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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아현동 뮤지스땅스] 버려진 지하도가 인디밴드 위한 아지트로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위치한 ‘뮤지스땅스’. 버려진 공간이었던 지하도가 독립음악인들이 모여 음악 작업을 하거나 연습을 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권욱기자






“음악이 없는 인생이란 고통일 뿐이고 오류이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이런 말처럼 음악은 우리 세상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태초부터 노년에 이르는 생애사에서,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심지어 혁명의 순간까지 음악은 늘 함께한다. 하지만 이런 음악의 무게감에 비춰봤을 때 우리 주변에서 음악 또는 음악인만을 위한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다. 특히 기성의 질서에 반기를 드는 비주류를 자처하는 그것일수록 더 흔치 않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지하에 마련된 ‘뮤지스땅스’라는 공간은 그래서 뜻깊은 장소다. 음악을 뜻하는 ‘뮤직(Music)’과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대항한 프랑스의 지하 독립군 ‘레지스탕스(Resistance)’를 붙여서 이름을 지은 이곳은 갈수록 설 자리를 잃어가는 인디밴드를 위해 마련된 곳이다.

출입구를 통해 내려오면 비틀스·뮤즈 등 유명 가수들의 포스터가 걸려 있어 음악인들의 공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권욱기자


■보면 볼수록 매력있는 ‘음악 소굴’

1,273㎡ 지하공간에 작업실…밴드연습실…

유명 뮤지션들도 즐겨 찾는 ‘핫플레이스’

‘뮤지스땅스’는 마포구 아현동에 자리 잡고 있다. 6차선 대로와 대형 아파트 단지 사이 지하 한쪽에 마련된 공간이다 보니 쉽게 눈에 띄지는 않는다. 출입구나 외관이 화려하지도 않아 더 그렇다. 하지만 이곳의 과거와 현재의 변모 과정을 돌아보면 일종의 마법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흔히 지하라는 공간은 음침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연상하는 고립된 곳을 상상하기 쉽다. 이곳 역시 그랬다. 당초 지하철 구조물의 하나였던 이곳은 버려진 공간과 같았다. 물론 마포문화원이라는 시설이 들어섰던 적도 있었지만 이들이 신청사로 이전한 뒤 또다시 버려진 공간이 됐다. 이렇게 빈 곳에 방황하는 청소년, 노숙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런 공간을 활용할 방법을 찾던 과정 중 마포구와 문화체육관광부, 그리고 비영리 사단법인 한국음악발전소가 음악인을 위한 곳으로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이에 문체부가 35억원의 자금을 지원하고 마포구가 장소를 무상으로 대여해 지금의 뮤지스땅스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지하 1,273㎡(연면적)의 지하공간에는 현재 소규모 공연장과 녹음·믹싱·마스터링이 모두 가능한 전문 녹음실, 5개의 개인 작업실과 2개의 밴드 연습실 등이 들어섰다. 이에 젊은 음악인들이 드나들면서 활력이 생겨났고 여기에 지하 특유의 감성과 맞물려 현재의 ‘힙한’ 공간으로 재탄생됐다. 그리고 이제는 페퍼톤스·루시드폴 등 유명 음악인들도 자주 찾는 공간이 됐다.

‘뮤지스땅스’ 공연장. 이곳에서 관람객 약 50명 수준의 소규모 공연을 가질 수 있다. 유명 음악인들의 강연도 이곳에서 열린다. /권욱기자


■음악인에 의한…음악인을 위한

‘땅’ 이라는 호칭 덧댄 공연장과 스튜디오

가수 최백호와 직원들 상상력·감성 묻어나

이 지하공간의 변모 과정에는 뮤지스땅스의 소장을 맡은 가수 최백호씨를 비롯한 그의 직원들의 상상력이 많이 묻어나 있다. 현재 지하 특유 감성을 일으키는 회색의 기둥, 지하 2층에 있는 카페 같은 휴식 공간, 녹음실 구조 등은 최씨가 생각해낸 작업의 결과다. 뮤지스땅스라는 이름 역시도 최씨의 고안이다. ‘라이브땅(공연장)’ ‘스튜디오땅(녹음실)’ 등 지하라는 공간을 생각해 ‘땅’이라는 호칭을 덧댄 것도 최씨의 생각이다.

“설계안 초안은 우리가 지향하는 콘셉트와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독산동에 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 ‘스타덤’ 사옥과 유명 스튜디오, 녹음실을 참조하고 저희의 생각을 반영한 끝에 현재의 공간으로 바뀐 겁니다.” 스타덤 사옥은 독산동의 낙후된 재래시장을 힙합 장르를 베이스로 한 음악을 창조하는 공간으로 재탄생된 곳으로 지난 2013년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은 작품이다.



물론 작업 당시 설계 사무실 등과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주변인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어 뿌듯하다는 생각이다. “음악인의 공간은 음악인들이 가장 편안할 수 있는 공간이 우선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또 “이 건물이 건축상 두 번 받았는데, 그거 사실 저희도 받아야 하는 건데”라며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건물 한쪽에 있는 낡은 기둥은 가수 최백호씨의 생각에 따라 원모습 그대로 남긴 것이다. / 사진=권욱기자


■설자리 잃어가는 무명 뮤지션들을 위해

직접 음반 만들어주고 공연기회도 제공

실력있는 음악인 위한 프로젝트 만들어

“음악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그래서 음악의 기초토대인 밴드나 연주자들이 튼튼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앞으로 K팝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최씨는 말한다.

인디밴드들은 대중음악계에서 존귀한 존재다. 하지만 그들의 터전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이에 그들은 기회를 잃고 대중의 관심으로부터도 멀어져간다. “실력이 없다면 제가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실력 있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런데 홍대 클럽 다 없어지고 기회가 자꾸 사라져 빛을 못 보는 경우가 생겨나죠. 그래서 우리가 이 공간이 소중하다는 겁니다.” 이에 뮤지스땅스는 인디밴드들에 여러 기회를 제공하려 노력한다. ‘무소속프로젝트’가 그중 대표적인 경우다. 실력 있는 음악가를 대상으로 음반을 만들어주고 공연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하지만 이 역시도 쉽지는 않다. 현재 지원금이 줄어 잠정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최씨는 “우리가 원하는 정도의 지원만 있다면 더 좋은 공간으로 꾸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독립음악인의 지하본부’ 뮤지스땅스가 나온다. / 사진=권욱기자


“독립음악인 위해 꼭 필요한 공간…정부 지원금 줄지 않았으면”

‘음악인의 지하본부’ 수장된 ‘낭만가객’ 최백호

최백호 뮤지스땅스 소장


“인디밴드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아마 소외감일 겁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느끼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인디밴드들이 독립적인 음악을 추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젠가 스타가 되고 싶어하는 의식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지원하는 뮤지스땅스가 중요한 겁니다. 하지만 지금 문제는 예산지원금이죠.”

가수 최백호(사진)씨 이름 앞에는 언제나 ‘낭만 가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리를 들어보렴’이라며 낭만을 노래하던 그는 이제 독립음악인들의 지하본부 ‘뮤지스땅스’의 수장이 돼 인디밴드 지원을 도맡았다.

그는 요즘 하루가 모자를 정도로 뛰어다닌다. 정부의 지원금이 줄어 걱정이 크기 때문이다. 지원금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공간이지만 자립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는 게 정부의 논리다. 하지만 자립을 하려면 수익을 높이거나 협찬이 늘어나야 한다. 이런 두 가지 선택지 모두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우선 독립음악을 지원하려는 기업은 많지 않다. 또 수익성을 높이려면 이용료를 높여야 한다. 그럴 경우 설 자리를 잃어가는 독립음악인을 돕겠다는 본 취지에서 벗어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 이곳도 새벽 2~3시까지 문을 열어둬야 되는데 지금은 11시까지만 할 수밖에 없어요. 개방 시간을 늘리면 직원을 더 써야 되고 지출이 늘어나는데 지금은 할 수 없는 상황이죠.” 정부의 예산이 늘어나는 것을 희망하는 것인지를 묻자 “예산을 늘리기는커녕 줄이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완기기자 kinge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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