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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핀크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상금 56위에 1위 무릎...태풍 사올라도 놀란 언더독의 반란

10대 서경퀸 김혜선

'3개홀 연장'서 이정은 꺾고

데뷔 후 50번째 대회서 첫승

이번 시즌 누적상금보다 많은

1억2,000만원 한방에 획득

2년간 시드전 걱정도 덜어

29일 제주 서귀포 핀크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SK핀크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 파이널 라운드 경기에서 우승한 김혜선2가 꽃가루를 받고 있다./서귀포=권욱기자




2년간 우승 한 번 없이 톱10 진입도 세 번뿐이던 ‘56등’이 전교 1등을 눌렀다. 10회째를 맞은 SK핀크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총상금 6억원)은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에서 가장 짜릿한 반전 드라마를 연출하며 마무리됐다.

29일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GC(파72·6,489야드)에서 열린 김혜선(20·골든블루)과 이정은(21·토니모리)의 연장.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알고 지낸 둘은 지난해 KLPGA 투어에 함께 데뷔한 동기생이지만 너무 다른 길을 걸었다. 이정은이 지난해 신인왕에 이어 올해 4승으로 대상(MVP) 확정 등 탄탄대로를 달린 반면 김혜선은 무명에 가까웠다. 지난해 10위 안에 든 대회는 아예 없었고 상금랭킹 78위(6,200만원)로 밀리면서 시드전을 거쳐 겨우 올해 출전권을 유지한 데 만족해야 했다. 올해 상금순위도 이 대회 전까지 56위(9,760만원). 이번 대회마저 그르칠 경우 또다시 ‘지옥의 시드전’으로 밀릴 상황이었다.

십중팔구 이정은의 우승을 전망할 만했다. 그러나 16~18번홀 세 홀 스코어 합산으로 진행된 연장은 누구도 예상 못한 ‘언더독(우승 확률이 낮은 선수)의 반란’으로 마감됐다. 김혜선은 제대로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풍 속에서도 세 홀 합계 이븐파(파-파-파)를 작성, 2오버파(파-파-더블 보기)의 이정은을 꺾고 데뷔 후 50번째 출전 대회에서 처음 우승 트로피에 입 맞추는 ‘49전50기’에 성공했다. 우승상금은 1억2,000만원. 지난주까지 쌓은 올 시즌 누적상금보다 많은 금액을 ‘한 방’에 손에 넣은 것이다. 400만원 상당의 스위스 시계 ‘그로바나’도 손목에 찼다. 상금과 부상도 기분 좋지만 시드전 걱정 없이 2년간 1부 투어에서 활약하게 된 게 가장 짜릿한 성과다. KLPGA 투어는 이 대회 우승자에게는 2년 시드를 준다.

첫날 6언더파를 쳐 깜짝 2위에 올랐던 김혜선은 이튿날 무려 8언더파를 보태 14언더파 공동 선두로 이정은과의 결투에 나섰다. 김혜선은 이틀간 보기 없이 버디만 14개를 잡았다. 마지막 날 챔피언 조에서 경기하기는 이번이 처음. 그러나 “긴장하지 않고 제가 할 것만 다하고 오겠다”고 또박또박 말했던 김혜선은 약속대로 시종 소름 끼치도록 차분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대어’를 꺾었다. 16번홀(파5) 세 번째 샷이 그린 앞 해저드를 겨우 넘겨 가슴을 쓸어내렸던 김혜선은 18번홀(파4) 오른쪽 러프에서 친 두 번째 샷을 그린에 올려 2퍼트로 마무리, 동료들의 축하 꽃 세례를 받았다. 피 말리는 연장을 치르는 동안에도 김혜선은 긴장한 기색을 보이기보다 오히려 생글생글 미소를 보이며 경기했다. 경기 후 김혜선은 “시즌 초반에 경기가 잘 안 풀려서 좀 힘들었는데 중반부터 컨디션이 올라왔다. 그래도 이렇게 우승까지 하게 되니 아무 생각이 없다”며 웃어 보였다.

17번홀(파3)에서 티샷이 왼쪽 둔덕 아래에 박혀 위기를 맞고도 멋진 어프로치 샷으로 파를 지켰던 이정은은 18번홀 115m 지점에서 친 두 번째 샷이 그린 앞 개울에 빠지면서 아쉬움을 삼켰다. 강한 뒷바람을 생각해 짧게 친 듯했지만 약간 두껍게 맞으면서 그린에 올라가지 못했다. 4온 2퍼트의 더블 보기.



이날 핀크스GC에는 태풍 ‘사올라’의 간접 영향으로 초속 10m 이상의 강풍이 불어닥쳤다. 지난 이틀간 바람 한 점 없고 따뜻한 완벽한 환경에서 버디 쇼를 펼쳤던 선수들은 이날은 강풍과 뚝 떨어진 기온에 완전히 다른 얼굴의 핀크스와 마주했다. 결국 이정은·김혜선·이정민(25·비씨카드)의 마지막 챔피언 조가 두 홀을 마친 상황에서 경기가 중단됐고 바람이 잦아들지 않자 3라운드 경기가 취소됐다. 취소 시점에 이정은은 15언더파로 김혜선에게 3타 앞선 단독 선두였던 터라 이정은으로서는 아쉬움이 더 컸다.

그는 그러나 단독 2위 상금 6,900만원을 보태면서 생애 첫 상금왕을 확정했다. 이 대회 전까지 이정은은 시즌 상금 약 10억1,200만원으로 1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2위 김지현(7억7,000만원)과의 격차는 약 2억4,200만원. 이번 대회에서 김지현이 공동 15위에 머물러 상금 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이정은은 남은 2개 대회 결과와 관계없이 상금왕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김지현이 잔여 2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해도 챙길 수 있는 최대 상금은 총 2억4,000만원이다. 이정은은 2라운드에 세운 9언더파 63타의 코스 레코드로 400만원 상당의 포도호텔 스위트룸 2박 숙박권도 받았다.

잘 알려졌듯 이정은의 아버지 이정호(53)씨는 외동딸이 네 살 때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운전하던 덤프트럭이 30m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했고 이 사고로 이씨는 하반신이 마비되는 장애를 갖게 됐다. 지난해까지 이씨는 휠체어에 의지한 채 딸을 현장에서 응원했다. 장애인용 승합차를 직접 운전하면서 전담기사로 딸을 뒷바라지했다. 골프를 시키기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고향인 전남 순천에는 부녀를 끔찍이 아끼는 고마운 이웃이 꽤 많았다고 한다. 이씨는 올해는 딸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대회장을 찾는 대신 좋아하던 탁구채를 들었고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은메달을 따기도 했다. 이정은은 평소 “골프가 잘 안 될 때는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기도 했는데 휠체어에 탄 아버지와 저까지 둘을 돌보는 엄마 생각만 하면 정신이 든다. 골프에 집중하고 좋은 성적을 내는 게 효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해왔다.

이정은은 잘 배우던 골프를 초등학교 5학년 때 중단하고 3년을 쉬었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도 적지 않은 돈을 자신에게 쏟아붓는 부모님에게 죄송한 마음이 컸기 때문이기도 했단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진로를 고민하다 ‘나중에 레슨프로가 돼서 돈을 벌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골프를 다시 시작했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그때 만약 이정은이 골프채를 다시 잡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의 이정은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서귀포=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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