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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도시]책장따라 공간과 공간의 만남…사람을 잇는 도서관 '한내 지혜의 숲'

‘한내지혜의 숲’은 숲과 나무가 겹쳐진 모양을 형상화하며 자연과 소통하는 공간을 표현했다. /사진제공=운생동, 윤준환 작가




건물보다 사람이 먼저 보였다. 맨발로 실내에 들어섰을 때 발바닥에 느껴지는 정갈하고 따듯한 촉감은 도시살이의 각박함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가드를 저절로 내려놓게 했다. 다른 맨발의 이용객들도 편안한 표정으로 저마다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계단에 걸터앉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젊은 엄마, 차를 만들기도 마시기도 하며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동네 주민들, 참고서를 파는 학생들, 정자세로 앉아 소설책을 읽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까지. 볕 좋은 주말에 찾은 ‘한내지혜의 숲’은 적당히 조용하고 적당히 시끄러운, 살아 있는 공간이었다.

이 도서관이 들어서기 전 이 부지는 죽어 있는 공간이었다. 서울 노원구 중랑천과 월계동 아파트 숲 사이 작은 공원인 한내근린공원의 끄트머리에는 고장 난 분수대가 처치 곤란한 콘크리트로 남아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이곳은 노원구청이 작은 도서관을 만들기 한지 3년 만에 다시 살아났다.

서로 연결된 공간

책장이 벽 역할하고 중앙에 독서공간

모퉁이엔 茶 마시는 카페 자리잡아



과정 없는 결과는 없다. 다양한 사람이 섞이고 성장하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이곳은 아이디어가 모이고 마음이 모여 탄생했다. 주민들은 공청회에서 저소득층 어린이를 위한 지역아동센터(돌봄교실)가 도서관과 같이 있으면 좋지 않겠냐고 의견을 냈다. 자원봉사자들이 자체 운영할 수 있는 카페가 있다면 동네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도서관 운영에 환원할 카페 운영수익은 덤이다. 한내지혜의 숲에는 그래서 이 모든 게 결합돼 있다.

결합은 능력 있는 건축가들에 의해 유기적으로 이뤄졌다. 360㎡ 남짓한 단층의 작은 도서관은 문 없이, 엇갈린 벽들로 만들어진 작은 미로 같다. 중앙에는 책상이 일렬 배치된 큰 독서공간이 마련돼 있다. 벽 역할을 하는 책장을 돌아가면 계단을 책상과 의자로 삼고, 창문을 전등과 에어컨으로 삼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계단식 독서공간이 측창 양쪽에 배치돼 있다. 차도 마시고 각종 공예수업도 가능한 작은 카페가 한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다. 책장을 따라 걸으면 다시 중앙의 독서공간을 만날 수 있다. 공간은 필요에 따라 나뉘었지만 단절이 아니라 서로 연결돼 열려 있었다. 방과후학교를 위한 수업공간은 분리돼 있지만 유리문을 달아 소통할 수 있게 했다. 다양한 계층·연령의 사람들이 곳곳에서 따로 또 같이 각자의 일에 열중하는 모습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이런 설계 덕분이었다. 공동설계자인 장윤규 운생동 대표는 “건축주인 노원구청은 다양한 계층을 분리하길 원치 않았고 우리 설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며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도록 단절된 공간이 아닌 소통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책꽂이는 벽이 되고 지붕이 됐다. 신창훈 운생동건축 공동대표는 “도서관에서 가장 기본적 가구인 책꽂이를 먼저 배열하고 점차 외부로 확장해가는 식으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제공=운생동, 윤준환 작가


소통 형상화한 외관

삼각형 지붕 여러개 겹쳐져 산·숲 모습

‘서로 의지하는 사람’ 은유적으로 표현도





외관도 외부와의 소통을 염두에 뒀다. 삼각형 지붕은 여러 개가 겹쳐져 산과 숲을 형상화했다. 겹쳐진 ‘人(사람 인)’이 서로 의지하고 결합하는 소통의 공간이라는 점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듯하다.

그러면서도 외장은 담박하게 처리했다. 얼핏 보면 다소 투박한 양철 마감이지만 알고 보면 고급 철강 외장재다. 프리미엄 컬러강판 전문업체인 럭스틸이 도서관 건립취지에 공감해 원가 수준으로 제공했다. 주로 어린이들이 이용하는 시설이니만큼 외관을 알록달록하게 했을 법도 한데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건물보다는 지붕 사이사이에 걸려 있는 하늘이었습니다. 오히려 ‘빨노파’ 원색이 공해가 될 수 있지요. 심플한 외벽을 넘어 연결된 자연의 모습에 아이들이 집중하도록 하고 싶어 이 같은 외장을 택했습니다.” (장윤규 대표)

운영은 지역 주민이

자원봉사자도 이용자도 갈수록 늘어

지역주민들 운영위원회 자발적 참여

공간이 이어지니 사람도 이어진다. 아이들은 돌봄교실에 갇히지 않고 도서관으로 나와 어울리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던 어른들은 카페와 공원을 오가며 어울린다. 이용객도 늘고 자원봉사자도 늘었다. 이용객은 개관 직후인 지난 4월 한 달 900명에서 지난달에는 1,200명까지 증가했다. 지역주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는 활발하게 돌아간다. 카페 자원봉사자만 24명에 달하고 도서관 자원봉사자도 13명에서 19명으로 늘었다. 유혜정 사서는 “어린이, 청소년과 학부모들이 많이 찾는 것은 예상된 일이었지만 의외로 노장년층이 여가생활을 위해 자주 오신다”며 “그동안 지역도서관을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던 분들이 호기심에 들어왔다가 애용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공공건축이라 예산이 빠듯하지만 디테일도 놓치지 않았다. 책꽂이는 벽도 되고 지붕도 돼 벽을 위한 별도의 건축이 필요하지 않았다. 신창훈 운생동 대표는 “도서관에서 가장 기본적 가구인 책꽂이를 먼저 배열했다. 내부 요소들로부터 출발하는 건축의 형태를 띠었다”고 말했다.

도서관은 마들로를 건물 옆으로 면하고 있다. 길가에서 건물 입구가 정면으로 보이게 배치하는 보통의 경우와는 달랐다. 도로변 소음을 차단하기 위한 배치였다. 바닥의 블록 디자인과 입구의 간판도 설계사무소에서 직접 했다. 27년간 이 지역에 살았다는 정미숙 자원봉사자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독특한 도서관이 지역에 들어서면서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장 대표는 건축가들에게는 ‘완벽한 디테일’보다 더 중요한 꿈이 있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의 삶을 도와주는 건축”이 그것이다. 완공 후 이용자들이 완성해가는 건축 ‘한내지혜의 숲’은 건축가들의 생생한 꿈이 아닐까.

/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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