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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왜 '日치부 과거사'를 다뤘을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 통해 본 하루키 문학 세계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서

난징대학살 세밀하게 묘사

"돈벌이 욕심" 日우익 격앙

"사회적 책임 강조 문학관

80년대 초창기부터 뚜렷

과거사 사죄 수차례 밝혀"

무라카미 하루키




난징대학살 당시 일본군이 중국 일반인들을 산채로 매장하고 있다. /사진제공=위키피디아


지난 2월 일본의 주요 서점 앞에는 책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 기이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르면 6~7월 중 문학동네를 통해 국내에도 출간될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가 일본 전역에 판매되기 시작한 날의 풍경이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그 열풍은 이내 논란으로 이어졌다. 소설 속에서 1937년 12월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6주간 자행한 민간인 학살 사건인 난징대학살을 다루면서 일본 우익들의 비판이 이어진 것이다. 소설 속에서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미발표작을 그린 화가 야마다 도모히코의 동생은 난징대학살에서 살인에 가담한 죄책감에 일본으로 돌아와 자살을 택한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일본군이 전투 끝에 난징 시내를 점거해 대량의 살인이 일어났다” “전투와 관련된 살인도 있었지만 전투가 끝난 뒤의 살인도 있었다” “일본군이 항복한 병사와 시민까지 포함해 10만~40만명을 죽였다” 등 잔인무도한 묘사까지 구체적으로 담았다. 이를 두고 일본 우익 인사들은 “일본을 깎아내려 매출을 올리려는 이기주의자”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하루키는 노벨 문학상 후보로 꼽힐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소설가지만 정작 한국, 중국은 물론 자국의 순수 문학계에선 ‘가벼운 연애소설을 쓰는 작가’ 정도로 취급받고 있다. 그런 하루키가 자학사관이라는 비판까지 감수하며 논쟁적인 역사를 소재로 활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출판사 책담이 펴낸 ‘무라카미 하루키는 어렵다’에서 저자 가토 노리히노 와세다대 명예교수(문학 평론가)는 하루키의 이 같은 역사의식이 새삼스럽지 않다고 꼬집고 있다.

세상과 줄다리기하듯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그의 문학관은 초창기부터 뚜렷했다. 다만 순문학계가 이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게 노리히노의 주장이다. ‘중국행 슬로보트’ 등 데뷔 직후인 1980년 전후 하루키의 작품들은 소위 “당시 사회가 원하는 기대의 지평에 동조하지 않고 소위 반시대적인 주제를 고집했다.” 여기서 반시대적인 주제는 중국에 대한 죄책감이다. 2009년 하루키의 예루살렘상 수상 소감에서 하루키는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당시 그의 아버지가 참전 군인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며, 이에 영향을 받아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소설을 쓴 사실을 짐작케하기도 했다.

1991년 ‘태엽 감는 새 연대기’를 시작으로 하루키의 소설 세계에 본격적으로 역사가 기술된다. 이전과의 차이점은 하루키의 사회적 책임감이 뚜렷해졌다는 것. 실제로 1991~1995년 프린스턴대학 객원연구원으로 미국에 머물게 된 하루키는 “미국에 가서야 개인으로 도망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며 “그 결과 나 자신의 사회적 책임 같은 것들을 좀 더 생각해보고 싶어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1997년 하루키는 옴 진리교의 지하철 테러사건 피해자와 유족 61명을 취재해 ‘언더그라운드’라는 논픽션을 발표하고 2004년 출간한 ‘애프터 다크’에서는 ‘중국행 슬로보트’의 대사를 모티프로 중국을 대상으로 일본이 저지른 전쟁의 책임을 묻는다. 2009년 발표작 ‘1Q84’에서는 악의 화신을 단죄하는 여주인공이 느끼는 정의에 대한 혼란이 다뤄진다. 이에 대해 노리히노는 ‘1Q84’가 전쟁이 끝난 후 정의의 마법이 풀린 세계에서 과연 기존의 정의가 계속 정의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묻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하루키는 여러 차례 일본이 과거사를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혀 왔다. 그는 지난 2015년 교도통신과의 인터뷰 등에서 “사죄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며 “과거 일본의 침략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국이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사단장 죽이기’ 발표 후 최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선 “역사라는 것은 국가에 있어서 집합적인 기억이며 이 집합적인 기억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이 책임감을 갖고 짊어지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전후에 태어났다고 해서 내게 책임이 없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고도 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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