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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 - 탄허대종사기념박물관]금강경 새긴 벽...108개 기둥...현대적 외관에 佛心·전통미 담아내

서울시 강남구 자곡동 대모산 기슭에 위치한 탄허대종사기념박물관 전경. 근현대 한국 불교의 대강백(大講伯) 탄허 스님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건물이다. /송은석기자




서울 강남 자곡동 교수마을 골목을 따라 비포장도로를 걷다 보면 대모산 기슭에 위치한 ‘탄허대종사기념박물관’과 마주하게 된다. 직사각형의 단아한 모습을 한 박물관 주위로는 낮은 건물 몇 채만이 있다. 대도시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소리와 아카시아 향기가 귀와 코를 사로잡는다. 그린벨트 지역에 위치한 덕분이다.

이 박물관은 근현대 한국 불교의 대강백(大講伯) 탄허(呑虛·1913~1983) 스님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그의 유지를 받들어 널리 부처의 가르침을 펴고 불자들의 공부와 연구를 위한 시설로 지난 2010년 11월 문을 열었다. 불교 경전을 우리말로 번역하며 대중에게 알리는 일에 평생을 바친 탄허 스님을 상징하듯 건물 외벽 한쪽 면을 금강경 전문(全文)이 새겨진 통유리로 처리한 것이 인상적이다.

2층 대강당 내부. 불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데 평생을 바친 탄허 스님을 기리기 위해 전면에 금강경 전문을 새겼다. /송은석기자


건물 입구에는 ‘백팔번뇌’를 뜻하는 108개의 녹슨 철기둥이 줄지어 서 있다. /송은석기자


▶사찰을 닮은 박물관

일주문 지나 천왕문-불이문-방산굴

입구부터 동선까지 ‘수행의 길’ 표현



박물관 입구에서 바라보면 왼쪽 옆으로 녹슨 철기둥 108개가 줄지어 서 있다. 철기둥을 지나 계단을 몇 개 더 오른 후에야 건물로 진입하는 문을 만나게 된다. 입구를 걸어 들어오면서 ‘백팔번뇌’를 떨쳐낸 후 문을 열고 수행의 길로 들어오라는 의미다. 철기둥 사이마다 쳐진 거미줄의 모습에서 살생을 금하고 자연과 어우러지는 불교의 철학이 느껴졌다.

건물을 설계한 이성관 ㈜건축사사무소 한울건축 대표는 “박물관이 사찰의 성격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입구에서부터 건물 안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전통 사찰에 들어서는 과정과 연결했다”고 설명했다. 108개의 기둥이 시작되는 입구가 일주문(一柱門·사찰에 들어서는 첫번째 문)이 되겠고 천왕문·불이문을 지나 마지막으로 가게 되는 불상이 위치한 3층의 방산굴(方山窟)이 대웅전이 되는 셈이다.

박물관 부지 1층은 필로티로 처리해 주차장으로 만들어졌고 2층은 대강당과 사무실로, 3층은 전시 공간과 예불 공간으로 구성됐다. 탄허 스님의 유품과 유묵·저서·역서를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불자들이 모여 공부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탄허스님 유지 받드는 공간

‘허공을 삼키는’ 방산굴은 법명 상징

대중이 쉽게 불교 배우도록 강당 마련



탄허 스님은 어려서 사서삼경과 노장사상을 두루 섭렵한 후 1934년 오대산 상원사에서 한암 스님을 은사로 출가, 일찌감치 학승으로 명성을 떨쳤다. 불경 번역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그는 1966년 동국역경원의 초대 역장장(譯場長)으로 추대됐고 이후 선요·능엄경·금강경·원각경·기신론·치문·초발심자경문 등 주요 불교 경전을 번역했다.

건물 외벽 한 면을 장식한 금강경은 내부인 2층 대강당의 전면에도 새겨졌다. 부처가 화엄경을 설법한 궁전의 이름을 본떠 ‘보광명전(普光明殿)’이라고 이름 붙인 이 대강당은 탄허대종사기념박물관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대중들이 불교를 쉽게 배워야 한다는 탄허 스님의 유지에 따라 이곳에서 불자들이 모여 불경을 공부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불교 강좌도 열고 있다.

3층으로 올라가면 탄허 스님의 유품이 전시된 상설전시실인 일소대(一笑臺)가 나온다. 탄허스님이 화엄경을 처음 번역한 영은사 일소굴(一笑窟)에서 따온 이름이다. 탄허 스님이 출간한 15종 74권의 저서와 140점의 서예, 비명 탁본, 사진, 유물 등과 함께 그가 아끼던 고서 4,000여권이 전시돼 있으며 스님의 생전 모습과 음성 시청도 가능하다. 일소대 맞은편에는 불상이 있는 방산굴이 있다. 방산굴은 기둥 없이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설계돼 ‘허공을 삼키다’라는 뜻인 탄허 스님의 법명을 공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불상 뒤쪽으로는 또 다른 불교 경전인 원각경이 씌어 있다. 불상 위로는 천창을 내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예불 공간인 3층 방산굴의 모습. 천창을 통해 빛이 들어오는 모습이 마치 불상 위에 조명이 설치된 듯하다. /송은석기자


▶전통 사찰의 현대적 재해석

직사각형 건물 외관에 오색단청 처마

일주문에서 대웅전 이르는 과정 매칭

탄허대종사기념박물관은 전통 사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직사각형 건물 외관은 현대적인 느낌을 주지만 입구에서부터 건물에 들어서 이동하는 동선을 전통 사찰의 일주문-천왕문-불이문-대웅전에 이르는 과정에 매칭한 것도 인상적이다. 또 외벽과 방산굴 사이의 작은 틈 사이로 오색단청의 처마를 둬 전통미를 더했다.

2층 대강당의 외벽을 위로 접어 올리도록 설계한 것은 파격에 가깝다. 버튼을 누르면 높이 약 2m, 너비 7.5m의 거대한 벽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면서 내부와 외부 공간이 하나로 연결되도록 했다. 이런 문을 만들 수 있는 창호회사를 찾지 못해 항공기 격납고를 설계하는 회사에 주문 제작했다고 한다.

불교 사찰의 고정관념을 깬 시도로 업계의 관심을 모은 이 건물은 2010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민간 부문 대상을 비롯해 서울특별시건축상 최우수상, 한국건축가협회상, 제1회 김종성건축상을 잇따라 수상했다.

/노희영기자 nevermind@sedaily.com

이성관 한울건축 대표 “무겁고 압도적이기 보다 편하게 찾을 수 있는 공간”



“탄허대종사기념박물관은 현재진행형인 공간입니다. 탄허 스님의 유품 등을 전시하며 그분을 기리는 동시에 후대의 불자들이 모여 기도하고 공부하는 사찰의 역할도 하는 곳이지요.”

건물 설계를 맡은 이성관 ㈜건축사사무소 한울건축 대표는 “박물관의 이 같은 특성을 고려해 전통적 사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현대적 건물에 불교 경전인 금강경 전문을 외벽 통유리창에 새긴 것이나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108개의 녹슨 철기둥을 입구에 배치한 것 등이 대표적이다. 직접적으로 또는 은유적으로 전통 불교 사찰의 요소들이 건물에 녹아들도록 한 것이다.

건축가로서의 욕심이나 작가로서의 에고(ego)를 배제하고 철저히 이용하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을 배려하려는 평소 건축철학을 이 건물에도 담으려 노력했다고 그는 밝혔다. 이 대표는 “불교계의 고승인 탄허 스님을 기념하는 공간이라고 해서 무겁고 압도하는 듯한 건물을 짓기보다는 재가불자들과 일반 방문객들도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밝은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개체들 간의 관계’에 주목하는 건축가다. 같은 건물도 어떤 장소와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 주변과 자연스러운 관계가 될 수 있지만 어색하고 불편한 관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과의 관계에서 이상적인 만남이 이뤄질 때 비로소 좋은 건축물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변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건축은 순수예술과 다르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유명한 입체파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게르니카’를 예로 들었다. ‘게르니카’가 스페인에 있건, 한국에 있건, 어느 장소에 있어도 작품에 담긴 공포라는 감정이 희열로 바뀌지는 않는다. 반면 인적 없는 넓은 들판에 세워진 유리로 만들어진 집은 멋질지 몰라도 빌딩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대도시에 똑같은 집이 들어선다면 그것은 집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건축가가 특정한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스스로 한계를 지우고 족쇄를 차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장소와 상황에 맞게 다양한 시도를 할 때야말로 창작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노희영기자 nevermind@sedaily.com

이성관 건축사사무소 한울건축 대표./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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