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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Why] 포퓰리즘 판치는 유럽...의회 민주주의 '대위기'

[다시 유럽 휩쓰는 포퓰리즘 광풍]

伊오성운동·동맹당 총선 과반 득표 등 좌·우 가리지 않고 세 불려

금융위기 이후 포퓰리즘 정당 급부상...난민문제 더해 분노 치솟아

연정 구성만 수개월...정작 현실적 대안없어 혼란 가중 우려도

유럽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주요 포퓰리스트들. 루이지 디마이오(왼쪽부터) 이탈리아 오성운동 대표, 세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 마린 르펜 프랑스 국민전선(FN) 대표, 알리스 바이델 독일 ‘독일을위한대안(AfD)’ 대표,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안드레이 바비스 체코 긍정당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로이터·AFP·신화연합뉴스




“이탈리아의 포퓰리스트 득세는 전염병처럼 돌고 있는 유럽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영국 일간 가디언)

지난 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총선 출구조사에서 기성체제에 반기를 든 오성운동과 극우 동맹당이 단일 정당 가운데 나란히 득표율 1·2위에 오르자 유럽 전역은 충격에 휩싸였다. 1993년 유럽연합(EU) 창립 당시 주축 멤버로 활약한 이탈리아 국민들이 난민 수용과 EU에 반기를 드는 두 정당에 절반의 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독일·프랑스·네덜란드 선거에서 간신히 잠재웠던 포퓰리즘 광풍이 다시 유럽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EU는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네덜란드의 포퓰리즘 전문가 카스 무데에 따르면 포퓰리즘이란 사회가 순수한 대중과 부패한 엘리트로 이분화됐을 때 양측의 대립 구도를 이용하려는 현상으로 정의된다. 이 정의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 유럽에 포퓰리즘 정당이 출현하기 시작한 당시만 해도 ‘이단아’쯤으로 치부되던 포퓰리스트들이 어느덧 유럽 정치의 ‘주류’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극소수 기득권층을 겨냥한 고통받는 대중의 분노가 그만큼 커졌음을 의미한다.

독일 매체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당초 좌파 국가에서 제한적으로 나타났던 포퓰리즘은 동유럽을 거쳐 서유럽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2015년 폴란드에서 극우정당인 법과정의당이 집권에 성공하더니 지난해 말 오스트리아에서는 우파 국민당과 극우 자유당이 손을 잡은 극우 연정이 탄생했다. 극우 정당의 연정 참여는 2000년 이후 17년 만의 일이다. 올 4월 헝가리 총선에서는 집권당 피데스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 평소 난민을 ‘독(毒)’이라고 부르는 오르반 빅토르 총리의 재집권이 유력한 실정이다.

이들은 기성정당이 대중의 외면을 받는 사이 ‘소외계층의 대변인’을 자처해 유권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세를 불렸다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시리자), 프랑스의 극우당 국민전선(FN), 이탈리아의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이 각각 이념이나 정책 노선이 달라도 공통적으로 포퓰리즘 정당으로 불리는 이유다. 영국 BBC방송은 “이민·취업·세계화·EU 등 유권자들의 고민이 무엇이든지 간에 포퓰리스트들은 자신들이 대중의 불안을 잘 이해하고 있음을 각인시킨다”며 이들의 인기 비결을 설명했다.

포퓰리즘이 급부상한 데는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이 컸다. 1% 상류층의 과욕이 무고한 대중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다는 분노가 일면서 유럽 내 반(反)엘리트 의식이 팽배해진 것이다. 특히 그리스가 2010년 구제금융을 받기 시작하는 등 EU 회원국들이 남유럽의 재정위기를 분담해야 할 상황에 내몰리자 사태는 더 악화됐다. 영국 BBC방송은 “은행의 과오가 국가적 부채위기로 이어졌던 2011년 포퓰리즘에 대한 지지가 급증했다”며 “포퓰리스트는 2008년 이후 기성 정당들이 망각하고 있던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유권자들에게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내전과 가난을 피해 시리아 등에서 대거 건너온 난민 행렬도 유럽인들의 분노를 부추겼다. 지중해와 동유럽을 거쳐 유럽 본토로 유입된 난민의 수용 문제를 놓고 갈등이 일면서 ‘우리도 먹고살기 힘든데 왜 남 걱정을 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나온 것이다. 마린 르펜 FN 대표, 오르반 헝가리 총리, 헤이르트 빌더르스 자유당(PVV) 대표, 루이지 디마이오 오성운동 대표 등 포퓰리스들은 좌파·우파 가리지 않고 이를 민족주의와 결부시키며 세를 불려나갔다. 가뜩이나 높은 실업률과 성장률 정체, 난민 유입이 포퓰리스트들이 자생하기 좋은 토양을 제공한 셈이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배타적 행보도 유럽 포퓰리즘에 영감을 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이 한창이던 2016년 6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투표에서 탈퇴가 결정되자 “위대한 일”이라며 환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지난해 백악관 수석전략가에서 경질된 스티브 배넌은 이번 이탈리아 총선을 앞두고 유럽으로 날아가 극우 후보를 지원사격했다. 이후 독일의 극우 ‘독일을위한대안(AfD)’ 대표와 면담하고 스위스 보수파 행사를 방문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주류 정당이 설 자리를 잃는 사이 신생 포퓰리즘 정당이 목소리를 높이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뿌리 깊은 유럽의 의회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AfD가 제3당으로 등극한 독일이 지난해 9월 총선 이후 반년 가까이 연립정부 구성에 애를 먹었듯 포퓰리즘 정당의 득세로 유럽 각국에서 연정 꾸리기가 만만치 않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탈리아 역시 오성운동과 동맹당이 신경전을 펼치는 가운데 연정 구성에만 수개월을 낭비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전통 정당들이 지지자를 잃으면서 정부 구성이 어려워지고 소수 정부를 꾸리는 사례가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기성 정치인을 싸잡아 비판하며 주류로 급부상한 포퓰리스트들이 정작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성운동을 창당한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기성 정치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해왔지만 그릴로 자신은 물론 오성운동이 그동안 정치적으로 검증받은 적은 없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유럽의 포퓰리스트들은 일관된 신조 없이 대중의 관심사만 우선시한다”며 “유토피아적 향수를 자극할 뿐 현실 문제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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