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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차라리 없애라? 임산부 배려석은 억울하다





안녕, 나는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서울의 임산부 배려석이야. 임산부들이 대중교통을 보다 편하게 타도록 배려하기 위해 서울 시내버스에서는 2012년, 지하철에서 2013년에 태어나 일하기 시작했지. 1,300만 서울 시민의 발 지하철에만 7,140개가 있어.

처음 생겼을 때는 옷은 다른 좌석들과 똑같이 입은 채 벽면에 내가 있다는 표시만 붙여두었지. 그런데 항상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다고 욕을 먹었어. 임산부들이 내게 오지 못하고 늘 다른 사람들을 태워간다고 말이야. 그래서 2015년부터 지하철 일부 호선에서 핑크색 옷을 입고 달리기 시작했어. 다르게 입어야 나를 알아볼 것 같았거든. 2016년 10월에는 모든 지하철에서 핑크색 옷을 입었고 발밑에는 카펫까지 깔았지.

그런데 이렇게 바꿨는데도 임산부들은 선뜻 내게로 오지 않았어. 먼저 앉아있는 승객들이 자리를 비키지 않기 때문이지. 2016년 10월 임신·육아·출산 커뮤니티 맘스홀릭베이비와 연합뉴스TV가 임산부 200명을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임산부 배려석을 이용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로 ‘다른 사람이 앉아있어서(33%)’가 꼽혔을 정도야.

특히 겉보기에는 일반인과 구분이 되지 않는 임신 6개월 이전 초기 임산부들은 감히 내 위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지 못했어. “젊은 사람이 여기 왜 있냐?”, “어딜 봐서 임산부야? 증명해봐!”라며 소리를 지르던 사람까지 있었거든. 이러니 자리를 비켜달라는 말을 하지 못해 주저하는 임산부들이 많을 수밖에. 말 못하는 임산부들을 대신해 안내방송을 해달라고 기관사 아저씨한테 부탁했지만 큰 효과가 없었지.

그러다 보니 나에 대한 임산부들의 불만이 커졌어. 2016년 말 ‘임산부 배려 엠블럼 커뮤니케이션 효과’ 조사를 보면 ‘매우 불만족한다’는 의견이 37.1%, ‘조금 불만족 한다’는 의견이 23.5%나 나왔거든.

다른 도시에 있는 친구들도 상황이 비슷한지 별별 방법을 다 시도하더라고. 부산 친구는 임산부가 다가오면 반짝거리며 소리 내는 핑크라이트를 달았고, 대전 친구는 임산부가 눈치 보지 않고 앉을 수 있도록 곰 인형을 안고 있었어.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도 나와 내 친구들은 여전히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달리고 있어. 하도 억울하고 궁금해서 지난해 10월 인구보건복지협회를 통해 왜 그랬는지 물어보니 ‘임산부인지 몰라서’라는 답변이 41%가 나왔어.

설문 결과를 보니 나는 정말로 궁금해졌어. 정말로 임산부인지 몰라서 내 위에 앉아있으면서 안 비켜주는 거야? 임산부 배려석인걸 알면서도 그냥 힘들어서, 귀찮아서 스마트폰을 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지는 않아?

최소한 여기 앉아있으면 언제든 비켜줄 수 있는 자리라는 마음을 갖고 조금만 주변을 살펴주면 안 될까?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임산부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조심해야 하거든. 초기 임산부의 경우 5명 중 1명꼴로 유산을 경험할 정도라니까.

벌써 태어난 지 7년이나 된 나. 나도 이제 ‘일 못한다’, ‘차라리 없어져라’하는 욕 그만 먹고 임산부들을 위해 제대로 일하고 싶어.
/연유진·이종호기자 economicu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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