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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부동산정책 실패를 설명하는 세 가지 이론

박태준 건설부동산부장





결론부터 얘기하자. 샤워실의 바보가 냅다 몸을 던져 체리를 집었다. 나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실패한 이유를 이렇게 정리한다.

‘체리피킹’이라는 말이 있다. 예쁘고 잘생긴 체리만 딴다는 이 말은 다양한 대상 중 자신에게 좋은 것만 고른다는 의미로 쓰인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와 근거만을 채택하고 이에 반하는 것들은 애써 무시하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다른 말이다.

확증편향은 소통을 거부한다. 내 입맛에만 맞는 데이터도 넘쳐나는 디지털 시대다. 굳이 다른 주장과 견해를 경청해 심적인 불편을 겪어야 할 이유가 없다. 때로는 다른 주장을 펴는 사람이나 그룹을 ‘적’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그래서 확증편향은 위험하다.

욕실에서는 오래전부터 더운물이 나오고 있었다. 새로 입장한 이들이 수도꼭지를 반대로 힘차게 돌렸다. 요즘 기온만큼 차가운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차가운 물세례를 받은 이들이 당황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이 정부의 냉·온탕 정책을 경고한 ‘샤워실의 바보들’이다.

축구의 페널티킥에서 공이 날아가는 방향은 골대의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중앙이 각각 3분의1씩이라고 한다. 하지만 골키퍼는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무조건 몸을 던진다. ‘행동편향(action bias)’ 때문이다. 무엇이든 저지르는 편이 향후 결과에 대해 덜 불편하게 만드는 심리적 기제다. 페널티킥 상황에서 골키퍼가 몸을 던지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채로 골을 먹었을 때 어떤 욕을 먹을지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그의 책 ‘감정 독재’에서 행동편향을 교육정책에 빗대 설명하며 이렇게 강조했다. “새로 들어선 정권, 새로 바뀐 장관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의 포로가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연례행사처럼 반복하는 것이다.”



지난해 6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식에서 ‘투기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집값 급등의 주범으로 다주택자들을 지목했다. 이 프레임은 해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다. 관료들은 여전히 서울 강남 아파트값이 오르는 것을 투기 때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강남 입성을 희망하는 일반적인 수요와 이를 담아내지 못하는 공급 부족, 교육정책과의 엇박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다른 견해는 듣지 않는다. 유사 이래 돈이 되는 시장에 투기가 존재하지 않은 적이 있었을까. 그런데 그 시장에 오직 투기만이 전부였을까. 정부가 확증편향에 빠졌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런 일방적 진단 속에 결국 정부는 출범 직후 골키퍼처럼 몸을 던졌다. 국토부는 6·19대책으로 시장을 떠본 후 8·2대책으로 강력한 한 방을 날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골을 막지는 못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몸을 던졌지만 여전히 빈손이다. 그래서 당황한 샤워실의 바보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찬물을 계속 틀어놓고 애꿎은 샤워실을 탓하고 있다. 중개업소를 쥐 잡듯 잡고 다주택자들에 대한 세무조사에 나선다며 법석이다. 시장에 겁을 주는 카드도 등장했다. 근거도 모호한 재건축 부담금 추산액으로 시장을 발칵 뒤집었다. 최근에는 이 재건축 부담금을 피한 강남 재건축단지들의 관리처분계획을 다시 들여다보라고 관할 구청에도 으름장을 놓았다. 정말 그런 방식으로 강남 집값이 잡힐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정부가 시장과의 지루한 줄다리기를 수개월째 계속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새 정부가 출범 직후 냅다 몸을 던지지 않았다면, 좀 더 신중히 시장을 바라보고 유연히 대처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수차례 했다. 아니 지금이라도 다른 견해에 귀를 기울여 정책의 방향성을 수정해볼 수는 없을까.

그런데 국토부 공무원들도 “부동산정책은 정치적 판단”이라고 말하는 현실에서, 지방선거를 4개월여 앞둔 시점에 이런 생각이 가당키나 한 것인지, 그것도 잘 모를 일이다. /ju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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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기자 건설부동산부 ju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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