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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니퍼트] "야구 꿈꾸게 한 '와이 낫 미?'...그 말 되뇌며 오늘도 뜁니다"

■ KT서 새 출발 KBO 최장수 외국인선수

오하이오주 작은 시골서 자라

다른 큰 꿈 꾸기 어려웠지만

WS 엔트리에 이름도 올려

나는 고향서 가장 유명한 사람

야구는 어디에서든 똑 같아

이젠 KT팬들 위해 뛸 차례

니느님 별명 고맙지만 과분

‘천적’ 박병호 상대 위해 분발





지난 2011년 프로야구 정규시즌을 앞두고 만난 키다리 외국인 투수는 “어디에서든 야구는 똑같다”고 말했다. 미국프로야구에서 뛰다 한국에 처음 건너와 모든 것이 낯설었을 터. 다소 불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꺼낸 “야구는 똑같다”는 말은 그래서인지 자기암시처럼 느껴졌다.

그때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이 선수는 이번에도 같은 말을 했다. “어디에서 뛰든, 어떤 유니폼을 입고 있든 야구는 똑같습니다.”

처음에는 203㎝의 농구선수급 장신으로 더 화제가 됐던 더스틴 니퍼트(37·미국). 7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 그는 한국프로야구(KBO) 리그 최장수 외국인선수, 니느님(니퍼트+하느님), 갓퍼트 같은 별명을 얻었다.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유니폼을 갈아입고 새 시즌을 맞게 된 ‘KBO 대표 외국인선수’ 니퍼트를 최근 KT 위즈의 홈구장인 수원 KT위즈파크에서 만났다.

올 시즌 프로야구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창단 후 3년 내리 최하위에 머물렀던 막내 구단 KT가 돌풍을 일으킬 수 있느냐다. KT의 1차 목표는 5할 승률. 보통 이 정도면 가을야구도 넘볼 수 있다. 메이저리그를 찍고 온 내야수 황재균이 가세한 무게감 있는 중심타선에 야무지게 자라준 젊은 투수들, 특급 신인으로 불리는 외야수 강백호 등 기대를 품을 요소들이 어느 때보다 풍부하다. 물론 니퍼트도 KT의 반란을 이끌 주역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니퍼트는 얼마 전만 해도 “은퇴는 당연히 두산 베어스에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까지 두산에서만 7년을 뛰며 94승(43패 평균자책점 3.48)을 쌓았다. 첫해 15승 등 4년 연속 10승 이상을 올렸고 2016년에는 22승 3패 평균자책점 2.95의 어마어마한 성적으로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와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해도 시즌 성적은 14승 8패 평균자책점 4.06으로 괜찮았다. 하지만 후반기 내리막이 컸다. 포스트시즌에도 부진했다. 결국 두산은 니퍼트와의 계약을 포기했고 니퍼트는 KT에 새 둥지를 틀었다. 두산 시절 스승인 김진욱 감독이 지휘하는 팀이다.

KBO 역대 최고 외국인 투수로 꼽히는 니퍼트는 연봉(계약금 포함 100만달러)이 지난해 대비 반토막 났다. 매년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에 있다가 지금은 다른 상황의 팀에 왔으니 새 시즌을 앞둔 기분도 좀 다르지 않느냐고 물었다. 니퍼트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두산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항상 같은 마음가짐으로 시즌에 임합니다. 탈꼴찌를 염두에 두고 던지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요. 팀의 위치나, 경기가 코리안시리즈냐 정규시즌이냐, 이런 것은 머리에 담지 않습니다. 제가 가진 것을 최대한 많이 끌어내서 팀의 1승을 위해 어떻게든 잘 던지자는 마음뿐이죠.”

니퍼트는 미국프로야구 마이너리그 시절 저명한 야구전문지 베이스볼아메리카(BA)가 뽑는 유망주 톱100에 단골로 들 정도로 전도유망했다. 메이저리그에 올라간 뒤로는 생각만큼 잘 풀리지는 않았지만 애리조나에서 텍사스로 옮기고 난 다음해인 2009년에 선발로만 10경기에 등판, 5승 3패 평균자책점 3.88로 활약했다. 이듬해에는 월드시리즈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니퍼트는 “이번은 당시 텍사스로 이적했을 때보다 훨씬 편안하다”고 말했다. “미국에는 팀도 선수도 너무 많아 한 번 이적하면 상대하는 팀과 선수가 확 달라지기 때문에 적응이 어렵다”는 설명. “KBO 리그에서는 벌써 7년을 뛰면서 똑같은 팀들을 상대했고 유니폼을 갈아입었어도 거의 같은 팀을 상대로 던질 것이기 때문에 편안하게 시즌을 맞이하고 있다”고 했다.

니퍼트와 또 다른 외국인 투수 라이언 피어밴드는 KT 창단 후 선발 마운드의 가장 강력한 원투펀치로 통한다. 둘은 스프링캠프를 거치며 벌써 단짝처럼 친해졌다고 한다. 피어밴드의 목표는 니퍼트처럼 롱런하는 것이다. 니퍼트는 “피어밴드와 함께해서 좋은 게 뭐냐면 그 역시 꽤 오랫동안(3년) 한국 야구를 경험했던 선수라는 것이다. 그 뜻은 서로 좋은 영향을 미치기가 더 쉽다는 것이고 그럼 팀 성적에도 그만큼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니퍼트가 최장수 외국인선수가 된 밑바탕에는 몸에 밴 배려와 존중의 자세가 있다는 평가가 많다. 그는 등판한 경기에서 공수 교대할 때 절대 먼저 더그아웃에 들어가는 일이 없다. 야수들을 기다렸다가 일일이 글러브를 부딪치며 인사한 뒤에야 마지막에 더그아웃에 들어가 앉는다. 그는 “수비를 열심히 해주고 항상 최선을 다해주는 데 대한 감사의 표시다. 선발투수인 나는 1주일에 한 번만 나가서 던지면 되지만 야수들은 매일 경기를 뛴다”며 “피곤하고 힘들 수도 있는데 내 뒤에서 열심히 수비해주는 게 항상 감사하고 그래서 내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산에서 니퍼트는 젊은 투수들의 멘토 역할을 했다. 경험 적은 투수들이 소극적인 투구를 하고 들어오면 경기 후 따로 밥을 사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KT가 니퍼트에게 바라는 것도 그런 역할이다. 매년 성장세가 돋보이는 선발진의 한 축 고영표가 특히 니퍼트를 잘 따른다고 한다. 니퍼트는 “미국 스프링캠프에서 고영표와 따로 식사한 적이 있는데 시즌이 시작되면 원정경기 때 또 밥을 사고 싶다”며 “1군은 물론 2군의 젊은 선수들도 먼저 내게 다가와 그동안의 경험들을 묻고는 했는데 그런 자세를 정말 높게 산다. 이런 모습들 때문에 올해 우리 팀이 보여줄 것들에 나도 기대가 크다”고 했다.

니퍼트는 KBO 리그 통산 100승에 6승을 남기고 있다. 100승은 KBO 역사상 외국인 최초 기록으로 건강만 보장된다면 충분히 달성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니퍼트는 “기록을 의식하고 던지지는 않을 것이고 설사 올해 못 이룬다고 해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란다. “알다시피 선발투수는 7이닝 무실점 호투하고도 승패를 기록하지 못할 수도 있고 5이닝 7실점했는데 승리투수가 될 수도 있잖아요. 그게 야구라고 받아들이면 개인 승수에 대한 생각은 작아지게 마련이에요. 물론 100승을 채운다면 정말 대단한 영광일 것입니다.”

4년 연속 홈런왕 출신인 박병호(넥센)가 KBO 리그로 복귀하면서 니퍼트는 새삼 야구 팬들의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하다. 유독 박병호에게 약했기 때문이다. 니퍼트는 과거 인터뷰에서 “타이밍이 잘 맞아서인지 박병호는 내 공을 굉장히 편하게 친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돌아온 최고 토종 타자와 팀을 옮긴 최고 외국인 투수의 맞대결은 올 시즌 KBO 리그의 흥행을 도울 ‘깨알 포인트’이기도 하다. 니퍼트는 “박병호의 복귀는 넥센 팬 등 한국 야구 팬들에게는 좋은 소식이었겠지만 나를 비롯한 투수들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고 웃어 보인 뒤 “미국에서 좀 더 잘할 수 있었던 선수인데 개인적으로 아쉬운 마음도 있다. 어쨌든 올 시즌 내가 더 분발하면 더 재밌는 대결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에 온 뒤 내 야구의 전성기를 함께한 번호여서 팀을 옮기고도 등번호 40번을 그대로 단다”는 니퍼트는 “은퇴도 100% 한국에서 할 건데 그 시점은 알 수 없다. 건강하게 팀 승리를 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바닥나지 않는 한 야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니느님’ 별명이 “영광스럽지만 여전히 과분하다”는 그는 “오하이오주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는데 고향에는 나처럼 많이 세상에 알려진 사람이 거의 없기는 하다”고 돌아봤다. “워낙 작고 구석진 마을이라 뭔가 다른 꿈을 꾸기가 어려운 환경이었어요. 하지만 ‘와이 낫 미(Why Not Me)?’, 그러니까 ‘나라고 안될 게 뭐야’라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그 생각은 한국에서 여덟 번째 시즌을 맞는 지금도 변함없고요.”

과거 지하철로 출퇴근할 때도 팬들의 사인과 기념촬영 요청을 거절하는 법이 없던 니퍼트. 그는 “팀이 이기든 지든 1회부터 9회까지 한결같은 응원을 보내는 한국의 야구 팬들에게 이 인터뷰를 빌려 깊은 감사를 보낸다. 그런 팬들이 있기 때문에 한국 야구가 더 돋보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내가 팀을 떠날 때 신문에 광고까지 내며 작별인사를 해준 두산 팬들을 잊지 못할 겁니다. 팬들한테 받은 편지, 그들이 직접 찍어준 사진들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어요. 언제나 재밌게 야구했던 선수로 기억되도록 이제 KT 팬들을 위해서 열심히 뛸 차례입니다.” /수원=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사진=송은석기자



He is

△1981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2005년 애리조나 소속 메이저리그 데뷔 △2008년 텍사스 이적 △메이저리그 통산 119경기 14승 16패 평균자책점 5.31 △2011년 KBO 리그 두산 입단 △2016년 정규시즌 MVP·골든글러브(다승·평균자책점·승률 1위) △정규시즌 통산 185경기 94승 43패 평균자책점 3.48 △한국시리즈 통산 7경기 2승 2패 평균자책점 3.48 △2018년 KT 위즈 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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