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글로벌현장에서] 브라질 땅에 뿌려진 한국교육의 씨앗

이정관 주브라질 대사

한국가톨릭단체가 2002년 세운

여학생 기숙학교 '빌라 다스...'

한국적 교육방식 도입해 큰 성과

그들에겐 낯선 규율·통제 많지만

놀라운 변화에 현지서도 화제





이정관 주브라질 대사

브라질 사람들이 한국을 부러워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아이템이 바로 교육이다.

브라질의 교육이 취학률이나 학업성취도와 같은 객관적인 지표에 있어 세계 평균을 밑도는 미흡한 수준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학생들이나 교사들이나 학업에 대한 진지함과 열의가 결여돼 있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이것은 정부의 정책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오랜 기간에 걸쳐 쌓인 사회문화적 현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 교육이라는 브랜드를 양국관계를 끌어올리는 데 요긴하게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은 굴뚝 같았지만 막상 한국의 교육 제도와 정책을 벤치마킹하겠다고 나서는 브라질 인사들 앞에서 해 줄 말은 궁색했다.





그러던 차에 수도 브라질리아 인근 소도시에 있는 ‘빌라 다스 크리안사’라는 학교에서 졸업식 초대장을 보내왔다. 이 학교는 한국의 가톨릭 단체가 중심이 돼 빈곤 가정의 학생들에게 도덕정신 함양과 지적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로 지난 2002년에 설립했다. 브라질 전국에서 선발된 중고등 과정 6개 학년 800여명의 여학생이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으며 졸업생들이 대학 진학이나 취업에서 매우 뛰어난 성적을 보이고 있어 지역사회에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약 50명의 교사진은 모두 브라질 인이지만 한국에서 파견된 수녀님 두 분이 운영을 총괄하면서 한국적인 교육방식을 상당 부분 도입하고 있다.

처음으로 방문하게 된 이 학교가 주는 첫인상은 교내 구석구석이 휴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리돼 있다는 것이었다. 졸업식장인 강당에 들어서자마자 전교생이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느슨하기만 한 브라질 문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아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학생들은 정숙한 자세였지만 모두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띤 환한 모습이었다. 정해진 식순이 끝나자 재학생과 졸업생을 대표한 일부 학생들의 공연이 무대 위에서 펼쳐졌는데 부채춤·태권도 등 대부분 한국적인 내용이었다. 그런데 공연의 마지막 순서가 되자 앞 열에 앉아 있던 내빈들은 무대 위로 올라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무대 위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더니 강당을 가득 메운 학생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어 전교생이 참여하는 마지막 프로그램이 시작됐는데 800여명이 마치 한 사람이 된 것과 같은 일사불란한 율동과 노래였다. 한국에서라면 별로 특별할 것이 없겠지만 브라질이라는 나라에서 정말 만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두 살 때 브라질로 이주한 직원이 필자와 동행했는데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라면서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 학교의 교육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한창 자라나는 사춘기의 소녀들을 가족과의 소통마저 엄격히 제한되는 규율과 통제 속에서 생활하게 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사의 무성의와 무질서한 수업 분위기하에서 상당수 학생이 유급하거나 학업을 중도 포기하고 있는 브라질 학교들의 현주소를 생각할 때 브라질 교육을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이 학교의 독특한 교육방식이 빚어내고 있는 놀라운 변화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질서와 규율이 한국 교육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학교의 예는 한국과 브라질 사이의 좁히기 어려운 문화적 간격에도 불구하고 한국적 교육방식을 브라질에 이식해 의미 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한국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고 때로는 지나쳐서 문제가 되는 것들이 브라질로 건너오면 귀하게 쓰일 수 있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기도 하다. 브라질리아 한국대사관 앞길을 뒹굴면서 운전을 방해하는 망고 열매들도 한국인들의 식탁에 오르면 귀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한국 사회를 각박하게 만들고 있는 치열한 경쟁 문화도 브라질 사회에서는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한·브라질 양국은 각자의 것들을 서로에게 기쁘게 제공해줄 수 있는 이상적인 상호보완적 협력관계의 완성을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할 운명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