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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發 기업 피해 확산] "납품가 내려라" 압박 받는 2·3차 협력사...'위기 도미노' 현실화

<기아차 판결 이후 현장에선>

판결당일 기아차 1차 협력업체서 "10% 인하를" 공문

하청사 "납품물량 사전 제작...거래 끊길라" 거절도 못해

추가 소송 대비 자금줄 죌 땐 피해규모 훨씬 더 커질 듯





일부 기아자동차 2차 협력업체들이 통상임금 판결 이후 원청(1차 협력업체)으로부터 단가 인하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통상임금 판결 이후 기아차가 흔들리면 여기에 납품하던 하청업체 또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난 6일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A업체 박모 사장은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통상임금 판결이 난 당일 위(1차 협력업체)에서 납품단가를 10% 내리라며 공문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 업체는 기아차와 직접 거래하는 1차 협력업체에 납품하는 2차 협력사로 자동차부품을 만드는 데 쓰일 반제품을 주로 생산한다. 박 사장은 “기아차가 흔들릴 것 같으니 1차 협력사에서 선제적으로 나선 것이 아닌가 싶다”고 추측했다.

A사와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는 다른 2차 협력업체들도 납품단가 인하 요구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차 협력업체의 경우 납품받아야 할 물량을 쪼개 작업자 10인 미만의 여러 2차 협력업체에 맡기는 경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우리와 비슷한 일을 하는 곳은 안산 말고도 서울이나 시흥에도 있다”며 “우리만 콕 찍어 공문을 내려보낸 것은 아닌 걸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안산시 단원구 반월공단 일대가 제조업체 공장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로 뿌옇다. 통상임금 1심 소송에서 법원이 기아차 노조의 손을 들어준 뒤 일부 기아자동차 협력업체들은 원청으로부터 단가 인하 압박에 직면한 상황이다. /연합뉴스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 패소 이후 예상됐던 시나리오가 실제 현장 곳곳에서 즉각 현실화하고 있다는 얘기다. 업계에서는 1조원 안팎을 떠안게 된 기아차가 위기를 맞으면 물량 대부분을 기아차에 납품하던 협력업체들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기아차의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3%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5.2%)에 비해 절반 가까이 하락했다. 게다가 1심 판결 패소로 즉시 회계장부에 충당금을 의무적으로 적립해야 한다. 이에 따라 2007년 3·4분기 이후 10년 만에 적자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기아차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7,868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판결 금액은 현재 영업실적상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라고 토로했다.



남아 있는 소송을 대비해 기아차가 돈을 움켜쥘 경우 하청업체의 피해는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아차 노조는 2011년 11월부터 2014년 10월까지의 통상임금에 대해서도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노조는 오는 10월께 2015년부터 3년간 임금에 대해서도 추가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판결이 확정되는 향후 수년 동안 가능한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기아차에 물품을 납품하던 협력업체의 사정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수직화된 협력사 구조에서 아래에 위치한 업체일수록 ‘기아차 리스크’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하청업체의 경우 거래 단계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기술경쟁력이 떨어진다. 1차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2차 하청업체가 단가 인하 요구를 거절한다면 다른 하청업체를 통해 손쉽게 물량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다. 2차 하청업체에서 근무하는 한 근로자는 “원청의 단가 인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 물량이 언제든 다른 쪽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털어놓았다.

2·3차 협력업체들 대부분이 납품할 물량을 미리 만들어놓은 탓에 단가 인하 요구에 날을 세우기도 어렵다. 2·3차 협력업체들은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수요를 예상한 다음 물량을 사전에 대량으로 생산해둔다. 이 때문에 거래가 갑자기 끊기면 생산비를 회수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A업체 관계자는 “10년 넘게 한 곳과만 거래해 당장 다른 업체에 팔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면서 “계약이 끊기는 순간 생산해둔 제품은 고철 덩어리가 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처럼 통상임금발 하청업체 피해가 가시화하자 현장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기아차 노조가 통상임금 소송에 대해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소송의 결과로 우리 같은 2·3·4차 협력업체 종사자가 고용불안에 떨어야 하니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완성차 업체가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건실한 협력업체의 존재는 필수”라며 “완성차 업체와 협력업체가 동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인 만큼 기아차 노조가 대승적 차원에서 추가 소송을 유예하는 방법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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