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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홍우칼럼]판도라의 상자, ‘사드’…뗄테면 떼라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hongw@sedaily.com

한미회담 前 '문재인 흔들기' 극성

정부, 단호해야 난맥 탈출 가능

文 대통령, 정상회담서 당당해야





종잡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생각을. 특히 주한미군에 배치된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발언도 제각각이다. ‘한국이 사드 배치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고 말해 한국인들의 속의 긁더니 배치 지연에 진노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미국의 여론도 마찬가지다. 헷갈린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문제로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을 몰아붙이지 말아야 한다”는 뉴욕타임스(NYT)의 사설이 나오는가 하면 “사드 배치 번복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철수의 구실을 줄 수 있다”는 협박까지 나온다.

트럼프의 입장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확실한 게 하나 있다. 한미 정상회담 테이블에 앉게 될 문 대통령에게 유리하다고 할 수 없는 국내 언론의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 선출된 권력과의 암묵적인 밀월 기간(honeymoon period)이 사라졌다. 정상외교에 나서는 대통령을 국내 언론이 지금처럼 흔들어댄 적이 있던가.

사드 문제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누구도 풀기 어려운 난제다. 둘째, 전 정권이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질렀다. 지금 상황에서 신속하게 배치한다고 치자. 미국이 고맙다고 할까. 반대로 환경영향평가가 제대로 시행되거나 사드 배치 자체가 없던 일이 돼도 중국이 고맙게 여길지 의문이다. 한 마디로 세계의 슈퍼파워 1, 2위에 끼어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다. 눈 감고 생각해보자. 한미 양국이 사드 배치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지난 2016년 2월 이전에, 한국과 미국·중국 간 물고 물리는 갈등이 빚어진 적이 있는지.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과 외교 마찰 가능성을 둘러싼 논란만 있는 정도였다.

이 대목에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하나 있다. 왜 전광석화처럼 결정을 내렸는지 규명이 필요하다. 미국이 탄도미사일 방어체계에 한국의 참여를 종용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쳐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압력을 받았으나 하나같이 피해왔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과 전역방위(戰域防衛·MD)로 이름만 바뀐 미국 주도의 탄도미사일 방어망 참여요구를 역대 정부가 수용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할 위험을 피하려는 의도였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역대 정권이 기피한 무기 체계를 박근혜 정부가 덥석 받아들인 이유도 설명하기 어렵지 않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한껏 높아진 안보 위기감을 활용하는 데 미국과 전 정권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은 숙원 과제인 탄도미사일 방어망에 한국을 끌어들여 한미일 삼각 안보체제를 다지기를 바랐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도 4·13 총선에서 안보를 선거 이슈로 삼고 싶었다. 애초 배치 논의가 국방부 실무진도 모른 채 청와대 안보실 주도로 진행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사드는 상징물일 뿐 미국이 바라는 여정은 따로 있다. 국방부는 사드 배치→MD 편입→한미일 삼각 안보동맹 체제 강화라는 미국의 로드맵이 실현될 가능성을 여전히 부인한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반대에도 한일위안부 협정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체결된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과 일본을 하나로 묶어 떠오르는 중국에 대응하려는 동북아집단안보체제를 위해 한국과 일본 간 억지 화해를 미국이 종용했던 탓이다.

박근혜 정권이 북한의 핵실험을 명분 삼아 신경질 내듯이 사드를 받아들인 뒤의 행태 역시 문제다. 사드 체계의 발사대 2기가 3월6일 새벽에 기습적으로 배치된 점은 ‘알박기’에 다름 아니다. 국민의 심판을 받아 탄핵재판을 기다리는 박근혜 정부를 대신 운영하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결정은 절차상으로 타당했던가. 미국은 합법적으로 배치가 이뤄졌다고 주장하지만 스스로 격을 깎아 먹는 궤변일 뿐이다. 절차적 정당성은 외국과 관계 이전에 민주주의의 보루다.

전 정부가 열어 놓은 판도라의 상자인 사드 문제를 떠안게 된 문재인 정부는 대미·대중 협상에서 보다 당당해져야 한다. 한국에만 희생을 강요하는 두 나라는 세계를 이끄는 대국답지 못하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에 사드 보복의 치졸함을 항의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도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정말 사드를 철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하시라.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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