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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손이천의 경매이야기]현대미술사 뒤흔든 백남준...작품 가격은 앤디 워홀의 160분의 1

명성에 비해 형편없는 대접

경매가 대부분 3~4억대 그쳐

미술품 가격은 국력의 척도

자국 작품 띄우는 中·美처럼

국가적 지원 아끼지 말아야

백남준




백남준이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설립을 기념하는 특별전을 위해 제작한 ‘Eco-V toleo Tree’가 지난 24일 경매에서 시작가 3억원에 경합없이 낙찰됐다. /사진제공=케이옥션


경매회사 입사 후 첫 출장지는 홍콩이었다. 홍콩의 5월과 11월은 크리스티와 소더비를 위시한 미술경매 열기로 후끈 달아오른다. 2010년 5월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아트바젤 홍콩의 전신인 홍콩국제아트페어(Art HK)가 열리고 있었고 출품작 대부분은 개막 후 둘째날을 넘기지 않고 거의 다 팔려나갔다. 크리스티 홍콩의 ‘아시아 동시대 미술과 중국 20세기 미술 이브닝 세일’에 출품된 36점이 100% 낙찰되는 진풍경도 목격했다. ‘이브닝세일’은 경매 출품작 중에서도 엄선된 고가의 미술품만 거래하는 자리인데도 말이다.

이렇게 팡파레가 끊이지 않는 현장에서 백남준(1932∼2006)의 작품이 경매에 오르자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인데 유찰이라도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었다. 치열한 경합 끝에 낙찰되는 중국과 일본 작가들의 작품 사이에서 백남준의 작품은 낮은 추정가를 맴돌며 가까스로 팔렸다. 이날 이브닝 세일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작품은 중국화가 천이페이의 작품 ‘스트링 콰르텟(String Quartet)’으로 추정가 10배를 훌쩍 넘는 6,114만 홍콩달러(약 83억원·이하 낙찰수수료 포함)에 판매됐다. 그 뒤를 이은 중국 근대화가 산유의 ‘붉은 땅과 붉은 화병’ 역시 높은 추정가를 웃도는 2,530만홍콩달러(약 34억원)에 판매됐다.

반면 높이가 5m에 육박하는 백남준의 비디오 설치작품 ‘로켓십 투 버추얼 비너스(Rocketship to Virtual Venus)’는 겨우 290만 홍콩달러(약 4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고 또 다른 비디오 작품 ‘와치독 Ⅱ’도 큰 경합 없이 182만 홍콩달러(약 2억5,000만원)에 팔렸다. 작가의 지명도나 미술사적 의미, 영향력, 작품성 등을 고려한다면 더욱 아쉬움이 커서 경매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중국 작가인 장샤오강, 쩡판즈, 위에민준의 주요작품이 10억에서 30억원에 달하는 가격에 거래되는 것과 비교하면 백남준의 작품 가격은 너무 낮다.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과 홍콩,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백남준은 1956년 독일로 건너가 유럽 철학과 현대 음악을 접한 후 다소 급진적인 퍼포먼스로 예술활동을 시작했다. 새로운 미디어를 이용한 예술의 방식을 모색한 백남준은 1963년 텔레비전 내부 회로를 변조하여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 개인전 ‘음악의 전시, 전자 텔레비전’을 통해 미디어 아티스트의 길에 들어섰다. 1964년 미국으로 이주하며 본격적으로 비디오를 사용한 작품활동을 시작한 백남준은 기술과 예술을 결합하고 음악과 신체에 대한 끊임 없는 연구를 통해 그만의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였다. 이런 업적으로 백남준은 1982년 뉴욕 휘트니 뮤지엄에서 첫 회고전을 가졌으며, 1984년 뉴욕과 파리를 연결하는 위성중계작품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을 발표해 전 세계 예술인들과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천재적 작가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또 2000년에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아시아 작가 최초로 대규모 개인전을 열어 저력을 과시했다.

백남준이 작고한 후 2014년 10월, 뉴욕의 가고시안 갤러리는 백남준과 전속계약을 맺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갤러리가 백남준과 전속을 맺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고 그의 작품이 좀 더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약 3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백남준 작품의 특출난 가격의 상승세는 목격되지 않는다. 그나마 지난해 한 경매에서 백남준의 비디오설치작품 ‘숫사슴’이 약 6억6,000만원(낙찰 수수료 제외)에 거래되며 10년 만에 백남준 작품 최고가 기록을 세운 게 전부다.

백남준의 작품 가격은 아직 그의 미술사적 위상이나 명성에 미치지 못한 상태다. 동시대에 활동한 팝아트 거장 앤디 워홀의 최고가 작품 ‘실버카 크래시(Silver Car Crash)’의 낙찰가 1억 540만 미국달러와 비교하면 160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미술품의 가격은 한 나라의 국력을 보여주는 척도인데 미디어 아트의 개척자이자 한국을 가장 대표하는 작가 백남준의 작품은 겨우 3~4억원 대에 머물러 있다.

지난 24일 케이옥션의 올해 첫 경매에 백남준의 비디오 조각 작품이 출품돼 경합 없이 시작가인 3억원에 낙찰됐다. 거대한 나무를 총 23개 모니터, 2개의 엔틱 캐비닛으로 표현해 3m 가 넘는 대작이다. 1995년도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 개관을 기념하며 국립현대미술관과 무디마 재단이 개최한 특별전 ‘호랑이 꼬리’에 출품된 중요한 작품인데 경매결과는 안타까웠다. 과연 세계의 미술사를 뒤흔든 백남준의 명성에 맞는 가격일까. 그러나 언젠가는 그의 작품이 명성에 걸맞는 대우를 받을 것이라 기대한다. 중국은 자국미술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작품을 사들이고 마케팅했으며, 미국 또한 추상표현주의를 위해 국가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케이옥션 수석경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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