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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십니까]종교인 과세 유예-찬성

문병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성직자, 근로자 아냐...공개적 협의 필수

2년 유예됐던 종교인 과세 시행을 또다시 미루자는 법안이 발의돼 논란이 불붙고 있다.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25명은 지난 9일 과세를 유예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15년 말 국회를 통과한 소득세법은 종교 비영리법인에 소속된 목사·스님 등이 얻는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번 과세유예 법안이 통과되면 내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한 종교인 과세가 오는 2020년 1월로 미뤄진다.

종교인 과세유예 찬성 측은 2년 동안 과세당국과 종교계 간에 충분한 협의를 거쳐 철저한 사전준비를 해야 과세가 연착륙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대 측은 재차 2년을 미루는 것은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세금을 내야 한다는 조세공평의 원칙을 실현할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문병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몇년 전부터 기획재정부에서 추진해오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돼 시행을 앞둔 종교인 과세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언론의 논조나 정부의 입장 그리고 정치권의 대체적 시각은 이를 더 이상 미룰 명분도, 실리도 없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를 반대하는 기류도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적지 않은 수의 국회의원들이 이를 거부하는 입장을 공공연히 표명했으며 이에 힘을 싣는 세무학자들도 적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심지어 세정(稅政)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에게조차 굳이 이를 서둘지 말고 한 차례 더 유예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없지 않다고 들린다. 무엇보다 과세 대상이 되는 종교계의 입장이 첨예하고 대립돼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종교인 과세에 찬성하는 측은 조세평등주의를 규정한 헌법 제38조의 납세의 의무를 강조한다. 이를 통해 종교가 사회적 신뢰를 높일 수 있으며 나아가 정부의 사회보장 혜택에도 참여할 수 있으리라는 주장이다. 한편 종교인 과세에 반대하는 입장은 성직자들이 받는 사례는 노동의 대가로 지불되는 임금이 아니라 일종의 봉사에 대한 은급(恩給) 혹은 사례비 개념으로 봐야 하므로 그것에 세금을 매긴다는 것은 이중과세의 여지가 있다는 점, 현실적으로 세금을 부담하기에 열악한 종교인들의 실상, 세수파악의 어려움, 조세강제를 통한 교회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감시 우려 등을 논거로 든다.

세금 징수를 앞두고 벌어지는 이러한 논의를 무조건 백안시하고 어느 한쪽으로 여론몰이하듯이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본 사안은 단지 하나의 조세항목을 검토하는 일이 아니라 서구사회가 오랫동안 진통을 겪어온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본질적 고찰이 요구되는 중요한 문제다. 성직자에 대한 비과세는 1948년 정부 수립 때 정립돼 지금까지 무려 70년 가까이 시행돼온 일종의 불문법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충돌하는 입법을 하려면 각계각층과 종교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신학적이거나 법학적인 전문 의견을 청취하는 등 적정절차가 공개적으로 이뤄져야 했다. 그러나 정부가 이를 추진하는 과정은 그리 원만해 보이지 않는다.



현 단계에서 종교인 납세를 전격 시행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과 부작용이 따를 것이다. 당장 정확한 세원 파악과 적정한 수세에 고충이 따를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통한 세수 확보는 극히 미미할 것이며 성직자를 근로자와 같이 여김으로써 생기는 사회보장, 노조 결성, 최저임금제, 적정 노동시간 등의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세금 있는 곳에 복지 있다.” 이것이 과세의 제1원칙이다. 국세청은 적절한 세원 확보와 적정한 수세만 하면 되지만 정부는 그에 따르는 막대한 복지비 지출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작금의 현실은 교회의 80% 이상이(5만5,000개 교회 중 4만5,000개) 자립할 수 없는 형편이며 12만 목회자 중 면세점(월소득 약 150만원)을 넘는 과세 대상자는 2만명에 불과하다. 국가가 교회의 과세 문제를 복지대책 강구 없이 단지 세원과 세수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본다면 그야말로 후진적 조세행정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종교인 과세 문제는 단지 국가재정·세무행정적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헌법이 종교의 자유를 별도로 둔 것은 국가가 종교를 적극적으로 돕고 이를 활성화함으로써 종교만이 고유하게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을 종교에 맡겨 국가와 그 구성원의 격을 높이기 위함이다. 교회는 본질상 영리를 추구하는 모임이 아니다. 성경은 성직자의 영리 목적 근로를 금하고 있다. 성도의 순수한 신앙과 헌신으로 한국 교회는 국가와 사회에 선한 기여를 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근래에 불거진 몇몇 교회의 병폐를 침소봉대해 이를 빌미로 종교인 과세의 구실을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지금은 성직자 과세에 손댈 때가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종교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구현해 선기능을 극대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다. 정부는 세원 확보에만 주력하는 단선적 사고에서 벗어나 국가와 교회의 역동적 관계성에 주목해야 한다. 정부는 조세강제라는 무기에만 의존하지 말고 교회와 성도가 정치의 바람으로부터 완전한 제3지대에서 마음껏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더욱 확충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교회가 국가를 위해 양심껏 일할 수 있는 인권·구제·복지·문화 영역 등을 개발해야 한다. 봉사하고 싶어도 할 기회도 없고, 모처럼 기회가 주어져 하고자 해도 곧 할 마음을 잃어버리게 하는 미성숙한 현실을 바꿔야 한다. 국가는 이에 부응하는 성숙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성직자 납세에 관한 입법이 과연 이런 부분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대는 어느 때보다 종교를 통한 영혼의 안식과 치유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우리 사회가 현대의 여러 병리로부터 벗어나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가치를 더욱 귀하게 여기는 풍조를 회복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종교인 비과세를 견지해온 것은 납세 이상의 종교적 헌신을 기대하며 종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돕고자 했던 근대법 정신에 정확히 부합한다. 조세는 합법적이어야 하지만 합목적적이어야 한다. 국가는 종교가 가장 종교답게 되도록 돕고 종교인들의 고유한 헌신을 격려할 때 그만큼 격이 높아진다는 점을 경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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