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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미술관서 무엇을 봅니까"

환기재단 김홍식 개인전 '시간'

명작 감상하는 관람객 모습서

현대인의 예술소비 방식 포착

시공 초월 시선의 의미 되새겨

‘환기재단 작가전’으로 기획된 김홍식 개인전 ‘시선’ 전경. /사진제공=환기미술관




왁자지껄한 바의 여종업원이 그윽한 눈으로 바라본다. 할 말은 많지만 “아껴두겠다”는 표정이다. 매춘여성을 그린 ‘올랭피아’로 고초를 겪은 에두아르 마네(1832~1883)가 그로부터 20년 뒤,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완성한 ‘폴리-베르제르 바’이다. 마네를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끌어올린 이 그림은 여인의 뒷벽 전체를 차지한 거울을 통해 술집의 안쪽 깊숙이까지 보여줘 충격을 안겼다. 심지어 그림 오른쪽으로, 모자 쓴 신사가 여종업원에게 은밀한 제안을 건네는 모습이 거울에 비쳐 당시 부르주아들을 뜨끔하게 했다.

‘환기재단 작가전’에 선정된 중진작가 김홍식의 개인전은 런던 코톨드미술관에 걸린 바로 이 그림으로 문을 연다. 스테인레스 스틸에 포토에칭 기법을 써 판화처럼 사진을 찍어내 작업하는 작가가 철판 대신 거울을 사용했다. 그림 가까이 다가갈수록 관람자 자신의 얼굴이 도드라진다. 마네의 그림이 그랬듯 보는 이를 흠칫하게 한다.

김홍식 ‘대화’ /사진제공=환기미술관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면 벽면 하나를 20점의 작품으로 가득 채운 전시기법에 또 한 번 놀란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다닥다닥 그림을 걸어둔 것이 마치 17세기 유럽의 살롱전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직접 유럽 유수의 미술관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이를 철판 위에 흑백이미지로 뽑아낸다. 작품 속 작품과 대구를 이루는 동시에 귀한 명작을 떠받들듯 황금색 액자를 두른다.

파리 루브르의 입구인 유리 피라미드가 반짝이고, 목이 잘린 ‘사모트라케의 니케’나 다빈치의 ‘모나리자’ 앞에 선 관객들은 일제히 휴대폰을 꺼내 들고 추억을 저장하는 중이다. 자크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을 보는 사람들은 그림 속 인파가 액자 밖으로 흘러넘친 듯 과거와 현재가 혼연일체 됐다. 반면 암스테르담국립박물관에서 렘브란트의 대표작 ‘야경’ 앞의 사람들은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갈 듯하다. 모네의 ‘샤이,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는 파리 오르세미술관의 사람들과는 달리 말이다.

김홍식 ‘오르세의 작은 소녀발레상’ /사진제공=환기미술관


그림에 따라 감상자의 태도나 자세가 달라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피카소미술관에서 파랗게 젊은 피카소의 자화상을 보는 백발 남성이 오히려 우리가 기억하는 노년의 피카소와 더 닮았고, 유모차를 끄는 젊은 엄마는 베르트 모리조의 ‘요람’에 감정이입 중이다. ‘밤의 사람들’을 그린 에드워드 호퍼의 쓸쓸한 그림에 푹 빠진 휘트니미술관의 여성 관람객과 ‘개스 스테이션’을 감상 중인 남성 관객의 뒷모습은 묘한 대구를 이룬다.

현대인의 예술소비 방식을 미술관에서 포착한 작가는 “지금 당신이 보는 것은 무엇인가”를 따져 물으며 “작품을 보는 우리네 시선을 반성”하게 한다. 그래서 환기미술관에서 29일까지 열리는 이번 개인전 제목은 볼 시(視) 자에 사이 간(間) 자를 쓴 ‘시간’이며 ‘시선의 사이를 거닐다’는 부제가 붙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포착한 석불좌상의 구멍 난 뒷모습이 이 점을 강조하듯 잊고 외면하기 쉬운 역사의 뒤안길을 비춘다.



김홍식 ‘대화’ /사진제공=환기미술관


나가는 길에 걸린 마지막 작품은 검은 거울이다. 흑경 속에 방금 본 그림들과 함께 내 자신이 보인다. “검고 막힌 듯한 거울이 우리를 반추하게 합니다.”

작가는 한국 천주교회 230년을 집대성해 다음 달 17일까지 로마 바티칸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국 관련 특별전에도 현대미술가로 참여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환기재단 작가전’에 선정된 작가 김홍식과 전시 전경. /조상인기자


김홍식 ‘산책자, 미술관에 가다(환기미술관)’ /사진제공=환기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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