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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 개혁 무엇이 문제인가] "주주가치 확대" 내걸지만...'공룡집사' 동원, 재벌 손보기 우려

<3> 위험한 연금 사회주의...스튜어드십 코드의 그늘

단순 수익확대 넘어 경영전반에 적극적 영향력 행사

정치적 입김따라 지배구조 개선 도구로 변질 가능성

"연기금, 독립적 조직으로 절차 따라 의사결정 해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오른쪽)이 지난해 12월 27일 오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서울경제D




기관투자가가 투자 기업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려 수익을 높이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가 변질 되며 연금사회주의(가입자를 대신해 정부가 기관투자자로 하여금 기업을 통제하는 것)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기관투자가에 노후자금을 맡긴 국민 편이 아니라 이들을 관리하는 정부·정치권의 재벌개혁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2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기금운용본부는 최근 지배구조 개선을 추진하는 투자 기업과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주요 주주의 지위로 배당 확대에 대한 기업의 입장을 들으려 했지만 공정공시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며 기업 측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유가증권시장공시규정은 특정 주주가 공시되지 않은 주요 정보를 파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상위인 자본시장법 역시 내부 정보를 투자에 활용하면 처벌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가 투자기업과 단순한 수익 확대뿐 아니라 경영전략·위험관리·지배구조 등 경영사항 전반에 대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도록 하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에 따르려면 기존 법을 어기게 되면서 오히려 도입 이전보다 대화를 막는 것이다. 법 전문가이기도 한 업계 관계자는 “기존 자본시장법과 상충하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담기고 국민연금은 상법 개정을 전제로 주주권 행사 가능성을 높여 의결권지침을 변경하면서 현장에서는 혼란이 일고 있다”고 말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가가 주주로서 목소리를 내서 수익률을 높이고 자본시장을 활성화하자는 취지로 지난 2014년부터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논란에 이어 국민연금이 외압 논란에 휘말리면서 2016년 이후에는 국민연금을 통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 방안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공정거래정책 도구가 된 것이다.



이번 정부 들어 보건복지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복지부는 고려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연구 용역을 맡겼다. 연구 보고서는 국민연금이 외부인으로 구성된 자문기구였던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를 수탁자책임위원회로 확대하고 환경과 사회·지배구조를 근거로 투자하는 ESG 투자를 전 영역에 도입하도록 권고했다. 또 기업과 대화를 늘리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기업은 중점대상회사로 지정해 명단을 공개하고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연구 결과가 참고사항일 뿐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두 달을 앞둔 상황에서 정부의 의도대로 큰 틀은 흘러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금융투자업계는 보고 있다.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자는 취지가 옳더라도 도입의 효과와 파장 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전 세계 연기금 가운데 가장 국내 기업 투자 지분이 많은 국민연금에 여과장치 없이 적용된다면 오히려 해외 투기성 헤지펀드에 좋은 일만 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의 7%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5% 이상 지분을 들고 있는 상장사는 삼성전자·현대차 등 305곳에 달한다. 국민연금을 제외한 나머지 기관투자자는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데로 따르는 경향이 짙다.



노르웨이국부펀드, 네덜란드 연기금 등 적극적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운영하는 해외 연기금은 아예 자국 내 투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국민연금의 10분의1에 불과하다. 국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제한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통제를 받는 노르웨이국부펀드 역시 일각에서는 투자 전문성에 의구심을 나타낸다. 캐나다 연금투자이사회는 정부로부터 철저히 독립되고 금융투자업계뿐만 아니라 실제 기업 경영에 참여했던 전문가가 모여 의사결정을 하면서 시장 중심의 의사결정을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영국 등의 금융회사들이 위험한 파생상품을 팔다가 생긴 일이라는 반성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가 민간금융기관이 자율규제하도록 틀을 잡으면서 금융기관(기관투자가) 스스로에 대한 개혁이 아니라 기관투자가가 투자 기업에 대한 행동주의를 강화하라는 쪽으로 흘러갔다. 영국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벤치마크 모델로 가져온 한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정부기관인 증권거래위원회가 비슷한 내용으로 기관투자가의 권한을 강화하는 규정 개정을 추진했다가 법원에서 패소했다. 우리보다 먼저 도입한 국가 역시 기관투자가의 전문성이나 투명성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일고 있다.



일부 해외 헤지펀드는 단기 차익을 얻는 데 스튜어드십 코드를 악용할 수 있다. 모든 기관투자가가 선량한 장기 투자자가 아니며 헤지펀드는 특히 선한 의도로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도 외압 의혹과 별개로 투자 자체에 대해서는 외국계 펀드세력의 공격대상이 된 게 사실이다. 전 세계 의결권 자문시장의 60%를 차지하는 의결권 자문사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는 삼성물산이 저평가됐다면서 합병 반대 의견을 냈다. 삼성물산 지분을 들고 있던 헤지펀드 엘리엇도 지분가치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같은 주장을 폈다. 그러나 미국과 달리 국내 자본시장법은 자산가치를 넣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후 이들은 의견을 수정했고 합병 과정에서 지분을 팔지 않았다.

의결권을 행사하는 의결권 행사전문위의 운영도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9명의 위원 중 기업을 대변하는 1명은 1년째 공석이고 나머지 위원도 대부분 교수 출신으로 회의에 불참하는 경우가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비율의 부적절성을 이유로 삼성물산 대표이사 선임 반대를 결정했을 때도 참석자 7명 찬성이 4명에 불과했다.

KB금융의 노조추천 사외이사 반대 과정에서는 노무 담당 사외이사가 겹친다는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반대하면서 KB노조가 반발하기도 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찬성하는 쪽에서도 의사결정이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려대 산학협력단은 보고서에서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영향력을 발휘해 정책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면서 “독립성 있는 조직 구조를 갖추고 절차와 기준에 따라 주주활동을 수행하며 그 내용을 공개해 우려를 적극적으로 해소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임세원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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