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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출산 장려만으론 부족하다

박현욱 여론독자부 차장





19세기 초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가 쓴 ‘인구론’은 섬뜩한 면이 있다. 인류를 위해 빈민가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썼다. 인구 급증과 재앙이 무한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그래서 ‘맬서스의 덫’으로 불린다. 극단적 처방임에도 당시 영국 정치권은 맬서스의 주장 일부를 받아들여 빈민 구제 정책을 없애거나 미뤘다. 문제 인식은 합당했으나 방향 설정을 크게 잘못했던 것이다.

200여년 전의 방향각 오류는 현재 한국에서도 감지된다. 물론 문제는 저출산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완전히 상반된 유형이다. 우리 사회가 선택한 해법은 막대한 예산 투입이다. 10여년간 약 120조원. 저출산을 얘기하면 으레 따라오는 클리셰(진부한 표현)다. 실효성 없는 정책을 싸잡아 비난하는 데 제격인 표현이지만 예산 입안자나 이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분명 오류가 존재한다. 지난 2006년 첫 저출산 기본계획이 수립된 후 매년 10조~20조원 안팎의 천문학적 예산 가운데 저출산과 무관한 항목들이 무수히 섞였다. 외국인 장학생 장학금이나 템플스테이 지원과 같이 엉뚱한 것들이다. 입안자들은 ‘저출산 대책’ 간판을 달아 예산을 쉽게 따냈고 정책 대상자들은 본질을 따져보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허상을 걷어내면 실상은 큰 차이가 있다.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곳도 한참 벗어났다. 직접적 수혜로 출산율과 출산 의향을 높이는 방향으로 집행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10여년간 저출산 예산의 상당 부분이 보육환경 개선에 쓰인 것이 그 예다. 출산율이 꾸준히 떨어지는데도 급격하게 늘어난 어린이집 이용은 보육 서비스에만 치중한 비효율의 한 단면이고 어린이집 이용 급증으로 인한 아동학대, 급식 불량 등은 전형적인 폐해다.



문재인 정부도 기존의 대책을 뛰어넘는 것을 목표로 삼은 듯하다. 그러나 벌써 한계가 보인다. 지난해 12월 말 새롭게 조직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제시한 정책 방향들은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핵심과제가 과거의 ‘일과 가정 양립’에서 ‘일과 생활 균형’으로 바뀌면서 여성과 삶에 방점을 찍었다. 출산·보육을 하면서도 여성의 일과 삶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그런데 효용성을 따지면 의구심이 앞선다.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출산율 제고로 이어질 수 있을까. ‘욜로’와 출산·육아 기피가 지금의 시류인데 ‘여유가 생기면 관심을 가져보라’는 식의 뜨뜻미지근한 장려책으로는 ‘어린이집’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만 높아진다.

15~64세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인구절벽’이 올해부터 본격화된다. 출산 장려만으로는 미흡한 감이 든다. 타기팅이 불명확한 정책은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다둥이 가정과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싶어 하는 청년들의 손에 실질적 혜택을 쥐여주는 ‘출산 진흥’이 절실하다.

/hw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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