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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소돔의 120일





성경 창세기에는 하느님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오는 저 아우성을 차마 들을 수 없다”며 두 도시를 불과 유황으로 파괴하는 대목이 나온다. 후대에서는 동성애 등 무법자들의 음란한 행실이 신의 노여움을 받아 두 도시를 파멸로 이끌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소돔이 악덕과 퇴폐의 도시로 불리는 이유다.

여기서 제목을 따온 프랑스 소설 ‘소돔의 120일’은 귀족계급에 속하는 4명의 리베르탱이 세상에서 고립된 실링성에 42명의 남녀를 모아놓고 벌이는 120일간의 변태적 향락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향연을 주관한 권력자들과 희생자들의 면면부터 이성의 광기를 극한으로 몰고 가는 준비과정과 규칙 등이 자세히 나와 있다. 역사소설을 연상시키는 장중한 문체의 서문과 함께 4부로 구성된 작품으로 가톨릭교회의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저자 마르키 드 사드 후작은 어엿한 귀족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유흥비로 가산을 탕진하는 등 방탕한 행각을 일삼았다고 한다. 매춘부에게 먹인 최음제 탓에 독살미수 혐의로 무기한 구금처분을 받기도 했다. 이때 바스티유 감옥에서 완성한 ‘소돔의 120일’은 33장의 양피지를 줄줄이 이어붙여 만든 12m짜리 두루마리에 쓰였다. 사드는 감방 벽 틈새에 숨겨놓았다가 프랑스혁명의 혼란기에 원고를 분실해 20세기 초에야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말년에 샤랑통 정신병원에서 죽은 사드는 유언장에서 자신의 무덤 위에 과실수를 심어 흔적조차 없애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 가학성 변태성욕을 의미하는 사디즘이라는 말이 사전에 등장했고 ‘살로 소돔의 120일’이라는 제목으로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국내에서도 음란성과 선정성이 도를 넘었다는 이유로 판매금지 결정이 내려지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프랑스 정부가 경매에 올라온 ‘소돔의 120일’ 육필원고를 구매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다. 외설문학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작품이 프랑스의 중요 국가문화유산이라는 이유에서다. 육필원고의 가격은 최대 600만유로(약 77억원)로 추정된다. 한때 금서로 취급됐던 불온서적이 뒤늦게나마 서구 고전의 반열의 오른 셈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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