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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어지는 불황의 그늘]옷 안사고, 문화활동·여가 줄이고...'돈맥경화' 갈수록 심화

통화유통속도 사상최저...예금회전율 5분기째 20 이하

급전 마련하려 보험상품까지 해지하고 약관대출도 급증

"성장파이 늘리는 정책 전무...경기침체 장기화 가능성"





# 40대 직장인 A씨는 요즘 가계부를 다시 들여다보며 쓸데없는 지출을 걸러내고 있다. 옷과 화장품·책 등 당장 필요없는 지출을 최소화하고 남은 돈을 은행에 꼬박꼬박 모으고 있다. 특별한 재테크는 하지 않는다. 요즘 주식시장이 좋지 않고 부동산에 투자하고 싶지만 쌈짓돈 부족에다 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대출액도 많지 않아 언감생심이다. 터무니없이 낮은 예금금리가 야속하지만 일단 은행에 돈을 맡겨두고 있다. 은행에 맡겨진 돈은 투자에 사용되지 않고 잠자고 있다. 오히려 현금 부족으로 어음을 막지 못하고 도산하는 기업은 늘고 있다. 최근 발표된 각종 통계를 통해 재구성한 한국인의 모습을 보면 ‘돈맥경화’에 빠진 한국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불황에 ‘돈이 안 돈다’=경제는 ‘순환’이다. 돈이 돌아야 돈의 온기가 고소득층부터 저소득층,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골고루 퍼진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정반대다. 저금리에도 돈이 은행에만 몰릴 뿐 돌지 않는다. ‘유동성 함정’과 유사한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우선 소비자가 지갑을 닫았다. 내국인이 소비를 줄이고 외국인 관광객까지 줄어들면서 화장품·의복·서적의 개인 신용카드 결제액이 최근 수개월간 전년 대비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5%가량의 증가율을 보였던 스포츠·오락·여가 분야의 신용카드 결제액도 올해 들어서는 둔화되는 모습이 확연하다.

소비자가 아낀 돈이 금융기관을 통해 기업의 투자자금으로 활용되면 ‘최선’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예금은행 요구불예금 예금회전율은 5분기째 20 이하를 밑돌고 있다. 돈이 은행에 잠자고 있을 뿐 성장을 위한 ‘원천’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돈맥경화’는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 2% 미만의 저금리가 수년째 지속되는데도 지난해 통화유통속도는 0.7로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통화유통속도는 한 나라 경제에서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사들이는 데 통화가 평균 몇 번 사용됐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유통속도가 낮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의 경제 활력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급전’ 마련하려 보험까지 해지=소비가 감소하면 자연스레 자영업자들이 타격을 받는다. 보험사의 보험해지환급금 증가는 이런 현상을 반영한다. 일반적으로 보험은 ‘해약하면 손해’라는 인식이 강해 웬만하면 깨지 않는다. 통상 급전이 필요하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예적금을 깨고, 이마저도 부족하면 최후의 수단으로 건드리는 것이 보험이다. 생명보험사 해지환급금은 지난해 22조1,086억원으로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2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1·4분기 생보사의 해지환급금은 6조8,245억원으로 1분기 만에 지난해의 30%에 달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 해지환급금 규모는 또다시 최고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보험의 절대적인 규모가 커지면서 환급금 규모가 늘어난 측면도 있지만 생계형 보험계약 해지도 늘고 있다”며 “분기별 수치가 워낙 가파르게 치솟고 있어 연말에는 기존 기록을 갈아치울 수 있다”고 말했다. 보험료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보험약관대출 역시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올해 1·4분기 생명·손해보험업계 보험약관대출 잔액은 57조5,243억원(손해보험사의 경우 2월까지)으로 지난해 말(57조829억원) 대비 4,414억원(2.6%) 증가했다. 정부가 부동산 규제와 가계부채 문제 때문에 은행 대출을 어렵게 하면서 풍선효과로 서민들이 보험약관대출이나 상대적으로 높은 카드론으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예적금이나 보험 해지 등을 통해서도 빚을 갚지 못한 서민이나 자영업자도 늘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신용회복지원 실적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채무조정 신청자 5만3,621명 중 프리워크아웃이 1만1,092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8% 증가했다. 프리워크아웃은 연체기간이 31일 이상 90일 미만인 채무를 대상으로 한다. 올해 들어 빚을 갚지 못한 서민이 급증했다는 뜻이다.

◇‘돈맥경화’에 기업 생태계도 무너진다=어음부도금액 증가와 어음부도액 상승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사이에서 돈이 돌지 않는다는 단적인 증거다. 어음은 중소기업이 돈을 융통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들어 어음부도가 급증한 것은 최저임금 상승과도 관련이 있다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어음부도 증가는 도산기업 증가로 이어지는데 그 증거는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도산 기업 대신 나라가 지급하는 체불임금인 체당금 지급액은 가파르게 늘었다. 체당금은 2015년 2,979억원에서 2016년(3,687억원)과 지난 해(3,724억원) 연이어 3,000억원대를 넘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체당금 지급액은 1,82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4% 증가했다. 하반기 같은 추세가 이어지면 4,000억원 돌파가 확실하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의 경기 침체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며 “근로자들의 소득은 늘어나지 않고 있는데 비소비지출이 늘면서 소비여력이 갈수록 줄고 있고 투자는 국내보다 동남아 등 해외로 나가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지출만 강화하고 성장의 파이를 늘리는 정책은 전무하다시피하다 보니 경제가 활로를 찾지 못하는 모습”이라며 “경제 활력 자체를 올릴 수 있는 정책이 나오지 않으면 경기 침체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덧붙였다.
/김능현·이종혁·김민정기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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