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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팀 24/7] 순찰 돌다 실족사해도...근무중 쓰러져도...순직 아니라굽쇼?

지나치게 인색한 경찰관 순직인정

근무일지 등 서류위주 심사에

강력사건·112긴급출동·순찰 등

피로도 높은 현장상황 누락 많아

초심 순직 인정비율 54% 그쳐

기나긴 소송전에 유가족들 고통

심의회 업무특성 등 고려 필요

현충일인 지난 6월6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기념공원에서 열린 순직 경찰공무원 추모식에 참석한 경찰관들이 묵념하고 있다. /사진제공=경찰청




지난해 9월 적막한 경북 포항의 한 파출소에 구급차가 갑자기 들이닥쳤다. 야간근무를 서던 최모(30) 경장이 새벽 2시52분께 코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최 경장은 20여분 만에 사망했다. 유가족들은 순직을 신청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급여심의위원회는 “지병도 없었고 신체검사도 무리 없이 통과했다”면서 “경력이 짧은데다 사인이 불명확해 업무 관련성을 확인할 수 없다”며 불승인했다. 유가족들은 청와대에 청원 글을 올리고 노무사의 도움을 받아 6개월을 싸운 후에야 순직을 인정받았다.

세월호 사고 수습에 참여했던 전남 진도서 정보경비계장 김모(49) 경위는 지난 2014년 진도대교 난간에서 투신자살했다. 심의위는 “참사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는 인정되나 이혼·자녀자살·특진탈락 등 내부 사유가 있었고 우울증 치료 내역도 없다”며 순직 불승인을 통지했다. 유가족들은 같은 해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내고 법정 다툼 끝에 김 경위의 순직을 인정받았다.



서울경제신문이 ‘호국 보훈의 달’ 6월을 맞아 취재한 결과 2013~2017년 5년간 경찰관 순직 신청자 중 53.6%만이 공무원연금급여심의위원회의 초심을 통과했다. 각종 질병을 떠안고도 격무를 소화하다 사망해도 업무 연관성을 증명하지 못해 절반가량은 순직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경찰 순직 인정과 관련한 청원만도 50여개에 달한다. 경찰 관계자는 “심의회가 근무일지나 동선 등 서류 위주로 심사하다 보니 강력사건이나 112 출동, 순찰 등 피로도가 높은 현장 상황을 감안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며 “국가를 위해 복무하다 사망한 것을 인정받기 위해 법정 다툼까지 해야 하는 동료 유가족들을 보면 참담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공무원의 순직 여부는 현재 공무원연금공단 소속 연금급여심의위원회가 심사한다. 통상 2~6개월가량의 심사 기간을 거쳐 승인 여부가 결정된다. 순직으로 인정되면 근무 위험도에 따라 1억~2억원가량의 유족 보상금, 망자 월 소득액의 38~43%를 연금으로 지급 받는다. 자녀들도 국가유공자 자녀로서의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



경찰 관계자들은 순직 승인이 까다로운 것은 경찰·소방공무원 등 현장직의 근무 실태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존 병력이 악화됐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신청자의 평소 흡연 여부와 복용한 약이나 생활습관까지 꼼꼼하게 확인하지만 쉼 없이 관내를 이동·순찰하고 교체근무가 잦은 업무의 특성은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뇌출혈이나 췌장암처럼 과로·스트레스에 따른 질병들은 순직자의 단순 근무일지만으로 업무 피로도를 증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공무원연금공단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공무 기여도를 고려해 현장직 공무원의 순직을 좀 더 인정해주는 편”이라면서도 “사망사건은 기존 질병의 영향도 있을 수 있어 주로 의료계의 의견을 듣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실제 2015년 새벽 3시께 전남지방경찰청으로 출근하던 박모 경위는 운전 중 가드레일에 부딪힌 뒤 뒤따라오는 차량과 충돌해 사망했다. 심의위는 “이동 경로 시간이 통상 소요 시간보다 많이 걸렸고 도착 목적지가 사무실인지 관사인지 불분명하다”며 불승인 판정을 내렸다. 또 2016년 관할 지역 답사를 목적으로 울릉도 성인봉에 올랐다가 절벽 아래로 떨어져 사망한 조모(50) 경정에 대해서도 “사고 시간이 초과근무로 기록돼 있지 않았고 ‘등산을 하러 갔다’는 주변인의 진술이 있다”며 순직 신청을 불승인했다. 두 사례 모두 유가족이 자료를 보완해 재심을 신청해 수개월 뒤 순직으로 처리됐다.

유가족들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적으로도 힘들 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기나긴 소송전에도 나서야 한다. 자료준비와 비용은 오롯이 유가족의 몫이다. 형사소송법상 피의자는 국선 변호인 제도를 보장받지만 국가가 피고가 되는 행정소송의 고소인은 국가 예산으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힘든 유가족들이 망자의 명예를 위해 부검소견서와 근무일지 등을 발로 뛰며 찾다 보면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다. 실제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은 행정소송 등을 통해 순직을 인정받은 유가족들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몸과 마음이 힘들다”며 모두 거절 당했다.

다만 오는 9월부터는 기존 순직·공상 심사 및 승인 체제가 개편된다. 우선 심사 기능이 공무원연금공단에서 인사혁신처의 재해보상심의회로 넘어가고 서류심사 대신 현장조사를 늘려 위험직무의 순직 인정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망자가 수 십년간 국가를 위해 일했는데 국가가 이런저런 이유로 순국 인정에 인색하면 유가족들도 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며 “위험과 피로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현장직 공무원의 업무환경을 심의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성욱·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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