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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개월 딸과 아빠의 스윗한 스위스 여행] <7>고르너그라트의 '한류 베이비'

지난 5월 26일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10회 분량으로 20개월 딸과 아빠가 떠난 스위스 여행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스위스 여행은 지난해 12월 9일부터 17일까지 루체른, 베른, 체르마트, 생모리츠, 취리히를 둘러본 8박9일 여정입니다. 딸과 둘이서만 여행을 떠난 ‘용자’ 아빠는 혼행(혼자여행)을 즐기며 전세계 44개국을 다녀온 자칭 중수 여행가입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딸과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 긍정적 효과와 더불어 엄마가 이제 안심하고 딸을 아빠에게 맡겨두고 주말에 외출해버리는 ‘주말 독박육아’의 부정적 영향이 모두 나타났습니다. 10년 전 ‘혼행’을 줄기차게 다닐 당시 혼행이 대중화될것이라 예측 못 했는데 앞으로 10년 뒤에는 아빠와 자녀만 떠나는 여행이 혼행처럼 익숙해 질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며 여행기를 시작합니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 앞에서의 부녀




산은 아무에게나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지 않는다고 했던가. 전날 그렇게 맑던 체르마트는 아침부터 잔뜩 흐렸다. 여행 다닐 때 비교적 날씨 운이 좋았었지만 이번 스위스 여행은 도통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

체르마트 산봉우리가 붉게 타오르는 일출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서둘러 숙소를 나왔지만 하늘은 뿌옇기만 하다. 날이 밝아왔지만 안개로 인해 일출은 볼 수 없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뒤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갔다. 너무 늦게 식당으로 온 탓인지 조식뷔페에 여기저기 빈 바구니만 남아 있다. 수아가 좋아하는 크로아상은 1개만 달랑 남아 있었다. 직원들에게 리필을 요청할 수도 있었지만 일단 직원이 어디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또 귀찮기도 했다. 방으로 올라와 즉석밥을 가져와 베이컨과 함께 식사를 마쳤다.

오늘의 여행코스는 관광객 열명 중 아홉명은 탄다는 고르너그라트 산악열차 체험이다. 전날 타려고 했지만 고장으로 인해 이날로 미뤘다. ‘시간약속 철저하고 모든게 정리정돈돼 있을 것 같은 스위스이니 잘 고쳐놨겠지’라는 생각으로 기차역에 도달했다. 열차는 정상 운행했다. 전망대에서 무료 컵라면을 먹을 수 있는 쿠폰과 스위스 패스를 매표소에 제시하니 탑승권과 작은 종이 조각을 내민다. 이 작은 종이조각이 컵라면 교환권이다.

비수기여서 그런지 열차는 여유로웠다. 유럽에 가면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중국인 단체관광객도 열차에선 보이지 않았다. 열차 창밖으로 밖을 내다보니 산 중턱에 자리한 마을들이 아주 평화로워 보였다. 창밖 풍경을 보고 있자니 어느덧 열차가 종착역에 도달한다.

이곳에서 고르너그라트 전망대까지는 5분가량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산등성이어서 그런지 역주변은 눈밭이었다. 하늘은 뿌옇고 땅은 눈만 잔뜩 쌓여 있다. 고르너그라트까지 왔건만 마테호른의 웅장한 풍경은 볼수가 없는 상태다. 전날 날씨가 좋을 때 재빨리 플랜B를 가동하길 정말 잘했다.

인근마을 푸리에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는 도중 웅장한 마테호른을 눈에 담았기에 이날 고르너그라트에서의 실망감은 크지 않았다.

고르너그라트 산악열차 창밖으로 보이는 눈에 덮인 체르마트 마을


쌓은 눈으로 인해 유모차가 잘 끌리진 않았지만 앞서 로이커바트의 경험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로이커바트가 난이도 10이라면 여기는 2~3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 건물로 들어가니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컵라면 무료증정권을 직원에게 제시하고 따끈한 라면을 하나 받았다. 수아는 빵과 우유를 즐기고 나는 컵라면을 즐기며 여유만만한 시간을 보내자니 수아 또래의 아기를 안은 한국인 부부가 근처를 어슬렁거린다. 식사를 하는 테이블을 찾는 듯 해서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하산 준비를 했다.

자리를 양보한 게 고마워서인지 “개월수가 비슷한데 수아가 자기 애보다 잘 걷는다”는 칭찬을 해준다.

전망대를 나와 눈길을 성큼성큼 걷는 수아


또래 아기보다 잘 걷는 ‘걸음마 영재’ 수아는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서 눈길을 아장아장 때로는 성큼성큼 걸어서 기차역으로 도달했다. 걸음마 영재의 재능이 신묘한지 스위스인들이 연신 쳐다보고 있었다. 하산하는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노라니 유럽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약방의 감초 같은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바로 앞에 있는 일행에게 50미터 밖에서도 들릴 만큼의 데시벨로 의사소통을 하는 한 중국인 아재의 시선이 우리 걸음마 영재에게 멈췄다. 걸음마 영재가 기차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걷자 대륙의 기개를 담은 호탕한 웃음을 지으며 사진 촬영까지 시도한다. 마침 수아는 대륙의 기상이 담긴 적색류의 파카(사실은 핑크핑크이지만)를 입고 있던 터라 주변의 다른 중국 관광객도 몰려들며 박수를 치며 좋아하더라.

대륙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은 ‘한류 베이비’ 수아는 눈길 속에서 단 한차례도 넘어지지 않고 기차까지 무사히 탑승했다.

눈길을 아장아장 걸으며 어느덧 한류베이비가 된 수아


오후 3시. 아주 이른 시간에 오늘 계획한 일정은 모두 끝났다. 기차역 주변에 슈퍼마켓에서 간단한 식음료를 산 뒤 숙소로 돌아왔다. 스위스 여행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지만 비용절감과 아기관리 문제 등으로 자제해왔던 레스토랑 방문을 이번에 시작해보기로 했다.

여행 떠나기 전 미리 감상했던 한 케이블방송의 먹방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스위스 청정 양갈비를 사용하는 레스토랑을 우선 시도해봤다. 블로그를 검색하며 정보를 확인했더니 이곳은 인기가 많아 예약이 필수라는 안내가 나왔다. 전화번호를 찾은 뒤 레스토랑에 전화를 걸었다. 경쟁자가 적은 시간대인 6시에 예약이 가능하냐고 묻자 이날은 만석이라고 한다.

미리 전화 안했으면 허탕칠뻔. 그러더니 자신들의 자매 레스토랑이 있는데 레스토랑 이름만 다를 뿐 메뉴는 동일하다며 이곳으로 예약이 가능한지 알아봐주겠다고 한다. 로밍폰의 돈나가는 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한참을 기다리니 예약이 가능하다며 자리를 잡아줬다.



방에서 빈둥대다 저녁시간에 맞춰 레스토랑으로 이동했다. 먹방 프로그램에 소개된 이 레스토랑의 인테리어는 산장 느낌이 물씬 풍겼는데 자매 레스토랑은 이보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였다.

좌석이 상당히 많았는데 여기가 다 만석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이곳은 특이한 게 양고기 스테이크를 시키면 한 접시가 나오고 식사를 마칠 무렵 또 한 접시를 준다. 1+1이라고나 할까. 퐁듀 역시 양많이 주기로 유명하다.

관광객들이 이것저것 먹어보려고 음식을 2종류 이상 주문하면 지금 주문한 것도 충분히 많으니 먹어보고 추가 주문하라며 친절하게 절제시키는 고객친화적인 서비스도 보여준다. 평소 양고기를 즐기는 나는 양갈비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양고기를 썰어서 수아와 나눠먹고 있자니 수아가 양갈비의 뼈부분을 달라고 조른다. 뼈를 줬더니 뼈에 붙은 살을 이로 긁으면서 쪽쪽빨고 아주 흡입을 하고 있다. 그러더니 생후 20개월 만에 가장 맛있는 음식을 발견했다는 듯 “으~음”하며 콧소리를 낸다. 벌써부터 뼈에 붙은 살코기의 맛을 알다니 그녀의 재능은 어디까지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양갈비뼈를 쩝쩝 뜯는 수아


옆 테이블에 앉은 중국인 커플이 신기한 듯 바라보며 미소를 보인다. 중국인들에게 인기만점인 한류스타 베이비는 이후에도 양고기를 폭풍흡입하며 먹성을 자랑했다.

양갈비 한 접시를 다 해치운 뒤 이 식당은 1+1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음식을 추가로 주문하려고 직원을 불렀다. 직원은 “우리 식당 방침을 모르고 왔느냐”는 듯 미소를 지으며 양갈비 한 접시 더 나오니까 지금 주문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양갈비 두 번째 접시가 나왔는데 수아는 이미 배를 채운 듯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느긋하게 식사를 즐기려고 하니 한류 베이비는 지루한지 칭얼대기 시작한다. 노래인지 호통인지 떼쓰기인지 모를 소리를 계속 내며 아기식탁의자를 빠져나오려고 해 결국 일반 의자로 옮겼다.

식사를 끝내고 짐을 챙겨 나가려는 순간 “쿵”소리가 들린다. 수아가 장난치다가 의자 밑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으앙” 울어대는 아기를 겨우 진정시키고 서둘러 짐을 챙겨 레스토랑을 떠났다.

계산을 하면서 소란피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니 친절한 스위스 직원은 웃으며 손사래를 젓는다. 역시 아기와 함께 특히 엄마 없이 레스토랑에 가는 것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라는 걸 또한번 느낀다.

배를 가득 채운 뒤 크리스마스 트리로 운치있게 장식한 길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체르마트의 밤은 참으로 낭만 있도다.
/강동효기자 kdhyo@sedaily.com <8편에서 계속>

운치있는 12월 체르마트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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