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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1년] 부정청탁 방패막이 됐다지만...더 높은 곳 더 힘센 곳엔 무용지물

■곳곳서 법 취지 무력화

공공기관 채용비리·낙하산 인사 이어지고

금융사·대기업에 고위직·정치권 청탁 여전

"하위직만 옭아매...법적용에 공평성 사라져"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지난해 9월28일 서대문구 통일로 국민권익위원회 서울사무소의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 법 위반 신고 및 상담 창구 직원들이 연이어 걸려오는 문의 전화로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호재기자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을 앞둔 지난해 8월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법 시행 유예 움직임에 대해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원안 시행에 대한 의지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실제 김영란법은 ‘선시행 후보완’의 형태로 추진됐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정부 차원의 시행 취지는 크게 훼손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청와대와 대기업의 정경유착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정작 김영란법을 지켜야 할 최고위층은 이를 무시하고 서민들과 하위직 공무원만 잡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탓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최순실 사태로 김영란법이 왜 필요한지 다시 한번 입증된 측면이 있다”면서도 “거꾸로 정말 힘센 곳의 청탁은 막지 못하면서 힘없는 이들만 법으로 옭아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돈봉투 만찬 사건’이 대표적이다. 법무부는 지난 6월 사건에 연루된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을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김영란법 적용 예외 대상이라는 점을 두고 당사자와 검찰이 다투고는 있지만 사정기관인 검찰이 현금을 주고받는 게 관행이라는 점은 김영란법이 정작 힘 있는 기관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게 한다. 세무 당국도 금품 수수 등에 따른 뒷말이 끊이지 않는다.

채용 비리와 낙하산 인사도 마찬가지다. 지난 5일 감사원이 공개한 ‘공공기관 채용 등 조직·인력 운영실태’ 감사 결과를 보면 위법·부당한 업무 처리와 제도 개선 사항이 무려 100건이나 나왔다. 적발 대상만 해도 한국석유공사와 강원랜드·한국디자인진흥원·대한석탄공사 등으로 상당수 공공기관에 채용 비리가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서부발전의 경우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10월 사장 후보 추천 당시 특정 인물이 후보에 포함되도록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해 10월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다. 전직 장관 출신 고위관계자는 “공공기관이 취업 인기 대상으로 꼽히면서 국회의원과 청와대, 정권 실세 등으로부터 각종 입사 청탁 민원이 쏟아진다”며 “적당한 곳의 민원은 다 자르지만 정작 실세로부터의 청탁은 외부 신고는커녕 내부적으로 어떻게 하면 잘 처리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금융사나 대기업도 상황은 비슷하다. 김영란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고위공직자나 정치권의 청탁은 계속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정권 교체기를 전후로 김영란법 적용이 사실상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청탁금지법 위반을 포착해 포상금을 받는 ‘란파라치’는 초기 유행했지만 지금은 활동이 미미하다. 대형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여전히 사정기관을 포함해 무시할 수 없는 기관에서 인사 청탁과 대출 민원이 끊이지 않고 들어온다”며 “내부적으로 만든 몇 배수의 풀 안에만 들어오면 승진을 시켜주겠다고 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이 같은 김영란법의 무력화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취업 포털 사이트 커리어가 최근 인사담당자 48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10명 가운데 3명은 김영란법을 어긴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초과 항목은 ‘식사 3만원(39.3%)’이었고 ‘전부 초과(35.6%)’ ‘경조사비 10만원(23%)’ 등이 뒤를 이었다. 재계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접대를 잘해야 하는 곳에는 김영란법과 무관하게 지출을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보고 있다. 재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소위 VIP 손님들을 만날 때는 3만원을 넘겨 식사나 저녁 자리를 하고 있다”며 “예전처럼 과하게는 아니지만 신경 써야 할 이들은 신경 쓰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최근에는 기록이 남을 수 있는 휴대폰 같은 전화보다 별도의 독립된 장소에서 직접 만나 부탁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여러 계층에 공평하게 법이 적용돼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며 “이대로라면 법의 사문화를 넘어 서민들만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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