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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24/7]"나는 여자·경찰입니다"

여경 4인 복면 인터뷰

"치안조무사·얼굴마담" 조롱에도

여성성·공감·분석능력 살려 근무

주요과목 위주 경찰채용은 개선해야

미혼 여경 승진 속도 빠를때보면

일·육아 병행 힘든 결혼 후회도

"여경·남경은 따로 또 함께 하는 것"

네이버 웹툰 ‘뷰티풀 군바리’에서 논란이 된 장면들과 실제 여경들의 해명.




“여경이요? 치안조무사죠. 아님 얼굴마담이거나.” 지난해 한 인터넷 게시글에 달린 ‘베스트 댓글’ 내용이다. “한국 여경들은 예쁜 얼굴만 내세우고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한다”는 취지의 이 게시글은 1,000여명의 추천 수를 받으며 세간의 인식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터넷에 ‘여경’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19’, ‘성추행’ 같은 단어들이 연관검색어로 등장한다. 경찰 관련 웹툰 ‘뷰티풀 군바리’에 등장하는 여성경찰들은 몸매가 다 드러나는 제복을 입고 순진한 얼굴로 화면을 쳐다본다. ‘경찰관’보다는 ‘여경’으로 불릴 일이 더 많았던 여성경찰들. 3·5·10년차 이상의 여경 4명과 만나 그들의 속내를 가감 없이 들어봤다. 신원 보호를 위해 이름과 직위는 푸우·피글렛·티거·이요르로 모두 익명 처리했다.

-남자 경찰에 비해 부족한 체력을 두고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경우가 꽤 있더라고요.

피글렛 : 체력이 약해 인력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동료 경찰들의 불만이 좀 있죠. 한 남자 동료 경찰은 저랑 2인 1조로 방범 순찰 나갈 때 “나 혼자서 얘(여성 경찰)도 보호해야 하고, 쟤(주취자)도 막아 야 하네”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여경이 할 수 있다고 나서도 남경은 심적인 부담을 느끼는 모양이에요.

푸우 : 제일 많이 나오는 얘기가 경찰시험에서 여경들 무릎 굽히고 팔굽혀펴기하는 영상이에요. 엄청 놀림거리 됐죠. 윗몸일으키기·달리기 같은 다른 종목에선 남자들과 똑같이 경쟁하고 합격 기준만 소폭 낮추는데, 유독 팔굽혀펴기만 다리 굽히고 하라고 해요. 그러니 나중에 “너는 무릎 꿇고 시험 합격했잖아” 같은 웃긴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거죠. 저도 시험 방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이요르: 전 지구대 처음 배치 받았을 때 지구대 과장님이 대놓고 “난 여자 싫어한다”고 말한 적도 있었어요. 제가 오기 전부터 남자과장들이 여경들만 예뻐해서 지구대 내에 불만이 많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여자 아니고 경찰이고요, 팀에서 막내니까 시키는 거 다 하겠습니다”하고선 일을 막 맡았어요. 밥도 직접 하고 심부름도 다 가고. 덩치 큰 여성 주취자(술 취한 사람)가 행패 부리면 먼저 몸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손 못쓰게 하고요. 그러니까 과장님도 점점 절 예뻐하시기 시작하시더라고요.

-실제 현장 근무에서도 남녀 간 차이를 많이 느끼나요?

푸우 : 솔직히 일부 소극적인 여경이 있는 건 사실이예요.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하면 되는데 아예 아무것도 안 하려는 여경들도 있거든요. 출동 안 하고 책만 본다든지, 주취자 옆에 안 가고 숨는다든지.

피글렛: 사실 이건 경찰시험 채용 문제이기도 해요. 경찰시험이 국어·영어·사회 과목 위주가 되다보니 응시자들이 체력이나 호신술을 배워야겠다는 의지가 적어요. 제가 특채시험 볼 땐 운동 열심히 한 애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면접 감독관 들어가면 100m 뛰다 쓰러지는 거 아닌가 싶은 정도로 공부만 하다 온 친구들이 많아요. 일반공무원시험이랑 과목이 겹치니까 다수가 공무원시험 두 번 본단 생각으로만 지원하는 거죠. 경찰에 대한 소명의식이나 적극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이요르 : 저는 남자 동료가 의자 10개를 옮길 때 5개가 최대예요. “언제 다 할래”라고 놀리면 “빨리 두 번 다녀 오겠습니다”라고 해요. 그러니까 그건 적극성 문제예요. 얼마나 열정적으로 일할 사람을 뽑느냐의 문젠데 열정적인 사람을 안 뽑고 있으니까 문제죠.

-여자 경찰이라 남자 경찰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도 있겠죠.

티거 : 그럼요. 오히려 여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어요. 성추행 시비 없이 여성 시위자나 주취자를 진정시키는 일, 여성 피의자의 몸을 수색하거나 마약 관련 소변검사를 하는 일이 그 예죠. 추리나 수사처럼 치밀한 사고가 필요한 일에도 여경이 활약하는 경우가 많아요. 파출소나 체포처럼 완력으로 하는 일만 경찰 업무는 아니에요.

푸우 : 여경은 민원인과 관계 쌓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요. 제 근무지는 성매매 여성들이 자해하는 사건이 많았는데 이분들은 종종 남자 경찰들은 안 만나려고 하거든요. 여경들에게는 마음을 곧잘 열죠. 저를 만나자마자 막 안고 언니라고 부르기도 해요(웃음). 어린이·장애인 등 상대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서도 여경들이 많이 활약하는데 상대적으로 티가 안 나요. 피해자로부터 범죄 피해 사실을 얼마나 소상하게 잘 이끌어내느냐가 전체 수사의 방향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아요. 수사에서 피해자와의 공감 능력은 정말 중요합니다.

-경찰의 90%가 남성입니다. 여성으로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티거 : 막상 출산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승진에서 밀릴 때 속상했죠. 승진에 유리한 부서들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엄마 입장에서는 쉽지 않아요. 같은 여경 중에서도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은 미혼 여경들의 승진 속도가 훨씬 빨라요.



푸우 : 경찰 내에서 종종 있는 일인데 남자 동료들이 “우리 누구도 00이처럼 애교가 많으면 경찰서가 화사해질 텐데”라든가, 여름 제복으로 바꿔 입으면 동료들이 갑자기 “몸매가 여전히 좋네” 같은 말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직장에서도 ‘경찰’보단 ‘여자’로 보일 때가 있구나” 하고 느끼죠.

이요르 : 경찰업무 중엔 여성들이 꼭 필요로 하는 업무가 많고, 그래서 의사소통의 효율성 차원에서 저흴 ‘여경’이라고 부르는 건 정말 상관 없어요. 그치만 일부 시민들이 성적인 의미를 담아 부를 때나, ‘제복 입은 아가씨’라고 부르는 건 좀 싫을 때가 있죠.

피글렛 : 아무래도 민원인들이나 주취자들은 여경에게 시비를 더 많이 거는 편이예요. ‘년’이 들어간 욕은 다반사로 듣고요. 집회시위 나가면 “얼굴 동영상 찍고 인터넷에 올리겠다”며 카메라 들이미는 사람도 많아요.

-최근 경찰을 주제로 한 웹툰 ‘뷰티풀 군바리’가 큰 인기를 얻었잖아요. 동시에 여경을 성상품화한다는 비판도 받았고요.

피글렛 : 네, 저도 그 웹툰 봤어요. 만화라서 몸매가 참 좋긴 하더라고요. 근데 개인의 성적 취향을 특정 직업에 덧입히고 그에 대한 환상을 키워가는 건 좀 보기 불편했어요. 자칫 잘못 하면 청소년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고요. 보기에 유쾌하지는 않더라고요.

티거 : 여기 여자캐릭터가 속옷만 입고 위에 걸친 이 옷(아래 이미지)은 기동복인데요. 집회시위현장에서 늘 볼 수 있는 옷이라 이렇게 페티시의 대상이 되면 곤란해요. 밤에 순찰 나가면 성추행도 종종 있고, 실제로도 혼자 있으면 남자 여럿이 제압하기도 쉬우니까요. 공무 수행 중 성범죄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우려스럽네요.

푸우 : 전 구타나 폭언 장면이 좀 거슬렸어요. 물론 그 웹툰은 본인 군대 다니던 시절을 성만 바꿔서 재현한 거라고 하지만, 전후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몇몇 장면만 보고 여경들이 다 이러는 줄 알 수도 있잖아요. 여기 사진들(아래) 보면 담배 피는 모습이나 군기 잡으려고 폭행하는 장면이 엄청 많은데요. 실제로는 여경들이 담배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필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선후배 여경들끼리 이년 저년 하는 문화는 더더욱 아니예요. 구타는 정말 말할 것도 없고요.

티거 : 10년 전에 선배 여경들이 신발이나 민소매 같은 걸로 종종 이야기하긴 했지만 그것도 타이르는 수준이었어요. 청소년기에 영화나 만화 하나로 꿈이 정해지기도 하는데, 이런 장면을 보고 경찰이 멋있다고 여겼던 사람도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될까 걱정이 되긴 해요.

-여경들의 일과 사랑도 궁금해요.

푸우 : 아무래도 자주 보는 동료 경찰들끼리 연인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아요. 밤샘근무나 잠복근무 등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면서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잖아요.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되죠. 소개팅 나가면 호기심 있게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가끔 상대방이 “나 단속 몇 번 걸렸다”고 자진 신고(?)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요르: 일부 여경들은 성격이 활달하고 적극적인데, 그러다 보니 “나 아니어도 좋아할 사람 많겠지”라는 오해를 받기도 해요. 군중 속의 고독이랄까(웃음).

티거 : 사랑할 땐 좋지만 막상 가정을 꾸려나가기는 만만치 않아요.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밤늦게까지 당직할 때도 많다 보니 가족들의 도움 없이는 계속 일을 하기 어렵워요. 위험부담이 크고 당직이 잦은 과는 가고 싶어도 망설이게 되고요. 여경의 육아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제도가 꼭 도입되면 좋겠어요.

이요르 : 미혼인 여경들은 높은 계급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동료나 선배들을 보면 ‘차라리 결혼하지 말 걸 그랬나’하는 생각도 들죠. 여자라고 해서 노골적으로 승진에 불이익을 주지는 않지만 육아와 아이들 교육을 챙기면서 일에서도 성과를 내기는 참 힘들어요.

-마지막으로 예비경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모두 : 남자경찰과 여자경찰은 각자의 역할에 따라 따로, 또 같이 시민을 지키는 거죠. 한쪽이 다른 한쪽을 도와준다거나 보호한다거나 홍보한다거나 그런 존재는 아니예요. 경찰의 직무는 생활안전·외사·자료정리 등 아주 다양하고, 성별에 맞게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답니다. 지구대에서 완력을 쓰는 일만이 경찰의 업무는 아니라는 점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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