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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손이천의 경매이야기]미군PX 등서 그림 팔아 생계...'빨래터' 50년만에 美소장자가 공개

■박수근 그림이 뉴욕 가기까지

학벌·배경 없어 개인전 못열고 외국인에 판 그림 많아

해외 소장가들 경매에 작품 내놔 한국으로 되돌아오기도

최근 미공개작 '노상의 사람들' 뉴욕 경매시장에 출품

오는 18일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 출품되는 박수근의 ‘노상의 사람들’. 예상 응찰가는 약 2억1,000만~3억2,000만원(20만~30만달러)이다. /사진제공=크리스티 코리아




네 번, 다섯 번 연거푸 국내 미술 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운 김환기, 대표작 ‘소’가 47억원에 낙찰되면서 다시금 그 저력이 인구에 회자된 천재화가 이중섭. 미술 경매시장 뉴스가 김환기와 이중섭으로 한창 달아올랐지만 이들에 앞서 오랜 기간 미술시장 최고가 기록을 차지하고 있었던 이는 ‘국민화가’라 불리는 박수근(1914~1965)이었다. 국민 동생, 국민 MC, 국민 배우 등 다양한 분야에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쓰지만, 명실공히 ‘국민 화가’라는 타이틀은 김환기도 이중섭도 아닌 박수근의 몫인 것 같다.

지난 2007년 5월. 45억2,000만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작품 ‘빨래터’는 2015년 10월, 김환기의 푸른색 추상화 ‘19-Ⅶ-71 #209’가 47억 2,100만원에 낙찰되며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기까지 8년 넘게 국내 최고가 미술품 1위 자리를 지켜왔다. 1950년대에 제작된 이 작품은 가로 72cm, 세로 37cm 크기로 시냇가를 중심으로 흰색, 분홍색, 노란색, 민트색 등 각기 다른 색의 옷을 입은 여섯 명의 여인이 앉아 빨래하고 있는 옆모습을 그렸다. 당시 박수근이 자신에게 물감과 캔버스를 지원해주던 미국인 소장가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선물한 작품으로 알려졌으며 50년만에 공개돼 주목을 받았다.

가난한 생활 탓에 살아생전 단 한번도 개인전을 열지 못했던 박수근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척박하고 고단한 시대상과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예술은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평범한 견해를 가졌던 박수근은 장터의 아낙네, 빨래터의 여인, 아기를 업은 여인, 광주리를 이고 있는 여인, 할아버지와 손자, 나목 등 곤궁한 삶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내는 보통 사람들을 화폭에 담았다.

작가와 작품을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이해해야 한다. 김환기, 이중섭과 동시대를 살았던 박수근은 1914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서른 한 살에 해방을 맞았으나 6·25 전쟁이 일어난 후 분단의 시련을 겪어야 했다. 어렸을 때 집안은 유복한 편이었으나 부친의 사업실패로 점점 생활이 어려워져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더 이상 진학할 수 없게돼 미술학교를 가려던 꿈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박수근은 밀레의 ‘만종’을, 그것도 오리지널이 아닌 복사본을 접한 후 큰 감동을 받았다. 이 담에 커서 밀레와 같이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정도였다.



또 박수근의 작품 속 향토적인 소재는 1930년대 이후 우리 미술의 가장 특징적인 흐름 속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며 그의 환경과도 관계가 있다. 강원도 양구 시골에서 태어나 농사를 짓는 집안에서 자랐고 나라 전체가 가난했던 1950년대와 1960년대를 살아가며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곤궁하고 고단한 삶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내던 사람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김환기와 이중섭처럼 일제 강점기 대부분의 화가들은 일본 유학을 통해 입지를 굳혔지만 박수근은 유학은커녕 미술학교 출신도 아니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소위 학벌이나 배경이 없었던 박수근은 미술계의 제도권 밖에서 맴돌며 서러움도 받았고, 국전에 출품했지만 낙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조건이었기에 제도권에 섞이지 않고 오히려 독창성을 바탕으로 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평가된다.

박수근은 1940년 평남도청에 서기로 취직이 되어 평양에 살게 되는데 1945년 해방을 맞자 금성에서 미술교사를 하게 된다. 그 후 6·25 전쟁이 터지자 서울로 내려오게 되는데 피난민이었던 박수근은 미군 PX에서 미군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일로 생계를 이어간다. 1956년경부터는 반도화랑에서 미군이나 외국인에게 기념품으로 그림을 팔아 생활을 영위했고, 이 시기에 해외로 팔려 나간 작품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외국 경매에 출품되기도 한다. ‘빨래터’ 역시 미국인 소장가가 가지고 있던 작품이다.

얼마 전 한 외국 경매사에 박수근의 미공개작 ‘노상의 사람들’이 출품돼 한국에서도 프리뷰가 진행됐다. 곧 뉴욕 경매에 오를 예정인 이 작품 역시 미국의 한 소장자가 오랜 기간 갖고 있다가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민 화가’ 박수근의 작품이 다시 우리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케이옥션 수석경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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