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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그라피티





지난해 7월11일 서울 성동구 군자차량기지에 20대 영국인 청년 2명이 몰래 숨어들었다. 이들은 다음날에도 중랑구 신내차량사업소에 들어가 지하철 전동차에 대형 그라피티(graffiti)를 그렸다. 형제인 이들이 새겨넣은 것은 높이 1.0~1.1m, 길이 11~12m의 글자 ‘SMTS’ ‘SMT’ 등. 범행 하루 전에 입국한 형제는 이틀에 걸친 ‘거사’를 치른 후 13일 출국 예정이었으나 경찰에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형제의 행위가 예술 차원을 넘었다며 재물손괴죄 등으로 징역 4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들처럼 해외원정도 마다하지 않으며 거리 곳곳에 낙서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이태원·홍대 주변에서도 이들의 흔적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긁다, 긁어 새기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에서 비롯된 그라피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주로 폐허가 된 빈민가나 도심에서부터 시작됐다.

1960년대 들어 필라델피아 갱단에서 자신들의 구역을 알리는 용도로 활용되다 뉴욕으로 퍼져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흑인들이 건물 벽·지하철 전동차 등에 구호·그림을 그리면서 저항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미국 화가인 장 바스키아는 그라피티를 예술로 승화시킨 천재로 추앙받고 있을 정도다. 미국 필라델피아, 우리나라 일부 지자체에서는 도시미관을 예술적으로 살려낸다며 장려하고 있다.



올 2월 미국에서는 뉴욕 퀸스 롱아일랜드시티에 있는 건축물 ‘5포인츠’ 벽에 그려진 그라피티를 훼손했다며 총 670만달러(약 72억원)를 아티스트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건물주가 그라피티를 허용했다가 사전공지 없이 지워버렸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예술 장르로 인정받는 추세지만 ‘성지(聖地)’라는 뉴욕에서도 불법으로 단속하는 등 대다수 지역에서 아직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공공시설물이나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범죄행위라는 것이다.

서울 중구 한화빌딩 앞에 있는 ‘베를린장벽’이 최근 그라피티로 덮여 중구청이 수사 의뢰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다. 이 장벽은 2005년 베를린시가 통일을 기원하며 서울시에 기증한 실제 베를린장벽의 일부다. 형형색색의 그림과 낙서로 장벽을 훼손한 정모씨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을 보는 내내 ‘이렇게까지 해야 했을까’하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의도의 순수성은 인정하더라도 예술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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