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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행정고시 폐지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한국지방자치학회장

지식정보사회 맞춤형 공무원 양성 도움

행정고등고시 폐지 논쟁이 대선을 앞두고 다시 불붙고 있다.

지난 1월 더불어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이 중심이 된 더미래연구소가 대선 핵심 어젠다로 행정고시를 폐지하고 7급 공채시험으로 공무원 채용을 일원화한다는 내용의 개혁안을 제안한 후 해묵은 존폐논란이 재현되고 있다. 전국고시생모임은 연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 모여 문재인 대통령후보에게 행정고시 폐지에 대한 입장표명을 요구하고 있다. 폐지 찬성 측은 수직적이고 경직된 관료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현 행정고시제로는 지식정보사회에 합당한 정책을 수립·결정하는 공무원을 양성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행정고시가 가진 시험제도의 공정성이라는 장점을 완벽하게 넘어설 대안이 나오기 전까지 개방형 직위제를 적절히 조화시키며 행정고시를 당분간 유지하자는 신중론이 맞서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작금의 한국 사회는 앞세대가 사다리 위에 올라가 다음 세대의 진입을 막기 위해 계단을 걷어찬 형세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공공기관에서조차도 민간기업에서 강조하는 성과 중심주의를 따라가며 멀티태스킹을 요구하면서 개인의 체력과 인내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민원인과 접점에서 서비스를 담당하는 하위직 공무원이 대부분의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달리 관료사회의 상층부는 특목고나 몇몇 소수의 상위 대학을 나온 행정·사법 고시출신 중심으로 채워져 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필자는 행정고시제도 폐지를 주장한다. 다만 수직적 관료제와 경직된 문화 등 부정적인 영향만을 들어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기수 중심의 끼리끼리 문화, 선후배 챙기기, 한 번의 시험 합격으로 장기간에 걸친 공무원의 계급제 사회 구현 등은 행시제도의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다. 가장 큰 문제는 수직적 계급제를 공고히 하는 현재와 같은 행정고시 중심의 관료사회는 관계망으로 형성된 수평적 사회인 복잡계 세상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상호 교류를 기반으로 한 지식기반사회에서는 걸림돌이 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와 그의 동료교수인 브루스 그린왈드가 공저한 ‘창조적 학습사회’에서 그들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케네스 애로의 학습효과와 경제발전에 관한 상관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애로는 경제발전에 성공한 국가들은 평균성과와 최고성과의 간격이 적다고 주장했다.





애로는 사회 발전이 기술진보를 의미하며 이는 연구개발과 행동학습으로 가능하다고 적시했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학습경제와 학습사회를 구축하고 사회 후생을 강화하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차이는 지식의 차이에 기인한다. 정부는 학습 결과를 공유하고 확산하는 노력을 지속해야만 이 같은 차이를 줄이고 학습사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습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가령 개미집단을 관찰해보면 실상 여왕개미의 역할은 없고 수많은 개미들의 집단지성의 힘으로 작동된다. 집단행동은 중앙집권적 명령체계가 없이도 자율적이고 산발적인 행동에서 발생한다. 즉 허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계망의 확대를 통해 고차원적인 집단행동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일련의 개체들이 서로 응집되는 것은 얼핏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것 같지만 사실은 지극히 간단한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중앙에서 똑똑한 개체가 늘어나는 복잡성을 단일한 형태로 통제하려고 한다면 그 조직은 오히려 복잡성에 압도돼 다양성을 감내하지 못하는 것이다.

행정고시를 통과한 우리나라 관료들은 우수한 인재임을 인정받아 지금 사회적 복잡성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승객들의 이동량에 따라 출구와 입구의 수가 달라지는 것을 우리는 일상에서 체험한다. 가령 행정고시 출신의 고위관료가 시간에 맞춰 출구 3개, 입구 3개를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하루 이용량이 수십 억건에 달하는 카카오톡·페이스북 등에서 오고 가는 정보는 누군가가 통제하거나 관리·감독하에 행동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발생하는 빅데이터는 정부의 정책 결정을 좌우하는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된다. 이와 같이 복잡계와 다양성을 가진 세상에서는 정부는 무엇을 지시하는 정부에서 플랫폼을 만들어줘 국민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정부로 바뀌어야 한다. 상호 연계망에서 정책 개혁의 단서를 찾아내어 학습사회를 만드는 정부가 돼야 한다. 수직적 결재 라인에 길들여 있고 이미 비(非)전문가가 돼버린 고시 출신 한 사람에게 결정을 맡기는 것은 위험천만이다.

이미 사법고시도 외무고시도 선발방법이 바뀌었다. 따라서 암기 위주의 현행 행정고시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문제은행식 출제를 통해 일정한 점수와 과목을 이수한 학생들 가운데 복합문제 해결능력에 대한 심층인터뷰와 발표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선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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