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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W] 춘래불사춘…阿! 머나먼 민주화

[독재는 또 다른 독재를 낳고]

남아공·에티오피아·짐바브웨 등

독재자 부패에 경기 침체 지속되자

성난 민심 "정권교체" 물결 거세지만

대안 세력 없어 권력자 얼굴만 바뀔뿐

[먹고 사는 문제는 어찌할꼬]

민생은 뒷전 권력 지키기에만 급급

장기 성장계획 없어 경기 침체 지속

"굶어 죽나…투쟁하다 죽나 똑같다"

제2, 제3의 혁명 계속 일어날수도

남아공 국민들이 지난 11일(현지시간) 수도 케이프타운에서 시릴 라마포사 당시 부통령 겸 아프리카국민회의(ANC) 당대표가 제이컵 주마 대통령의 퇴임과 새 정부로의 권력 이양을 논의하겠다고 선언하자 환호하며 지지를 표하고 있다. 주마 대통령이 14일 사임을 선언하며 9년간의 권위주의 정권은 막을 내렸지만 여전히 ANC 1당 체제는 공고하다. /케이프타운=AFP연합뉴스




“제이컵 주마 전 대통령의 퇴임에 국민들은 짙은 안개가 걷힌 것처럼 큰 안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체제를 기회주의와 부패와 민주주의 훼손으로 이끈 자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회학자인 로니 카스릴스는 주마 사임 후의 사회적 분위기를 이같이 전했다. 수년간의 사퇴 압박에도 꿋꿋이 버텨온 주마 전 대통령이 지난 14일 즉각 사퇴 결정을 내린 데 이어 에티오피아에서도 총리가 사임하는 등 아프리카에서 권위주의 정치를 일삼아온 국가지도자가 최근 잇달아 물러나면서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마침내 진정한 민주화가 도래할지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튀니지 등지에서는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벌어져 이 같은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한껏 부푼 기대와 달리 정권교체는 또 다른 독재의 시작일 뿐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치 대안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시민들이 권력을 또 다른 ‘독재세력’에 넘길 수밖에 없어 권력자의 얼굴만 바뀔 뿐 부패와 독재체제라는 깊은 뿌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새로 권력을 잡은 세력은 국민 불만의 근원인 장기 경제성장 계획을 마련하기보다 개인적 축재(蓄財)에만 집중하는 상황이 반복돼 제2, 제3의 혁명 혹은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도 여전한 상황이다.

주마 전 남아공 대통령과 하일레마리암 데살렌 전 에티오피아 총리가 각각 14일과 15일 사임하자 국제정치 연구기관과 외신들은 아프리카 전역에 정권교체 및 민주화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을 조심스럽게 내놓기 시작했다. 미국 외교정책연구소(FPRI)는 남아공과 에티오피아에서 국가지도자가 잇달아 물러난 지난주를 “아프리카 전환의 한 주”라고 평가하고 독재종식 요구가 토고 등 아프리카 각국으로 퍼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앞서 지난해 9월에는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 전 앙골라 대통령이 38년의 집권 후 자리에서 물러났으며 11월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전 대통령도 군사 쿠데타로 37년의 장기독재를 마감하는 등 아프리카 다수의 국가에서 정치변화상이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최근 정권교체를 경험한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1인 독재자나 권력을 잡은 특정 정치세력이 경제이권을 챙기는 전형적인 부패상이 이어진 것은 물론 경제상황이 악화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독재와 정경유착을 견뎌온 시민들이 지난 몇 년 사이의 경제침체를 기점으로 ‘반항해 권력자에게 죽든, 굶어 죽든 똑같다’는 생각에 격렬한 정권교체 시위에 나선 것이다.

‘아프리카 붐’으로 불리는 2000~2013년은 원자재 가격 상승과 2008년 이후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돈 풀기’로 아프리카 각국에 해외 자본이 물밀듯 밀려온 시기다. 원자재 확보를 위한 글로벌 투자경쟁 덕에 굳이 정부가 경제정책을 꾸리지 않아도 성장이 보장됐다. 하지만 2014년 이후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시작으로 긴축 조짐이 일면서 외국인 자본이 이탈하기 시작하자 아프리카 경제는 타격을 받았다. 남아공의 경제성장률은 2011년 3.3%에서 2016년 0.3%로 곤두박질쳤으며 에티오피아가 세계은행(WB)으로부터 승인받은 원조액은 2016년 17억3,800만달러에서 지난해 9억310만달러로 반 토막이 났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민주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남아공에서 2012년 백금광산의 노동자파업 당시 경찰의 발포로 34명이 숨지는 등 아프리카 국가지도자들은 그동안 반정부시위를 강경 진압했지만 경제악화로 민심이 폭발하자 권력을 지키기 위한 대화로 방향을 틀거나 아예 권좌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전의 독재정권이 권력을 잃어도 아프리카 국가에 완전한 민주화가 오기는 힘들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실제 2011년 일찌감치 ‘재스민 혁명’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낸 튀니지의 경우 마땅한 대안세력이 없어 과거의 권위주의 세력인 니다튀니스당이 2014년 다시 권력을 잡았다. 니다튀니스당을 이끄는 베지 카이드 에셉시 튀니지 대통령은 2016년 자신의 친척인 유세프 차헤드를 총리에 임명한 데 이어 지난해 부패정치인 사면 법안까지 통과시키며 측근들을 모으고 있다. 튀니지에서는 “1인 독재 후에는 1당 독재 시대가 열렸다”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남아공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1당 통치체제가 굳어져 있어 주마 전 대통령의 퇴진에도 부패상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인 ANC는 남아공에서 다인종 선거가 시행된 1994년 이후 한 번도 정권을 놓지 않았다. 집권이 장기화하면서 ANC 정치인들은 기업들과 공모해 검은돈을 챙기고 있다. 시릴 라마포사 신임 대통령의 대대적 부패 수사에도 남아공의 근본적인 정치체질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미 시사주간 뉴스위크는 ANC가 인기가 떨어진 주마 전 대통령을 라마포사 대통령으로 바꿔 정권만 연장했다고 평가했다.

정치불안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장기적인 경제성장 계획도 나오지 않는다. 에셉시 튀니지 대통령은 지난달 대규모 반정부시위를 잠재우기 위해 △빈곤층 가구 지원금 인상 △의료 서비스 확대 △저소득층 가구 지원 등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냈지만 근본대책이 아니라고 판단한 시민들은 시위를 중단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점차 긴축으로 돌아서면서 아프리카의 짐은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무쓰지 쇼지 요코하마시립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소득이 낮은 국가는 세계 경제 상황의 영향을 받기 쉬워 (경제불안으로) 아프리카에서 정치적 불안정이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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