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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잘 지는' 법에 대하여

박민영 문화레저부 차장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일어난 ‘4벌타 날벼락’ 사건이 며칠째 화제가 되고 있다.

미국 선수 렉시 톰프슨은 대회 마지막 라운드 12번홀까지 3타 차 단독 선두를 달려 우승에 바짝 다가섰다. 그러나 갑자기 벌타를 4타나 받는 바람에 순위가 밀렸고 결국 우리나라의 유소연과 치른 연장전에서 패해 준우승했다. 전날 3라운드 17번홀에서 30㎝ 정도의 파 퍼트를 앞두고 볼을 집어 들었다가 원래 지점보다 약 2.5㎝ 옆에 놓고 친 것이 시청자의 제보로 알려진 탓이었다. 잘못된 지점에서 볼을 친 오소(誤所) 플레이에 대한 2타에다 이를 더하지 않고 타수를 적어낸 스코어카드 오기(誤記)에 따른 2타까지 총 4타를 보태야 했다.

톰프슨은 무척 슬펐을 것이다. 하루가 지난 일이었고 그 짧은 거리에서 손톱만큼 볼을 옮겨 무슨 이득을 보려 했겠느냐고 항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의성이 없었다 하더라도 규칙 위반 사실이 확인됐고 우승컵은 유소연에게 돌아갔다.

논란을 떠나 톰프슨의 프로다운 면모를 되짚어보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 지는’ 법을 보여줬다는 생각이다.



우승 경쟁이 한창이던 중에 경기위원에게 청천벽력 같은 벌타 통보를 받은 톰프슨은 충격에 빠졌다. TV 중계 카메라로 자주 눈가를 훔쳐내는 장면이 포착됐다. 3타 차 선두에서 졸지에 선두에 2타 뒤지는 상황이 돼 무너져내릴 법도 했으나 포기하지 않았다. 이어진 13번홀에서 긴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그는 마지막 18번홀에서도 버디를 잡아 기어코 연장 승부의 기회를 만들어냈다. 극심한 충격에도 마음을 다잡은 모습은 비록 승부에서는 졌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는 칭찬을 받을 만했다.

역전패한 다음 날 톰프슨의 태도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우선 우승한 유소연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다”며 “유소연은 좋은 경기력을 선보였고 마지막 날 일어난 일로 그의 우승 값어치가 퇴색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썼다. “경기위원회의 결정은 고통스럽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상대의 승리를 인정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기는 것은 잘하는데 지는 것은 잘 못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일등지상주의로 ‘패배는 곧 실패’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과정은 의미가 없으니 작은 패배에도 쉽게 포기하고 남들보다 무조건 잘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패배에 대한 승복은 용납이 안 된다. 스스로를 불행으로 내모는 일이다. 1등보다 1등을 못할 때가 훨씬 많은 것이 현실이다. 쿨하게 지는 법을 알아야 하는 이유다. 과정에 최선을 다하고 작은 패배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이들을 기회가 외면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수많은 사례로 입증됐다. 골프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며 삶도 마찬가지다.

/박민영기자 my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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