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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언어정담] 명함의 언어에 구속되지 않는 삶

작가

직업이란 배타적 영역뿐 아니라

일상서 숱한 기쁨 느낄 수 있어

사회라는 울타리에 갇히지 말고

존재만으로 행복한 삶 누렸으면





나는 아직도 명함을 내미는 일을 쑥스러워한다. 내 안에 영원히 사회화되지 않는 또 하나의 내가 있다. 그 수줍고 예민하고 까다로운 또 하나의 나는 좀 더 사회화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평소의 나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명함, 이런 것으로 어떻게 나를 증명할 수 있겠어. 좀 더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렇게 묻고 싶어지기도 한다. 명함을 주고받지 않아도 우리 그냥 서로를 말없이 이해해 주면 안 될까요. 명함 없이도 우린 이미 뭔가 통하지 않았나요. ‘교감’과 ‘소통’은 결코 명함으로 전달될 수 없는 마음과 마음의 울림이 아닐까. 나는 작가나 문학평론가라는 타이틀 없이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인간관계를 꿈꾼다. 명함의 단어들은 진정한 소통의 언어라기보다는 ‘증명’이나 ‘과시’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그런데 명함을 내놓으며 자기를 증명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작가라는 직업 안에 과연 나의 그 수많은 관심사와 다양한 정체성을 다 녹일 수 있을까 하는 물음 때문이다.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삶은 더없이 소중하지만, 글을 쓰지 않고 있을 때도 ‘나’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남녀노소가 골고루 섞여 있는 다양한 장소에서 강연을 하기도 하지만, 가르칠 때만큼이나 무언가를 배울 때 커다란 행복을 느낀다. 첼로를 연주하거나 그림을 그릴 때, 다시 어린이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처음 시작하는 듯한 희열을 느낀다. 꽉 짜인 스케줄 속에 살다보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워낙 짧기에 그 찰나의 행복은 더욱 소중하다. 행복의 밀도로 따진다면, 골머리를 앓아가며 글을 쓸 때보다는 순수한 독자일 때 훨씬 행복하다. 글쓰기를 사랑하지만, 창작의 기쁨은 반드시 글쓰기라는 힘겨운 노동을 통해서만 얻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직업이라는 하나의 배타적인 영역에서 기쁨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살며 사랑하며 배우고 일하는 온갖 일상 속의 복닥거림 속에서 다채로운 기쁨을 느끼며, 보다 전인적이고 총체적인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얼마 전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패터슨’을 보면서 ‘내가 꿈꾸는 행복’의 소박한 정답처럼 다가오는 아름다운 인생을 발견했다. 패터슨은 버스 운전기사이면서도 틈틈이 글을 쓴다. 그것도 타자기나 컴퓨터도 없이, 운전을 잠깐 쉴 때나 비번일 때 노트 위에 펜으로 글을 쓴다. 그가 훌륭한 작가라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은 아직 아내뿐이지만, 그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글을 쓰는 것 같다. 그는 힘겨운 노동 속에서도 자기만의 내면을 더욱 풍요롭게 가꾸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누구나 짜증을 낼만한 상황에서도 여유 있게 미소를 지으며 대처한다. 남들에게는 잠시 에너지를 충전하고 자잘한 스트레스를 푸는 짧은 휴식시간이 그에게는 일상 속에서 보석 같은 순간을 포착해 시의 언어로 표현하는 눈부신 창작의 시간으로 탈바꿈한다. 그는 버스기사라는 직업에 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숲 속의 현자처럼 지혜로운 사람, 은밀하고 위대하게 우리의 일상을 밝히는 사람, 그 어떤 사회적 울타리 속에도 가둘 수 없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은 존재다.

‘패터슨’을 보며, 마르크스의 ‘독일이데올로기’중 한 대목이 떠올랐다. 아무도 단 하나의 배타적인 활동영역을 갖지 않는 사회. 모든 사람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분야에서 자신을 새롭게 갈고 닦을 수 있는 사회.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고, 저녁에는 소를 치고, 저녁식사 후에는 비평하면서도, 사냥꾼도 어부도 목동도 비평가도 아닌 ‘그 무엇도 아닌’ 존재로서 행복할 수 있는 사회. 먼 훗날의 유토피아가 아닌 바로 지금 여기에서 그런 삶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요즘이다. 나는 틈만 나면 글을 쓰고, 틈이 없을 때도 글을 쓰고, 지금도 졸린 눈을 비비며 글을 쓰고 있지만, ‘작가가 아닌 순간’에도 또 다른 나의 잠재력을 키우며 삶을 더욱 뜨겁고 눈부시게 사랑하고 싶다. 삶이 여유롭지 않아도 그 제한된 환경 속에서나마 나만의 여유, 나만의 여백, 나만의 피난처를 찾아 ‘어떤 직함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나’를 만들어가고 싶다.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는 저마다의 베토벤과 모차르트, 저마다의 라파엘과 미켈란젤로가 분명 살아 숨 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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