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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워치-K명품] 하찮다고 여기는 음식에도 열정을 쏟아… 장인의 조건을 재구성하다

['장맛 달인' 정연태]

대기업 본부장 자리 내려놓고

부친 고향으로 낙향 장맛 연구

뉴욕 유명 레스토랑 등에 납품

['김밥 셰프' 김락훈]

"한끼 때우기용 김밥을 명품으로"

풍운의 꿈을 안고 전세계에 알려

김밥으로 세계 3대 요리대회 입상

['김치 명장' 김순자]

김치의 대중화 위해 32년간 열공

전통 김치·퓨전 김치 차별화 꾀해

국내외 25개 특허·

죽장연의 정연태 대표에게 ‘명품’이란 ‘마을’이다. 죽장연은 미슐랭 셰프들이 인정한 대한민국 대표 전통장 기업이다. 대기업 본부장 자리를 내려놓고 찾아간 아버지의 고향 ‘죽장리’. 태백산맥 해발 450m의 포항 산간 오지에서 그는 평생의 동반자들을 만났다. 1,000일 동안 된장과 고추장·간장을 빚으면서 장작 패는 김씨 할아버지, 장 담그는 이씨 아주머니와 그렇게 ‘장인’이 돼간다.

전 세계를 돌며 김밥을 알리는 ‘김밥 셰프’ 김락훈 셰프(락 셰프)에게 ‘명품’은 ‘이야기’다. 김밥은 말 그대로 ‘김’과 ‘밥’이 들어가서 김밥이지만 그 사이에는 무엇을 담아내도 어색하지 않다. 그는 제주도에서는 ‘전복 김밥’, 포항에서는 ‘과메기 김밥’, 스페인에서는 ‘하몽 김밥’, 프랑스에서는 ‘푸아그라 김밥’을 선보였다. 그 지역, 그 특산물에 담긴 이야기도 김밥에 담고 싶다는 락 셰프는 한국인에게 ‘한 끼 때우기’용이었던 김밥을 자신만의 명품으로 만들며 이제는 자타공인 ‘김밥 장인’으로 불린다.

김치 명장 김순자 한성식품 대표에게 ‘명품’이란 ‘운명’이다. 어릴 때부터 특이체질이어서 육류나 생선을 먹으면 소화를 제대로 시키지 못했다. 김치가 유일한 반찬이었고, 약이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그를 위해 전국을 돌며 맛있는 김치를 배워왔다. 그런 영향으로 김치에 있어서는 까다로운 맛을 감별할 수 있는 미각과 타고난 손맛을 갖게 됐다. 김치만 바라본 32년. 어느덧 김치를 25개국에 수출하게 됐다. 그는 대한민국 김치명인 1호, 대한민국 식품 명장 29호다.

남들은 몰랐던 나만의 ‘명품’만 바라보고 살아온 세 사람의 이야기에서 숨은 장인들의 철학을 읽어본다.





◇‘2012년산 된장’, ‘2013년산 고추장’…빈티지 전통장 선보인 정 대표

뉴욕 맨해튼의 한식 레스토랑 ‘단지’의 김훈이 셰프는 “경이롭다”고 했다. 죽장연의 장맛은 그렇게 세계로 나아갔다. 해외 유명 셰프들이 소문을 듣고 직접 포항 산간 마을 찾아올 정도다. 비결이 뭘까.

정 대표는 “최상품의 재료를 키워내고 장을 담그는 ‘마을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장에 들어가는 콩과 고추를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자식처럼 재배한다. 자루에는 주민들의 이름을 새긴다. 책임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지하 200m에서 끌어올린 암반수를 정제한 물과 3년간 간수를 뺀 남해안 천일염이 더해진다. 또 장은 무형문화재 청송 이무남 옹기장인이 고집을 갖고 만드는 숨 쉬는 항아리에 담아 숙성시킨다. 최고의 재료로 최적의 조건에서 만들어진 장은 2년 동안 숙성돼 소비자를 만난다. 꼬박 3만시간, 1,000일의 기다림이다.

또 재밌는 특징은 빈티지 관리를 한다는 점. 해외 셰프들은 주문을 할 때 각 연도의 된장의 특징을 아니까 “2012년산은 20㎏, 2013년은 50㎏ 달라”면서 각자 용도에 따라 장을 사간다. 정 대표는 “몇 대 째 이어져 오는 분들만 장인이라고 하면 오산”이라며 “장에 모든 정성을 쏟는 우리 마을 사람들 모두가 ‘명품’을 만들어내는 ‘장인’”이라고 소개했다.



◇김밥 재료에 담긴 이야기도 들려주는 김 셰프

김 셰프는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을 앞두고 전 세계 무전여행을 떠났다. 먹는 게 큰 문제여서 런던·도쿄·뉴욕 일식당에서 일했다. 어느 나라든 해외의 셰프들은 한국의 ‘김밥’은 모르고 일본의 ‘스시’만 알았다. 억울했지만 현실이었다. 한국인에게는 ‘한 끼 때우기’용인 김밥을 명품으로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은 건 그때였다.



김 셰프는 “처음에 ‘김밥 셰프’라고 소개하면 붕어빵 장사도 붕어빵 셰프냐는 손가락질을 많이 받았다”면서 “김밥이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내가 무시당하지 않는 사람이 먼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일본 요리계에서 인정받으려면 스시를 비롯해 녹차와 사케 전문가가 돼야 했다. 전공을 버리고 스시전문학교, 녹차 세계대회 수상, 사케 소믈리에 자격증이라는 세 가지 타이틀을 갖게 됐다. 전 세계에서 일본인도 못해낸 유일한 성과다.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김밥 알리기에 나섰다. 첫 성과는 지난 2014년 세계 3대 요리대회 중 하나인 ‘룩셈부르크 요리월드컵’에서 김밥으로 동메달을 획득한 것. 이후 전국의 농어촌, 전 세계를 돌며 ‘로컬 김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김밥 속에 담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식재료들의 이야기까지 담아내며 김밥을 명품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12월7일에는 충남 당진과 서산에서 진행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봉송에도 참여해 ‘김밥 알리기’에 열심이다. 그는 평창올림픽이 시작되기 전 전 세계 평창올림픽 홍보관을 돌며 ‘김밥’을 알릴 계획이다.

김 셰프는 “지역 특산물을 만드는 사람들과 숙식을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캐서 김밥에 담는다”며 “김밥 장인이라면 식재료에 담긴 숨은 이야기와 김밥을 만드는 과정 모두를 김밥에 담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김밥’을 주제로 한 복합타운을 구축하는 게 최종적인 목표다.



◇“김치는 내 운명” 대한민국 최초 김치 명인 김 대표

김치 사업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했다. 1985년 어느 날 우연히 호텔 레스토랑 주방에서 들쭉날쭉한 김치 맛 때문에 고민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 김 대표는 “순간 김치 맛을 대중화해서 표준화된 한국인의 맛으로 외국인이 많은 고급 레스토랑에 공급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1년간의 고생 끝에 한 호텔에 15㎏의 배추김치를 처음으로 납품하며 그의 본격적인 김치 인생이 시작됐다. 김 대표는 “김치를 만들 때 나의 열정과 모든 지식,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노하우를 담아 예술품을 만든다는 자세로 임했다”며 “김치는 나의 인생이라고 확신했다”고 강조했다.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전통 김치와 퓨전 김치로 차별화·고급화를 꾀했다.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등 각종 국제대회에 공식적으로 한성김치를 독점 공급하면서 김치의 우수성을 국내는 물론 세계로 알릴 수 있게 됐다.

그는 ‘사 먹는 김치’를 대중화하기 위해 업계 최초로 ISO인증을 받고 25가지 국내외 특허와 실용신안을 획득했다. 명품 김치를 만들어온 32년 동안 한성식품은 전 세계 25개국에 대한민국의 김치를 수출하며 매출 550억원의 중견기업으로 컸다.

김 대표는 “피자·스파게티처럼 김치도 세계인의 식탁 위에 오르게 되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세계의 셰프들이 한국의 김치 전문학교에서 김치를 공부해 세계의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김치를 선보이길 상상해본다”고 귀띔했다. /강광우·심희정·백주연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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