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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고덕119안전센터]딱딱함 대신 멋스러움...소방관 위한 '배려의 공간'

고덕 119안전센터의 전경. 건물 외벽을 검은 철제 강판으로 마감해 관공서의 딱딱한 느낌보다는 고급스러운 멋을 자아낸다. /송은석기자




‘재난에 처한 인간을 향하여, 그 재난의 한복판으로 달려드는 건장한 젊은이들이 저렇게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인간다움이 아직도 남아 있고, 정부와 국가의 기능이 정확하고도 아름답게 작동되고 있다는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인간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고, 인간만이 인간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인간만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는 그 단순 명료한 진실을 나는 질주하는 소방차를 바라보면서 확인한다.’(소설가 김훈의 ‘불자동차’ 중에서)

소방관의 존재는 고귀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 언저리에 선 그들은 늘 타인의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이런 그들에게 이 사회는 때로는 매몰차게 대한다. 그들의 노고에 비해 돌아가는 처우가 형편없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며 소방서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주민들이 기피한다는 사실은 슬프다. 이런 현실 탓에 ‘고덕 119안전센터(이하 고덕센터)’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소방관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는 건축가의 생각에 멋스럽게 지어진 이 건축은 소방관에게 보이는 최소한의 공간적 예의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고급스런 슈트’ 입은 듯한 건물

들쭉날쭉 검은 철제강판 ‘역동·신선’

외벽 119LED, 해 저물면 별처럼 빛나

관공서 건물 대부분은 딱딱한 모습이다. 경직된 외관이 일종의 권위를 드러내려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고덕센터는 이런 철 지난 무게감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대신 세련된 멋스러움을 보여준다.

이 건물은 좁은 땅 위에 건물을 지어야 했기에 기존의 불규칙한 대지 모양에 따라 기본 틀이 설계됐다. 이런 구조 위에 입혀진 건물의 들쭉날쭉한 외피는 역동적인 느낌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여기에 검은색 철제 강판이 외벽 마감재로 이용돼 신선하다는 인상을 전함과 동시에 차분함까지 더한다. 철제 강판의 소재, 검은색이라는 색상이 가져다주는 효과다. 이 강판들은 단조롭게 연결되지 않고 곳곳에 꺾여 들어가는 부분을 만들어 한껏 멋을 더한다. 조한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는 이를 두고 한 비평문에서 ‘흰색 스티칭이 들어간 고급스러운 양복 슈트’라 표현했다. 건물 상단에 있는 ‘119’ 사인(간판)도 돋보인다. 건축가는 외벽 강판에 ‘119’라는 문자 형태로 구멍을 뚫은 뒤 후면에 LED 조명을 설치했다. 해가 저물면 불빛을 받은 ‘119’에는 하늘에 별이 반짝이듯 화려함도 가미된다.

설계자인 천장환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런 형태에 대해 “소방관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접은 형편없는 것 같다”며 “다른 건물들보다 멋있게 보이고 싶었다”고 말한다. “건물이 멋있다는 호평이 소방관을 바라보는 인식에도 영향을 줬으면 한다”는 그의 설명에 비춰보면 이 건축은 소방관에게 전하는 일종의 헌사와 같은 것으로도 보인다.

■ 소방관 생활에 맞춘 공간 배치

출동 편의위해 2층 대기실 차고와 연결

차고 천장 뚫어 채광·개방감도 높여

고덕센터 내부 설계의 중심은 1층 차고에 있다. 소방관의 생활 패턴에 맞춘 설계를 하려는 노력 끝에 천 교수는 차고에 비중을 뒀다고 한다. “설계를 하기 전 소방관들과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출동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골든타임’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상황이 발생하면 앞뒤 상황을 묻지 않고 뛰어나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차고를 중심으로 설정해두고 이에 연결되는 공간을 배치한 거죠.” 이에 천 교수는 출동 편의를 최우선으로 1층 사무실, 2층 대기실을 차고와 연결했다. 출동을 위한 이동 동선을 간결하게 처리한 것이다. 차고 후면에는 유리 벽면을 배치했는데 이는 2층 대기실 등에서도 차량점검이 가능하게끔 해 수고를 덜고자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차고는 건물의 마지막 층(3층)과도 이어진다. 차고의 천장을 뚫어 만든 유리창이 3층의 중정(건물 내부의 마당)과 연결되면서다. 이에 어둡고 습했던 차고는 중정에서 내려오는 빛으로 채광이 개선됐고 개방감도 좋아졌다.

■ ‘지친 그들’에 주는 뜻깊은 힐링쉼터

“우리가 당신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센터 3층에 휴식·치유의 공간 마련

‘어제는 당신이 우리를 지켜주셨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당신을 지켜드리겠습니다.’ 고덕센터 3층 ‘힐링쉼터’에 있는 문구다. 힐링쉼터는 대원들의 휴식 및 치유를 위해 설치된 공간이다. 소방관들은 이곳에서 음악을 듣거나 상담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찾아간다.



소방관은 영웅이 아니다. 그들 또한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처참한 현장을 자주 목격하는 소방관들 중에는 최근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우울증·수면장애 등을 겪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래서 고덕센터에 마련된 힐링쉼터는 의미가 남다르다. 이런 치유의 공간을 다른 센터에서 찾기란 힘든 현실 때문이다.

원래 이 공간은 의용소방대의 회의실로 쓰일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의 지원 덕에 힐링쉼터로 바뀌었다. 이곳의 대원들도 이런 공간을 제공한 배려에 큰 만족감과 감사함을 표한다고 한다. 건축가 역시 설계가 수정돼 불쾌감을 드러낼 법도 하지만 “당연히 필요했던 공간”이라면서 “소방관들이 잘 쓸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강동소방서 고덕 119안전센터 외부에 설치된 119 사인(간판). 후면에 배치된 LED 조명으로 저녁에는 하늘의 별처럼 보인다. /송은석기자


고덕 119안전센터 3층에 마련된 중정. 중정은 1층 차고의 채광을 높이고 개방감을 확장시킨다./송은석기자


고덕 119안전센터의 중심이 되는 1층 차고의 모습. 차고는 1층 사무실, 2층 대기실과 연결돼 소방관의 출동 편의를 높이는 데 중점을 뒀다. /사진제공=천장환 교수


고덕 119안전센터 3층에 마련된 힐링센터의 내부 모습. 이곳에서 소방관들은 심리적 안정을 취한다. /사진=이완기기자




“제 건축의 가치는 새로움…가보지 않았던 길 걸어갈 것”

■천장환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



“아직은 방향이나 가치관이 명확하게 정해지진 않은 거 같아요. 하지만 확실하게 정해둔 건 있습니다. 매번 달라야 한다는 거죠. 그게 무엇이든 관행에 젖어드는 것만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천장환(사진) 경희대 건축학과 교수가 건축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새로움’이다. 설계한 작품 중 완공된 곳이 3곳뿐인 ‘신진 건축가’는 “건축은 계속 배워나가는 대상”이라면서도 “써보지 않은 방식·재료·디자인 등을 접목하며 가보지 않았던 길을 꾸준히 걸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그는 공공건축을 주로 해왔다. 앞으로도 공공건축에 힘을 쏟을 예정이라고 한다. 공공건축이 개인 건물을 만드는 경우보다 건축가의 독립성이 상대적으로 크게 보장되기 때문이다. 즉 건축적 역량을 실험할 수 있는 장은 공공 부문이 더 크다는 얘기다. “공공 분야는 주민 설득도 쉽지 않고 각종 심의도 까다롭다”면서도 “완공된 후 주민들이 만족하는 걸 보면 정말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교수라는 직책으로 학교에 몸담은 이상 공동체에 공헌해야 한다는 가치관도 공공건축에 관심을 쏟게 만든다. “제가 맡는 모든 프로젝트가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들이었으면 합니다. 돈을 못 벌더라도 이윤의 논리에 빠져 대충 하고 마는 그런 건축은 하지 않을 생각이라는 거죠. 그게 교수의 직을 달고 있는 제가 해야 하는 일종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많지 않은 경력임에도 그가 설계한 두 공공건축물이 모두 서울시 건축상 등 내로라하는 건축상을 수상했다. 천 교수의 다음 건축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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