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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스토리]정락현 개암죽염식품 "거센 불길 9번 견뎌내야 ‘힐링 솔트’…인생도 그런 것 아닌가요"

학창시절 폐결핵으로 절에 요양

자연스레 스님 비상약 죽염 접해

45일간 인고의 시간 거쳐 탄생

'소금 굽는 일' 40년 외길 걸어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세 가지가 있다. 공기·물 그리고 소금. 공기와 물은 자연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지만 소금은 많은 땀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을 ‘소금 같은 존재’라고도 한다.

국내 1호 ‘죽염명인’으로 꼽히는 정락현 개암죽염식품 대표는 여기에 한술 더 떠 ‘죽염 같은 존재’가 되라고 한다. 40년 넘게 죽염과 함께 외길을 걸어온 장인다운 말이다.

그는 중학교 때 폐결핵과 피부질환이 심해 학교조차 가지 못했다. 고향인 전북 부안군 상서면에 있는 개암사에 들어가 2년간 요양을 했다. 소년은 스님들이 대나무에 소금을 넣고 불길을 여러 번 지피는 것을 어깨너머로 지켜봤다. 1,4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산사에서 예로부터 내려온 스님들의 비상약인 ‘죽염’이었다. 그와 소금의 인연은 이렇게 맺어졌다.

“어린 시절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죽염을 접했습니다. 당시에는 자세히 몰랐지만 죽염에 어떤 생명의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죠. 그때부터 제 머릿속은 온통 죽염으로 뒤덮이면서 이후 우리나라와 중국의 소금이나 민간요법과 관련된 의학서적만 수백 권을 읽었습니다. 덕분에 지금도 한자에는 통달했을 정도죠.”

지난 28일 서울 양재동에 있는 개암죽염식품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그는 자신이 가장 재미 있어 하는 일을 ‘소금 굽는 일’이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수십 년간 구워오고 있지만 지금도 즐겁기만 하단다. 죽염과 관련된 책도 두 권 집필했다. 그는 “죽염은 오랫동안 인내를 갖고 땀을 쏟아내야 가질 수 있는 보물이자 역사가 1,300년이나 된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매우 한국적인 식품 가운데 하나”라고 자신했다.

그렇다. 무려 45일 동안 아홉 번의 불길을 거쳐야만 일반 소금이 ‘힐링 솔트’로 탈바꿈한다. 미네랄이 풍부한 천일염을 깊은 산속에서 퍼낸 황토를 녹인 지장수와 버무려 3년 이상 된 재래종 왕대나무에 다져놓고 황토 토굴에서 700도의 온도로 꼬박 이틀간 굽는다. 불길이 사그라들면 소금 기둥을 꺼내 빻은 뒤 다시 새 대나무에 넣고 또 이틀간 불을 지핀다. 이런 과정을 8번 반복한다.

“마지막 아홉 번째는 불길의 온도를 2,000도까지 높여 소금 속의 독이나 중금속을 완전히 사라지게 합니다. 참나무 등 다른 나무는 독성분이 나오기 때문에 반드시 소나무만으로 불을 지핍니다. 고온을 위해서는 송진도 필수죠. 이렇게 하면 비로소 붉은색을 띤 자죽염이 탄생합니다. 대나무 안의 얇은 막(죽여·竹如) 성분으로 인해 몸에 좋은 천연유황 성분도 소금에 스며듭니다.”

정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죽염이 민간요법의 굴레를 넘어 어엿한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바로 요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죽염치약을 정 대표가 1992년에 개발한 것.

“당시 죽염을 들고 무작정 럭키(현 LG생활건강) 임원을 찾아가 죽염 치약의 가능성을 2시간가량 설명했습니다. 처음에는 잡상인 취급을 받았는데 자세히 설명을 들은 럭키 측이 오케이 하면서 죽염치약이 첫선을 보인 것입니다.”

죽염치약은 이후 승승장구하면서 지금까지 1조원어치 이상이 팔려 나갔다. 최근에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로 소비재들이 중국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지만 죽염치약만큼은 인기를 그대로 유지할 정도로 중국인들로부터도 베스트 인기 제품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개암죽염은 지금까지 LG생활건강에 25년간 죽염을 납품해왔다.

끈질긴 도전으로 죽염치약 첫선

지금까지 1조원어치 팔려나가

알칼리성 높은 ‘생명의 식품’

죽염음료 등 저변확대에 올인



어릴 적 병치레가 심했던 정 대표는 죽염으로 새 삶을 찾았다고 굳게 믿는다. 따라서 그의 운명도 죽염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길이라 여긴다. 그는 한때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으로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한 1987년 현대종합상사에 입사했지만 불과 10개월 만에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이상하게도 계속 머릿속에 죽염 만드는 일만 떠올라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시골에서 대학까지 보낸 후 번듯한 직장에 다니다가 소금 굽겠다고 고향에 내려온 자식 때문에 부모님이 무척이나 마음고생을 하셨습니다.”



낙향한 정 대표는 곧바로 어릴 적 요양했던 개암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죽염 공장을 세웠다. 지금은 규모가 2만㎡에 달해 국내에서 가장 큰 죽염공장으로 발전했다. 이곳에서는 한 해에 죽염 300톤과 30여가지의 제품이 생산된다. 덕분에 개암사가 죽염사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40여명이 일하는 개암죽염공장의 경우 직원의 80%가량이 30년째 함께 일하는 창립 멤버여서 회사라기보다 차라리 생활공동체에 가깝습니다. 상당수의 직원은 아침저녁으로 농사까지 짓고 있을 정도니까요.”

그는 현재 한국죽염공업협동조합 이사장도 맡아 죽염의 저변 확대와 세계화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특히 조만간 국내에 ‘죽염 음료’가 등장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국내의 한 식품 대기업과 개암죽염을 이용한 음료 상품을 만들기 위해 현재 원료 납품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것. 죽염을 활용한 제품이 그야말로 무궁무진해 부가가치가 크다는 방증이다.

“현재 국내에는 죽염 제조사가 70여개 정도 됩니다. 죽염 자체의 시장 규모는 1,000억원 수준이지만 이를 활용한 건강식품이나 생활용품 등 100여가지를 합치면 수천억 원대로 커집니다.”

2015년 해양수산부가 처음으로 그를 1호 죽염명인으로 지정하면서 그의 죽염사랑은 정부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 무역 신시장 개척과 중소기업 발전 등에 기여한 공로로 두 번씩이나 대통령 표창을 받고 올해 3월에는 국가산업 발전 공로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정부로부터 죽염명인 인증을 받은 날이 9월23일입니다. 그런데 이날이 제 생일이거든요. 정부가 제 생일에 맞춰 인증을 해줬을 일은 없는데 이런 것만 보더라도 죽염과 제 인생이 보통 인연은 아닌 듯합니다.(허허허).”

그는 죽염을 대하는 일부 사람들의 그릇된 인식에도 일침을 놓았다. 죽염의 경우 효능과 관련해 이미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저널에 관련 논문이 7~8편 발표됐을 정도로 과학적 입증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태클’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과학적 분석을 해보면 일반 소금은 산성도(PH)가 4~5인 약산성인데 죽염은 9 이상의 알칼리로 변하고 자죽염은 13의 강알칼리성으로 바뀝니다. 몸에 좋은 음이온 수치도 높죠. 일반 소금이 성인병의 원인이 되는 것과 달리 죽염은 생명의 식품입니다. 요즘 물·공기는 정화해 사용하는데 가장 중요한 소금을 그대로 섭취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한영일기자 hanul@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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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전북 부안 △1980년 전북 부안농고 졸업 △1987년 광운대 경영학과 졸업, 현대종합상사 입사 △1988년 개암죽염식품 설립 △1992년 ‘대나무 소금’ 출간 △2011년 죽염협동조합 이사장 △2013년 중기인 대회 대통령 표창 △2015년 1호 죽염명인 지정 △2016년 ‘자죽염을 알면 장수의 길이 보인다’ 출간, 무역의날 대통령 표창 △2017년 상공의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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