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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주력업종 정밀진단 <끝>전문가 좌담] "정부 '주력산업 지원=대기업 특혜' 프레임서 벗어나야"

고임금·저생산성 구조가 산업 경쟁력 갉아먹어

승자독식 글로벌시장, 후발주자 전략 더이상 안먹혀

他산업 파급효과 큰 제조업 기반 무너지면 미래 없어

4차혁명산업과 융합 신성장동력 전초기지로 조성

규제 풀고 세액공제 확대 등 R&D 활성화 정책 필요

스타트업 중심 혁신 생태계 만들고 소재산업 지원을

기촉법 '공급과잉 업종에만 적용' 인식도 탈피 시급

유환익(왼쪽부터)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혁신성장실장, 신승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이종우 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이 19일 서울경제신문 사옥에서 한국 10대 주력업종의 위기와 대안을 주제로 좌담하고 있다. /권욱기자




한국 산업의 기상도가 밝지 않다. 반도체 호황 뒤로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축들이 하나둘 무너지고 있다. 일감 절벽에 처한 조선업이 기나긴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자동차 시장은 주요국의 수요 감소와 성장 둔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제조업에 ‘린치핀(마차나 자동차의 바퀴가 빠지지 않게 꽂는 핀)’이 빠져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기술과 저임금으로 무장한 중국의 추격을 뿌리칠 만한 핵심산업이 사라졌다는 진단이다. 산업을 되살리려는 노력은 ‘특혜 프레임’과 규제에 막혀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경제신문은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제 회의실에서 산업 전문가와 좌담회를 가졌다. 중국의 추격으로 자동차와 조선이 흔들리고 철강·가전·선박 등은 신음하는 상황에서 한국 산업의 현주소와 나아갈 길을 묻기 위해서다. 좌담회에는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혁신성장실장, 신승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이종우 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이 참여했다.

△사회=주력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 많다. 핵심원인이 뭔가.

△문승욱 실장=올해 상반기 누적 수출이 3,000억달러에 달했으나 이 같은 추이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의문이다. 대부분 반도체에 기대고 있는데다 국내 조선사가 독점했던 선종까지 내주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뚜렷한 성장동력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제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주력으로 삼던 산업들이 모든 부문에서 경쟁 내지는 압도당하고 있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비관세 등을 동원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 골칫거리다. 게다가 중국이 물량을 뿜어내면서 공급 과잉을 일으키자 곳곳에서 반작용이 일고 있다. 철강 부문에서 미국이 꺼낸 무역확장법 232조 같은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대표적이다. 이제는 자동차에까지 232조를 적용하려 하고 있다.

△유환익 실장=중국이 전 분야에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철강을 우선 살펴보면 지난 2008년 중국 조강(쇳물) 생산량이 6억톤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11억톤까지 불었다. 석유화학도 마찬가지다. 중국과의 수출경합도를 보면 1995년에는 8대 주력산업 중에 석유화학(0.17)이 가장 낮아 절대 우위에 있었다. 그게 2015년 0.72까지 수직 상승하며 이제 주력산업 중에 경합이 가장 치열한 품목으로 뒤바뀌었다. 중국이 양국 수교 20년 만에 자체 생산을 늘리더니 원가경쟁력마저 확보하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구도다. 조선이야 말할 것도 없다. 반도체는 아직 우위에 있다고 하지만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천명한 만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따라잡으려 할 것이다.

주요 산업들의 생산성 문제도 짚어야 한다.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HPV)을 보면 한국은 26.8시간에 달한다. 일본 도요타(24.1시간)나 미국 제너럴모터스(GM·23.4시간)보다 11.2%, 14.5% 더 길다. 평균 매출 대비 임금 비중은 높다. 한국은 12.3%에 달하지만 도요타와 폭스바겐은 각각 5.8%, 9.9%에 불과하다. 저효율 고임금 구조가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신승관 원장=지난해 우리 기업의 수익이 상당히 좋았다. 주목할 것은 수익이 난 게 우리 내부적 요인 때문이라기보다는 외부 요인 때문이라는 거다. 세계 경기가 회복세에 올라선데다 환율 효과도 작용했다고 본다.

내부 문제는 여전하다. 국내 사업장의 고비용 저생산성 문제가 크다. 그러다 보니 국내 업체들의 해외 이전이 점증했다. 2010년 전후로는 해외생산이 가파르게 늘어나면서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

외부 상황도 사뭇 달라지고 있다. 무역분쟁 때문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무역 의존도가 높고 자유무역체제 아래에서 상당한 혜택을 누린 국가다. 미국과 중국 간의 통상분쟁이 점입가경인데 만에 하나 자유무역체제가 붕괴된다면 대규모 피해가 불가피하다.

△이종우 전 센터장=돈을 못 벌어야 위기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올해 예상되는 상장기업들의 이익이 대략 210조원 정도다. 2001년에는 40조원에 그쳤다. 17년 사이에 돈을 4~5배를 더 번다는 것이다. 개별 업체 상황도 나쁘지 않다. 포스코는 한 해에만 2조~3조원씩 돈을 벌고 삼성전자가 70조원 정도의 이익을 낸다고 한다. 기업이 원래 돈을 빌리는 주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아주 심각한 위기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위기 징후는 감지되고 있다. 자동차는 산업도 산업이지만 위기의식이 부재한 게 가장 문제인 것 같다. 현대중공업은 분기 적자가 1조원을 넘기고서야 위기임을 알았다. 자동차도 조선업의 전철을 따르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사회=위기설이 흘러나온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전과 다른 부분이 있나.

△신 원장=우리는 압축성장 당시 조립 기반 산업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원천기술에 대한 투자는 적었다. 문제는 중국이 투자를 아끼지 않으면서 우리 기술 수준을 거의 다 따라왔다는 점이다. 기술은 다 따라왔는데 비용구조는 우리보다 굉장히 효율적이다. ‘가성비’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문 실장=과거에는 나름의 위기 대응 매뉴얼이 있었다. 세계 경기 사이클과 환율 변동만 고려하면 어느 정도 답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산업이 태동하는 시기다. 기존 산업에 초점이 맞춰진 매뉴얼이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당장 자동차 산업만 보더라도 자동차와 정보기술(IT) 등이 결합하면서 새로운 시장이 생기고 이전에 없던 경쟁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전보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늘면서 불확실성이 훨씬 커졌다.

△이 전 센터장=주력산업은 흔들리는데 신성장동력이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 손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캐치업(catch-up·따라잡기) 전략을 통해 성장했다. 선발주자가 개발한 원천기술을 시장에 내놓을 때쯤에 재빠르게 따라잡는 식이다. 그런데 주요 선진국들이 2000년 이후 신성장동력이라 부를 만한 것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따라잡아야 할 대상이 보이지 않자 우리 산업도 정체돼 있다.



선진국에서 새로운 동력을 발굴한다 해도 문제다. 사업 플랫폼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승자독식의 세상이 됐다. 오프라인 시대에 아마존이 탄생했다면 수많은 백화점을 짓기 위해 자금난에 허덕였을 것이다. 하지만 온라인 기반이다 보니 적은 비용으로도 순식간에 대규모 확장이 가능하다. 후발주자가 따라잡기 전에 시장을 장악한다는 얘기다.

유망산업을 키우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고용 규모가 예전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칠 것이다. 신산업으로 조명받고 있는 바이오 산업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대기업이 또 생기더라도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1,000개도 안 될 것이다. 중후장대산업에서 기대했던 만큼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또 다른 골칫거리다.

△사회=주력산업·제조업은 일자리 창출, 세수의 근원이다. 한마디로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다. 주력산업의 위기가 앞으로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유 실장=제조업은 서비스 산업과 비교하면 절반 정도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지만 타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훨씬 크다. 서비스 산업 취업유발계수는 10억원당 16.2명이지만 이 중 15.1명은 자기 산업 유발취업자이며 타 산업에서는 1.1명인 데 반해 제조업은 7.4명 중 타 산업 유발자가 4.3명에 이른다.

주력 제조업들의 본사는 서울에 있지만 공장은 대부분 지방에 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GM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군산 지역경제가 파탄 났다. 각각 5,000개, 2,000개의 일자리가 날아갔다. 이처럼 주력사업이 무너지면 지방경제가 황폐화할 수 있다.

△사회=모두가 신산업을 말하지만 신산업도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다. 주력산업의 기반이 흔들리면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도 뒤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신 원장=주력산업은 미래 성장을 위한 전초기지다. 자율주행차는 결국 자동차 기반이고 섬유 부문에서도 전통 소재에 새로운 기술이 접목되는 것이다. 소니 같은 일본 기업들이 부활한 원동력도 가전에 부문에서 확보한 100년 전통의 기술이다. 마침 우리의 정보통신기술(ICT)이 경쟁국가들을 상당 부분 앞서고 있다. 이를 전통산업과 접목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문 실장=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장벽을 쌓고 있는 이유는 제조업이 국가 경제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정책을 펴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제조업이 없으면 대규모 고용도, 미래 성장 가능성도 없다. 신산업을 찾는 한편 우리가 갖고 있는 제조업 경쟁력을 한껏 올려야 한다.

△사회=산업현장 곳곳에서 경고등이 켜진 상황에서 정부의 판단이 아쉽다는 견해도 나온다.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유 실장=‘주력산업 지원=대기업 특혜’라는 식의 프레임에서 탈피해야 한다. 정부가 이 프레임에 갇혀 있다 보니 대기업 지원에 인색하다. 연구개발(R&D)을 장려해야 하는데 R&D 투자세액공제를 계속 축소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해당 기업이 1년 동안 쓴 R&D 비용에 대해 세액공제를 받는 당기분 방식의 공제율 한도는 2013년 6%에서 2014년 4%, 2015년 3%, 올해는 2%까지 떨어졌다. 전년 대비 R&D 비용 증가액을 기준으로 두는 방식도 2013년에는 증가분의 40%를 세액공제받을 수 있었으나 현재는 이 공제비율이 25%로 낮아졌다.

주력기업이 스타트업과의 접점을 넓힐 수 있게 해야 한다. 제도적으로 막힌 부분을 뚫어줘야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금산분리에 따라 지주회사가 기업벤처캐피털(CVC)을 보유할 수 없는 규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투자를 하고 싶어도 지주회사에 대한 규정 때문에 투자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이 벤처캐피털 자회사인 ‘GE 벤처스’를 통해 2013년 이래 10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한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벤처캐피털을 단순히 금융업으로 보지 않고 기업의 혁신수단으로 봐야 한다.

정부가 ‘기업활력제고를위한특별법’도 어렵게 만들지 않았나. 그게 많이 활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경직된 부분이 있다. 예컨대 꼭 공급 과잉 업체만 신청하게 할 필요가 있나 싶다. 도입 취지가 선제적으로 사업재편을 돕는 것이었던 만큼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센터장=산업이 크는 데 가장 필요한 게 돈이다. 돈을 만들어주는 방법은 여럿이 있는데 금융 시장을 활성화하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 금융 산업은 은행 중심으로 커왔는데 이제는 자본시장에 육성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신 원장= 앞으로는 스타트업을 통한 혁신이 늘어날 것이다. 스타트업이 활성화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결국 청년이 창업에 뛰어들게끔 만들어야 한다. 중국만 보더라도 공대생들이 마윈을 우상화하고 창업을 통해 큰돈을 버는 꿈을 품는다. 그런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은 결국 정부다.

△문 실장=밸류체인상에서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이 어울릴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 라인을 예로 들어보자. 지금은 국내 중소업체가 라인에 들어갈 장비를 개발하더라도 이를 쉽게 납품하지 못한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부품을 들여왔다가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잘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계속 외산에 의존하게 된다. 정부가 검증 작업을 도우면서 악순환을 끊어줄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인력 교류를 활성화해 핵심 기술을 확보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혁신성장도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게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주력업종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라고 본다.

/정리=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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