐 경영자율권 침해 않도록 해야





지난 1987년 당시 대선후보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재계의 귀가 번쩍 뜨일 만한 약속을 내놓는다. 212개에 달하는 각종 준조세 항목을 대폭 줄이겠다는 것. 이에 발맞춰 노 전 대통령 취임 2년이 지난 1989년 경제기획원은 준조세 항목을 16개만 남기고 모두 없애겠다는 준조세 정리 방안을 내놓는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노 전 대통령은 공약대로 준조세를 전면 폐지 수준에 가깝게 줄인 셈이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22일 기획재정부의 부담금운용종합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우리나라 부담금 수는 95개다. 1980년(34개)과 비교하면 세 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법의 틀 바깥에 있는 준조세를 줄였다지만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법정 부담금은 되레 늘었던 셈이다. 또 노 전 대통령은 이른바 ‘통치자금’ 명목으로 기업에 5,000억원을 뜯어냈고 결국 그는 1997년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7년에 2,628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같은 패턴은 역대 정권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당선 이후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각종 준조세를 철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자발적’ 준조세인 기부금 부담은 더욱 늘었다. 1994년 상위 100대 기업이 낸 각종 기부금은 2조140억원으로 1993년(1조4,695억원) 대비 27.1% 늘었다. 1991년(6%), 1992년(11%)의 증가율과 비교해도 크게 높은 수준이었다. 김대중 정부 때도 대북 비료 보내기 사업에 기업의 돈 100억원이 쓰였다.

정치자금법이 개정된 2004년 이후 준조세는 법의 틀 바깥에서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기업을 옥좼다. 노무현 정부 때는 8,000억원가량 등을 내놓은 삼성그룹의 사회공헌사업 등이 준조세 논란을 겪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미소금융재단에 2조원의 돈을 기업이 10년에 걸쳐 내놓기로 했고 국책사업인 4대강 사업에도 건설사가 동원됐다. 건설 업계의 한 관계자는 “4대강 공사는 입찰 담합으로 얼룩지면서 건설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줬지만 정부의 시퍼런 서슬 때문에 그것(담합)이라도 하지 않으면 손익을 맞출 수가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기업의 자발적 부담을 강요하는 관행은 박근혜 정부 들어서 더욱 노골화했다. 박 전 대통령을 탄핵으로 몰고 간 미르·K스포츠재단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를 비롯해 청년희망펀드(880억원), 한국인터넷광고재단(200억원), 중소상공인희망재단(100억원), 지능정보기술연구원(210억원), 창조경제혁신센터 등도 기업을 반강제적으로 짜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법적 틀 안에 있는 부담금도 문제다. 부담금관리법을 통해 기업에 합법적으로 ‘이중과세’를 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법을 통해 부담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우리뿐”이라고 말했다.



세계 유례없는 법이지만 징수 규모는 해마다 늘고 있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기업이 2015년 낸 법정 부담금은 16조4,000억원. 박근혜 정부 들어서 걷어간 부담금만 45조원에 달한다. 2012년 28.6%였던 법인세 대비 부담금 비중도 2015년 36.4%까지 치솟았다.

기업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처럼 막대한 준조세를 감당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의 생사여탈권이 될 수도 있는 규제를 권력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부처의 한 관계자는 “기껏 법안이나 정책을 만들어 올리면 저 위에서도 종종 뜬금없는 조항을 집어넣어서 다시 내려보낸다”며 “그걸 자세히 뜯어보면 특정 기업이나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현실을 토로했다.

이렇다 보니 규제가 시장경제를 왜곡하는 일도 빈번하다. 소프트웨어(SW) 시장을 정부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할당하겠다는 ‘SW산업발전법’, 소비자에게 가격 할인을 금한 ‘도서정가정찰제’, 영세업자 카드 수수료 50% 인하 강제 등이 대표적인 예다.

관치발(發) 정경유착을 없애고 나아가 정부가 시장경제를 왜곡하는 현상을 근절하기 위해 준조세 관행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법인세가 세계적으로 밑이라고 하지만 조세 이외의 부담금과 준조세 등을 합하면 40%가 훨씬 넘을 것”이라며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준조세를) 하나의 범죄행위라고 정의하고 앞으로는 상당히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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