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이사람] "최고가 경매기록 비결이요? 신뢰·침착함이 최우선이죠"

■손이천 케이옥션 수석경매사

경매사는 교향악단 지휘자 役

자신감 풍기되 겸손 유지해야

김환기 국내최고가 낙찰 주역

2010년후 3,000억어치 팔아

비자금 연루 '전재국 컬렉션'

2시간 마라톤 경매 끝 '완판'

경매 출품작 위험 부담 적어

미술입문자도 좋은 도전 기회

경매사 손이천 인터뷰./송은석기자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이제 김환기(1913~1974)의 이름 정도는 알게 됐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불리는 그의 업적도 크거니와 지난 2015년 10월부터 2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국내 미술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무려 다섯 번이나 갈아치웠기 때문이다. 미술품 경매회사 케이옥션의 봄 경매가 열렸던 4월12일. 경매대로 향하던 손이천 수석경매사에게 ‘어쩌면 오늘 새로운 기록이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예감과 기대가 동시에 스쳤다. 김환기가 작고하기 직전 해에 완성한 ‘고요(Tranquillity) 5-Ⅳ-73 #310’은 맑은 푸른색 점으로 260㎝ 높이의 캔버스를 가득 채운 최고 전성기 때의 그림이었기에 “수작 중의 수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라고 소개하며 경매를 시작했다.

“시작가 55억원입니다. 서면응찰 55억, 56억, 57억원…65억원입니다.”

이미 들어와 있던 서면응찰자 간 경합으로 1억원씩 순식간에 10억원이 올라 65억원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호가를 5,000만원씩 높였다. 경매현장의 직원과 전화로 연결된 고객이 패들(경매 번호표)을 들었다. “더 없으십니까? 65억 5,000만원?” 거듭 세 번을 되물었고 꼿꼿이 들린 패들은 내려가지 않았다. “낙찰됐습니다.” 손 경매사가 낙찰봉을 내리치는 순간 박수가 터져 나왔다. 경매는 불과 1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박수갈채는 그보다 더 길게 이어졌다. 지금도 유효한,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이다.

경매사 손이천 인터뷰./송은석기자


“육십오억 오천만원…혼자 있을 때, 특히 운전할 때 ‘육십오억 오천만원’을 중얼거렸습니다. 국내 미술품 경매에서 자주 나오는 단위 수가 아니라서 연습이 더 필요했거든요. 연습한 게 진짜 기록이 됐어요.”

수십억원짜리 최고가 미술품을 얘기하면서도 또박또박 정확한 숫자 발음에 더 신경을 쓰는 이 사람은 국내 양대 미술품 경매회사 중 하나인 케이옥션의 손이천 수석경매사다. 수백억원이 오가는 경매현장의 뜨거운 열기 속에 홀로 핀 얼음꽃처럼 좌중을 이끄는 그를 지난 2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사옥에서 만났다.

2007년 박수근의 ‘빨래터’가 45억2,000만원에 낙찰돼 8년간 지켰던 경매 최고가 기록은 김환기의 그림이 2015년 10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약 47억2,000만원에 팔리면서 새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연거푸 다섯 번 경신한 기록 중 세 번은 홍콩에서 성사됐다. 실제 한국에서 김환기 그림으로 최고가 기록을 세우며 “낙찰”을 말한 이는 손 경매사가 유일하다. 그것도 두 번이나 말이다. 하지만 65억5,000만원 다음의 최고 기록으로 얼마를 외치고 싶으냐는 물음에 “그건 말 못한다”며 손 경매사는 손사래를 쳤다.

“현장의 치열함으로 보자면 65억5,000만원의 최고가 기록보다 오히려 지난해 6월 여름경매에 나온 김환기 작품(‘27-Ⅶ-72 #228’)을 둘러싼 경합이 더 뜨거웠어요. 45억원에 경매를 시작해 5,000만원씩 호가를 높였는데 전화와 서면응찰에 현장 고객 2명까지 가세해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습니다. 전화 응찰자가 54억원에 낙찰받았죠.”

이 또한 당시 국내 미술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그해 11월 말 홍콩에서 약 63억3,000만원에 팔린 기록을 깨고 경매 최고가를 다시 쓰기까지는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같은 오케스트라의 동일한 곡이라도 누가 지휘하느냐에 따라 감동이 달라지듯 감성과 이성이 교차하는 미술품 경매에서는 경매사가 누구냐에 따라 낙찰 총액이 20~30%까지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부터 경매사로 활동한 그가 지금까지 성사시킨 경매 총액은 대략 3,000억원 정도. 협소한 국내 미술시장의 경매·아트페어·화랑을 모두 합친 연간 거래총액이 4,000억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규모다. 하지만 그가 경매사가 된 사연은 다소 싱겁다.

“2009년 8월 홍보담당으로 케이옥션에 입사했습니다. 미술 쪽을 전공하지 않았고 다른 분야의 기업에서 일하다 왔죠. 그해 말쯤 당시 김순응 대표가 경매사를 해보겠느냐고 의향을 물어 대뜸 그러겠다고 했어요. 신문방송을 전공해 방송교육과 훈련을 받은 게 도움이 돼 사내 경매사 선발에서 최종 후보 2명에 들었고 2010년 6월 처음으로 본경매에 올랐습니다. 남 앞에 나서는 무대체질도 아닌데다 부끄러움도 많은데 막중한 책임감이 그런 성격을 압도하더라고요.”

미술품 경매사는 작품설명 능력, 호감을 주는 외모, 신뢰가 가는 말투와 정확한 발음, 민첩한 판단력과 순발력 등이 복합적으로 요구된다. 특히 경륜을 높이 평가하는 분야다. 신참 경매사가 된 그는 경험 많은 다른 경매사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으나 동료들의 유학과 퇴사로 데뷔 1년 만에 회사 수석경매사로 올라섰다. 그러나 미술 경매는 감성에서 출발한 작품 선택을 기반으로 고가의 작품값에 대한 이성적 판단이 얽혀 작용하기에 성사시키기가 어렵다. 참여하는 고객의 연령대도 높은 편이다. 진행자인 경매사의 신뢰와 자신감이 필요하지만 결코 거만해서는 안 된다.



“공손하게 예의를 갖추면서도 고객들을 이끌 수 있는 내면의 카리스마가 복합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숫자를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기본이죠. 경매사의 전달력이 조금이라도 느슨하면 고객이 불편해합니다. 제 성격이 급한 면도 있지만 경매현장에서는 차분하고 안정적이려 애씁니다. 경매사가 불안정하면 살 작품도 안 사게 되니까요. 돌발상황이나 실수가 있어도 아무 일 없듯 천연덕스럽게 넘어가면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약간의 뻔뻔함도 있어야 해요. 이미 지나간 일은 마음에 두지 말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 또한 숱한 연습이 담보돼야 하고요.”

경매사 손이천 인터뷰./송은석기자


그가 꼽은 가장 치열하고 힘들었던 것은 2013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환수를 위해 검찰에 압류된 미술품 매각인 일명 ‘전재국 컬렉션’ 경매였다. 해당 경매는 몇 군데 경매회사로 나뉘어 진행됐다. 첫 번째 경매를 이끈 것이 손 경매사였고 낙찰률 100%의 ‘완판’으로 포문을 열었다.

“자선 경매가 아닌 미술품 경매로 100% 낙찰률을 기록한 것은 국내 최초의 일입니다. 출품작이 미술사적 가치는 높지만 시장에서 자주 거래되는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팔기 쉽지 않은 작품들이었죠. 비록 비자금이 연루된 작품이지만 소장자가 미술에 대해 품은 애정은 짙었습니다. 상당수가 대작이고 종류도 다양해서 이 작품들이 미술관에 소장될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었죠. 실제 경매는 정말 뜨거웠고 대통령 집안에서 갖고 있던 작품이라는 관심 때문에 일반인이 미술경매에 주목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총 80점이 나온 경매가 2시간이나 이어졌다. 통상 한 점당 30초면 경매가 끝나지만 평균 2분씩 경합이 붙었다. 유찰되면 경매사가 숨 돌릴 틈이라도 생기는데 초긴장 상태로 버티고도 그는 “가장 역동감 있었고 피곤한 줄도 몰랐던 경매”로 꼽았다. 이 같은 미술 경매는 ‘심리전’에 가깝다.

“고객의 판단이 애매한 상황에서는 ‘저 작품을 갖겠다’는 심리적 경쟁을 조율해야 합니다. 경매사 눈에도 소장하고 싶어하는 고객의 마음이 표정으로 읽힙니다. 그러나 중개하는 입장에서 과도하게 비싼 가격에 팔리면 훗날 이것이 우리에게 판매위탁으로 돌아와 큰 부담이 될 수 있기에 모든 경매회사는 검의 양날을 고려해 거래를 성사시킵니다. 막상 경합에 들어서면 고객은 냉정함보다 경쟁심이 앞서게 되니 그 부분을 녹여내야 하죠.”

경매사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 빗대는 것은 옳은 비유다. 하지만 손 경매사는 “작품이 주역이니 경매사는 어디까지나 조연”이라며 “눈에 띄는 게 경매사일 뿐 현장 곳곳에서 경매회사 직원들이 보이지 않게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경매라는 큰 이벤트에 맞춰 모든 직원은 그날의 업무분장표에 따라 평소와 다른 일을 맡는다. 좌석표나 패들 배포, 동선 안내, 전화 응대 등의 업무가 있다. 경매사 양쪽의 보조경매사 중 작품관리팀장은 경매사를 돕고 나머지 한 명은 잠재고객인 ‘언더비더(낙찰받은 사람 이외의 응찰자)’를 확인하고 관리한다. 낙찰이 선언되는 순간 현장 컴퓨터에서 출력된 ‘낙찰확인서’를 들고 즉시 고객에게로 달려가는 직원은 “경매에 방해되지 않게 낮은 포복으로 가 사인을 받는 게 임무”라고 했다.

“그림 초보가 갤러리에서 작품을 구입할 때는 자신의 안목과 취향이 크게 작용하지만 1차적으로 걸러진 경매 출품작은 미술시장에서 거래되는 것들이라 상대적으로 (되팔리지 않을) 위험부담이 적습니다. 미술입문자가 되기에는 경매가 좋은 기회예요. 한번 도전해보시겠습니까?”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사진 송은석기자



She is…

△1976년 대구 △1995년 대구 정화여고 졸업 △2002년 한국외대 신문방송학과 학·석사 졸업 △2009년 홍익대 미술대학원 예술기획과 수료 △2009년 8월 케이옥션 입사 △2012년 9월 보물 제585호 ‘퇴우이선생진적첩’ 국내 고미술경매 최고가 34억원에 낙찰 △2016년 6월 김환기 유화 54억원 당시 국내 경매 최고가 낙찰 △2017년 4월 김환기 유화 65억5,000만원 국내 경매 최고가 낙찰 경신 △현재 케이옥션 수석경매사 겸 홍보실장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