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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워치] 가벼워진 인문학...광장으로 나오다

불확실한 현실·정보의 홍수 피로감

압축된 지식 단시간 습득 욕망 키워

유튜브·TED 등 디지털기반서 시작

'지적 대화를 위한...' '알쓸신잡' 등

출판·TV도 '라이트 인문학' 전성기





서울 거주 10가구 중 6가구가 산다는 성냥갑 모양의 아파트는 한국적 발전 모델의 ‘압축적 표상’이다. 네모난 상자 속에서 획일적 삶을 감내하면서도 평균 이상의 삶을 지향했던 우리의 욕망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현대 도시인의 지적(知的) 갈증과 그에 따른 인문학에 대한 최근의 대중적 열풍은 그 욕망에 닿아 있다.세월이 흘러 현대인의 욕망은 성냥갑 아파트를 벗어나 다양하게 뻗어 나가고 있지만 지적 욕구만큼은 그렇지 못하다. 여전히 우리의 시간은 부족하고 정보의 홍수, 삶의 조건을 시시각각 변화시키는 변혁 속에 삶을, 세상의 이치를 사유할 여유가 없는 탓이다. 좁은 방 한 칸에 얕은 지식을 차곡차곡 쌓아 넣듯 한 권으로 압축된 지식을 짧은 시간에 습득하려는 우리의 욕망은 어느 때보다 강렬하다. 취향과 개성을 존중하기 시작한 이 시점에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의 지적 욕구는 네모난 성냥갑 안에서 피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지적 갈증을 도깨비방망이 두드리듯 단숨에 해결하려 드는 요즘의 흐름을 이홍 한빛비즈 편집이사는 ‘요다이즘’이라는 프레임으로 해석해낸다. “정보의 홍수, 다중지성의 피로감이 요다이즘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미국의 미래학자 멀린다 데이비스가 ‘욕망의 진화’에서 소개한 요다이즘은 한 마디로 현실의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강한 존재에 의존하는 현상이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주인공 제다이의 정신적 스승인 요다가 무엇이든 알려주는 최고지성이라는 점에 빗댄 말이다. 이 이사는 “현대인의 지적 욕구는 물어보는 즉시 답을 얻는 것인데 문제는 그 답이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불확실성이 큰 지금은 정확성과 즉시성의 욕구를 채워줄 전무후무한 정신적 스승을 필요로 하는 시대”라고 지적했다.

요다이즘이라는 말이 등장한 지는 무려 23년이나 됐다. 손쉽게 교양을 쌓으려는 인간의 욕구가 최근의 현상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얕은 지식을 향한 욕구가 최근 들어 일반화되고 다층화된 것만은 분명하다. 디지털미디어 발전과 더불어 인터넷과 텔레비전을 통해 지적 목마름을 짧은 시간에 확실하게 해결하려는 경향은 확실히 뚜렷해졌다.

디지털에서 인문학의 ‘만능 키’를 찾으려는 흐름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필두로 정치·역사·철학·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지식을 자랑하는 젊은 재야 고수들이 등장해 고정 청취자를 확보했고 여기에 해외에서 성공한 강의형 쇼비즈니스 플랫폼인 TED가 가세하며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강의(lecture)와 오락(entertainment)을 접목한 렉처테인먼트 프로그램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기반의 영상·음성 플랫폼에서 검증된 이들에서 다음으로 눈독을 들인 곳은 출판계. 상아탑과 대중 사이의 벽을 허물기 위해 고심하던 출판계는 젊은 재야 고수들, 상아탑을 벗어나 대중적 인지도를 쌓은 교수 등을 필진으로 섭외하며 전문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콘텐츠에 대한 허기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등장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채사장 지음, 한빛비즈 펴냄)’ ‘자존감 수업(윤홍균 지음, 심플라이프 펴냄)’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설민석 지음, 세계사 펴냄)’ 등의 교양·인문서들은 2년 가까이 베스트셀러로 입지를 다지며 깃털처럼 가벼운 ‘라이트(light) 인문학’의 전성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변화는 상아탑의 담장을 낮추는 효과로 이어졌다. 대학교수들이 교양입문서 시장에 빠르게 침투하며 ‘라이트 인문학’ 시장이 급격히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서도 감지된다. tvN ‘알쓸신잡(알고 보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정재승 KAIST 교수를 비롯해 대중성을 겸비한 대학교수들이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채널A ‘거인의 어깨’ 등 예능프로그램에 진출하며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익재 교보문고 인문MD는 “상아탑에 머물던 지식이 권위의 벽을 허물고 대중과 접점을 찾는 것은 ‘탈권위’로 상징되는 지금의 사회적 흐름과 맞물리는 것”이라며 “광장으로 나온 인문학을 대중이 적극적으로 소비하고 사유하는 흐름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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