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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문재인 정부 노동정책이 성공하려면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장의 합리적·자발적 선택으로

정규직 확대할 시스템 구축하고

경청·공감 통한 노사정 신뢰회복

과거 정권 실패 반복하지 말아야





며칠 사이에 영 딴 세상에 사는 느낌이다. 참모들과 커피를 들고 담소 나누는 대통령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다정하게 출근길을 배웅하는 영부인을 보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대통령도 분명 사람이요, 직장인이며 남편이다. 그 평범한 사실을 깨닫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파격적이면서도 ‘즐거운’ 문재인식 개혁이 놀랍고 감동적이다.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노후 화력발전소 셧다운, 기간제 교사 순직처리,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 실험에 대한 강력한 경고까지 그야말로 준비된 대통령으로서의 면모를 한껏 보여주고 있다. 즐거운 개혁은 딱 여기까지일 듯싶다. 풀어내야 할 난제가 산더미 같다. 대통령의 결단만으로 뚝딱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다. 국민 모두로부터 박수 받기도 틀린 것들이다. 당장 노동 문제부터가 그렇다.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최저임금 등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게임은 지금부터다.

무엇보다 ‘수치’에 매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조급증도 경계해야 한다.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은 문재인 정부의 주요 공약 중 하나다. 그렇다고 ‘무슨 수를 쓰든’ 81만개여야만 한다는 식은 곤란하다. 81만개라는 수치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지독한 일자리 가뭄을 이겨내기 위한 ‘비상 식수’로서 또 새로운 민간일자리 창출의 마중물로서 제 역할을 충실히 하느냐가 핵심이다. 100만개를 만든다 해도 민간이 꿈쩍도 않는다면 아무 소용없다. 더 중요한 것은 비전 제시다. 앞으로도 계속 비정규직은 줄고 차별은 금지되며 일자리는 늘어날 것이라는 확신을 줘야 한다. 과거 정부의 실패가 수치에 매달려 조급증을 낸 탓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스템 구축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대통령의 선한 의지와 결단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지금은 비정규직 남용이 오히려 ‘합리적’ 선택으로 여겨지는 시대다. 무조건 비정규직을 뽑는 게 상책인 셈이다. 이게 병폐다. 정부가 직접 시장을 통제하는 방법도 있다. 화끈하지만 부작용도 크다.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시장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하는 묘책이 필요하다. 상시지속업무라면 정규직을 채용하는 것이 시장에서조차 합리적 선택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임시업무여서 비정규직을 쓰더라도 함부로 차별하면 큰코다친다는 것을 시장이 분명히 알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사회적 신뢰자산 쌓기에도 공들여야 한다. 노사정이 서로 불신하는 한 그 어떤 노동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마침 민주노총이 노정 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반가운 일이다. 형편없이 고갈돼버린 사회적 신뢰자산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문재인 정부라면 기꺼이 응하리라 믿는다. 정부가 노동계의 우려와 바람을 적극적으로 경청하고 진실로 공감해주기를 바란다. 법외노조 등 실질적 단결권 보장 문제에도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 노동계도 마찬가지다. 쟁취하듯 단번에 모든 것을 이루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정부의 현실적 고충을 이해하고 응답하는 용기를 내줬으면 한다. 노정 간 신뢰를 쌓아가는 것, 그게 노동정책 성공의 지름길이다. 이참에 경영계를 안심시키는 일에도 나서야 한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보수당 정부가 좋은 예다. 얼마 전 진보당의 텃밭이라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방선거에서 보수당은 33%를 득표하며 승리했다. 그 배경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있다. 노동정책에 관한 한 진보 어젠다 선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경영계를 아우르면서도 노동계의 신뢰를 얻으려 애썼다. 독일 메르켈 보수당 정부가 진보 어젠다를 선점했듯 한국의 문재인 정부가 보수 어젠다를 선점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소모적인 논쟁만 벌이다 마는 것보다는 한걸음만이라도 발을 내딛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은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제는 아니다. 더 이상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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