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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리포트]못 먹고 안 입어도 주근야독에 투자…소비패턴도 바꿨다

[빅데이터로 본 직장인 애환]

외국어학원 20대 비중 1.2% 감소 속

30~50대 넥타이부대는 오히려 껑충

백화점 등 카드소비 반토막났지만

직장인들 '자기계발'엔 돈 안 아껴

한 직장인이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 모 어학원 앞에서 피로에 찌든 모습으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다. /송은석기자






서울 여의도에서 증권사에 다니는 30대 직장인 장모씨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전 일과를 마치면 서둘러 사무실을 나선다. 점심시간에 잠시 시간을 내 중국어 강의학원에 가기 위해서다. 시간이 없으니 식사는 샌드위치나 김밥으로 간단히 해치운다. 이런 생활을 한 지 벌써 1년여. 장씨는 “점심시간을 카페에서 수다 떠는 데 허비하는 것보다 뭔가 하나 새로운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한 선택”이라며 “제2외국어를 배워두면 업무나 승진에 아무래도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설명했다.

중견기업에 근무하는 40대 박모씨도 지난달부터 저녁 약속을 거의 잡지 않는다. 퇴근하자마자 엑셀·파워포인트 등을 배우러 컴퓨터학원으로 달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 프로그램을 부하직원에게 맡기는 것보다 내가 직접 해야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평생직장 개념이 깨지고 고용불안이 일상화하면서 직장인들이 학원으로 달려가고 있다. 가만히 있다가는 능력 없는 사람으로 찍혀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경기침체와 소득감소로 소비는 아껴도 자기계발과 학습에 대한 투자만큼은 오히려 늘어나는 이유다. 빅데이터는 직장인들의 ‘열공’ 분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14일 서울경제신문이 BC카드 빅데이터센터에 의뢰해 요식업·학원·숙박업·백화점·대형마트·슈퍼마켓·편의점·온라인쇼핑 등 8개 주요 업종의 카드소비동향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학원업종의 지출 증가율은 34.4%로 전년(27.2%)보다 7%포인트 이상 뛰었다. 8개 분야의 카드소비 증가율이 31.3%에서 15.4%로 반 토막 났고 특히 백화점은 되레 15.7%나 감소한 것과 극명한 대비를 보인다. 증가율 상승폭이 커진 것도 8개 분야 중 학원이 유일하다.

눈여겨볼 대목은 30~40대의 외국어와 컴퓨터학원 지출 증가율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30대의 외국어학원 카드소비액 증가율은 2015년 8.5%에서 지난해 45.1%로 4배 이상 급증했고 컴퓨터학원 역시 36.1% 감소에서 35.6% 수직 상승으로 반전했다. 이러한 흐름은 40대에도 비슷하게 나타나 외국어와 컴퓨터학원의 카드소비액이 지난해 각각 59.5%, 28.1%로 크게 늘었다.



직장인의 열공 분위기는 학원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국적 규모를 가진 한 외국어학원은 전체 수강생 중 20대 비중이 지난해 1.2% 줄었지만 30~50대 등의 비중은 오히려 증가세를 보였다. 저녁 또는 주말에 외국어나 직업전문학원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역 부근에서 교재를 들고 교실을 찾아가는 넥타이부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석호 BC카드 빅데이터센터장은 “기존 현금으로 결제하던 금액을 카드로 대체하는 효과가 일부 있다고 하더라도 학원업종에서의 소비 증가율은 두드러진다”며 “경기침체와 고용불안으로 인해 직장인들이 자기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소비를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학원 안에 들어서면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분명해진다. 학원 안에 설치된 컴퓨터 앞에는 ‘직장인 환급과정’ 출석 확인을 위해 회사원들이 대기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직장인 환급과정이란 출석률이 80% 이상일 경우 정부에서 수강료의 50~80%를 환급해주는 직무능력 지원제도다. 수업을 듣는 태도도 학생보다 더 진지하다. 서울 강남에서 일본어학원에 다니는 대학생 성우진(21·가명)씨는 “수강생 중에 30대는 물론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직장인도 다수 있다”며 “수업에 초집중하는 모습은 학생인 나까지 긴장시킬 지경”이라고 말했다.

학원 관계자들의 설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의도의 한 영어학원 관계자는 “나이가 상당히 많으신 분들도 최근 더러 눈에 띈다”며 “요즈음 직장인들이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종로 컴퓨터전문학원 관계자 역시 “학원 수강생 가운데 40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기존 15%에서 최근 20%까지 늘어났다”며 “40대 이상 연령대라면 OA 관련 업무는 부하직원에게 맡겨도 되는데 조직 내 생존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정보기술(IT) 역량을 키우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학원 수강이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데 도움이 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내 한 금융회사의 인사담당 임원은 “외국어 능력과 IT 역량이 승진에 크게 플러스 되는 요인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대우조선 사태와 한진해운 파산 등 대기업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경쟁력을 키워놓아야 혹시 모를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외국계 기업 인사담당자도 “본인 실력 향상의 이유도 있지만 심리적 안정감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어학을 공부하는 직원들이 많다”며 “인공지능(AI)과 4차 산업혁명 등으로 고용규모가 점점 줄어드는 시대를 맞아 특기를 하나씩 키워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퍼진 결과”로 평가했다. /탐사기획팀 송영규 선임기자 강동효·서일범기자 skong@s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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