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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손이천의 경매이야기]40년이상 한가지만 그려...누구나 소장하고 싶은 '물방울 작가'로

■경매 달구는 김창열 '물방울'

1973년 파리 첫 개인전서 '물방울 화가' 본격화

2000년대에는 다양한 색과 형태로 변화 시도

지난 20년동안 거래된 경매총액 300억에 달해

김창열 ‘일곱 개의 물방울’ 1977년작, 마포에 유채, 50×50cm, 시작가 4,500만원에 나와 6,600만원 낙찰됐다. /사진제공=케이옥션




3월 봄 경매가 끝났다. 214점이 출품돼 172점이 팔리며 낙찰률 80%를 기록했고 판매된 작품의 낙찰액을 모두 더한 금액이 110억원에 달해 성공적인 경매로 평가된다. 가장 높은 가격에 팔린 작품은 야요이 쿠사마의 ‘무한그물(Infinity Nets)로 10억원에 낙찰됐고 그 뒤를 김환기의 ’남동풍 24-Ⅷ-65‘이 9억4,000만원이 낙찰가 순위를 이었다. 흔히 경매라 하면 이처럼 최고가 작품이 가장 주목을 받음 직하나 실제 경매장의 분위기를 달구는 주인공들은 따로 있다.

경매 도록에는 몇 가지 비밀, 거창하게 얘기하면 전략이 담겨있다. 200점이 넘는 작품들을 어떤 순서로 경매에 올리느냐는 것인데 경매 도록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면수 정하는 것을 ‘페이지네이션(page nation)’이라 하고 이 과정에서 경매 출품작의 순서가 정해진다. 경매작품 번호 앞에는 출품번호 ‘LOT(items to be sold·경매용 품목)’가 붙는데, 보통 LOT 1번부터 20번 사이에 치열한 경합이 예상되는 작품들을 배치해 경매장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한다.

역시나 이번 경매에도 LOT 2번에 출품된 이우환의 ‘조응’이 1,600만원에 경매를 시작해 높은 추정가 2,500만원을 넘기며 3,500만원에 낙찰됐다. LOT 3번 김환기의 작품 ‘산’도 2,200만원에 경매를 시작해 3,900만원에, LOT 4번 김창열의 ‘일곱 개의 물방울’도 4,500만원에 경매에 올라 6,600만원에 낙찰되며 시작부터 경매장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이 때문에 대체로 LOT 20번 내외에는 인지도 높은 작가들의 소품, 드로잉, 종이 작품 등 작가 명성에 비해 다소 적은 예산으로도 구입할 수 있는 작품이 자리하게 된다.

최근 경매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기몰이를 하며 경매장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 주인공은 김창열의 작품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구상작가이자 많은 사람들에게 ‘물방울 작가’로 알려져 있는 김창열은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나 1948년 검정고시를 통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을 입학했다. 그러나 전쟁으로 학업을 잇지 못하고 인민의용군에 입대, 경찰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경찰전문학교에서 근무하게 된다. 그는 이 시기에도 미술에 끈을 놓지 않고 일본의 화집과 미술서적을 통해 당시 세계적인 흐름이었던 앵포르멜 운동을 접한다. 그 후 현대미협의 ‘현대전’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하고 1957년에는 박서보, 정창섭, 하인두 등과 함께 ‘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하여 한국의 급진적인 앵포르멜 미술운동을 이끌었으며, 1961년에는 결국 경찰생활을 그만두고 서울예고 교사로 근무하게 된다.

이때부터 김창열은 세계 무대로 눈을 돌렸고 1965년 상파울로 비엔날레에 작품을 출품해 국제 무대의 꿈을 키웠다. 1966년에는 록펠러 재단의 초청으로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69년 백남준의 도움으로 파리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에 참여 후 이를 계기로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김창열 ‘밤에 일어난 일’ 1972년, 캔버스에 유채, 160×162cm, 작가 소장. /사진제공=케이옥션




1972년 살롱 드메 전에 물방울 그림 ‘밤에 일어난 일(Event of Night)’을 출품해 본격적으로 데뷔하게 된 김창열은 현재까지 물방울을 소재로 전세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작품은 프랑스 퐁피두센터, 일본 도쿄국립미술관, 미국 보스톤현대미술관, 독일 보쿰미술관 및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삼성리움미술관 등 전 세계적으로 다수의 주요 미술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물방울을 그리기 전 1960년대의 김창열은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가 ‘서정적 추상’이라고 부른 바 있는, 구상과 추상 사이의 작품을 제작한다. 어두운 색채로 화면을 가로지르며 두텁게 바른 ‘제사’시리즈가 전쟁으로 인한 상흔을 담아 넋을 달래는 일종의 진혼의식이었다면, 1971년 그린 ‘제전;에서는 명확하게 정리된 선과 형상 그리고 밝은 색채의 변화가 나타난다. ‘제전’이후 점차 물방울 이미지에 가까워졌는데 초창기 김창열은 신문지에 물방울을 그렸고 1973년 파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 무리 지어 있는 물방울을 작품을 출품하며 본격적인 물방울로의 여정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바탕을 칠하지 않은 거친 마대의 표면을 사용하거나 거칠거칠한 모래 화면에 물방울을 그렸고, 1980년대 중후반에 이르면 화면에 한자를 도입하여 동양적 철학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0년대 들어 작가는 ‘회귀’라는 이름으로 작품활동을 지속했고 물방울의 배경엔 오랜 해외생활로 인한 향수를 표현한 천자문이 등장한다. 2000년대에는 채도가 낮은 배경에서 벗어나 다양한 색과 형태의 변화를 시도했고, 물방울 모양의 큰 유리병에 물을 담아 천장에서 쇠줄로 달아 늘어뜨린 설치미술도 시도하며 작업의 스펙트럼을 확장시켜 간다.

아마도 김창열처럼 40년 이상 한가지 소재에만 집중한 작가도 무척 드물 것이다. 그 꾸준하고 오랜 작업의 결과로 지난 20년간 경매에서 거래된 김창열 작품의 총액은 무려 300억원에 달하고, 현대미술에 문외한도 ‘물방울 작가’라 하면 알아채는 소위 미술계 넘사벽의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이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허(噓)’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이다”고 한 김창열. 모든 것을 무와 허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작업을 했지만, 어떤 작품보다 소장하고 싶은 작가가 된 것이 예술의 매력이자 아이러니가 아닐까.
/케이옥션 수석경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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