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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Market] 전염병과 이민, 그리고 난민

김서형 러시아 빅히스토리-유라시아센터 연구교수
20세기초 'A등급 전염병' 결막염
'바람직하지 않은 이민' 규제수단
오늘날에도 전염병 난민수용 기준

  • 2018-08-19 17:09:53
  • 사외칼럼
[Science&Market] 전염병과 이민, 그리고 난민
김서형 러시아 빅히스토리-유라시아센터 연구교수

결막염의 일종인 트라코마(trachoma)는 ‘울퉁불퉁하다’는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Trachys와 종양을 나타내는 Oma를 합쳐 만든 용어이다. 클라미디아 트라코마티스 때문에 발병하는 질병으로 각막이나 결막에 영구적인 합병증을 남기고 시력 장애를 초래하며 심각한 경우 실명할 수도 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5억 명 이상이 트라코마에 감염되었는데, 아프리카를 비롯해 위생이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지역들에서 발병 빈도가 높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트라코마는 사회적 이슈였다. 미국사회의 공중보건과 위생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방정부의 권력은 이민에 대한 의료 검사 및 검역을 통해 확대되었다. 19세기 말 이후 미국사회에는 동유럽, 남유럽 그리고 아시아 출신의 새로운 이민이 급증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치명적인 전염병이 이민 때문에 발생한다고 믿었다. 미국사회의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공중보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철저한 이민 규제가 필요했고, 결국 연방정부는 ‘바람직하지 않은(undesirable)’ 이민의 입국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1924년까지 약 800만 명의 이민들을 검역했던 곳은 바로 엘리스섬 이민국이었다. 연방정부는 다양한 질병들을 이민 검역 기준에 포함시켰는데, 여기에 포함된 질병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트라코마였다. 19세기 말 이후 전염성 질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뿐만 아니라 붉게 충혈되는 징후 때문에 트라코마는 다른 질병보다 감염 여부를 비교적 구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1907년 이후 ‘바람직하지 않은’ 이민을 규제하기 위한 필수 의료 검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당시 연방정부는 검역 대상이 되는 전염병을 크게 3가지 등급으로 구분하고, 이민 입국 허가와 구금, 격리 및 추방을 결정했다. 놀랍게도 트라코마는 A등급에 해당하는 전염병이었다. 따라서 트라코마에 걸린 이민들은 미국 입국과 본국 송환이라는 연방정부이 최종 결정을 위해 세부 검사를 받고, 그 결정을 기다려야만 했다. 연방정부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기간 구금 또는 격리되었던 가시적, 그리고 비가시적 차별을 받았다. 이같은 차별의 근본적인 토대는 바로 인종이었다.

20세기 초 많은 토착주의자들은 서유럽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 미국으로 입국하는 이민들을 반대했다. 이들에게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며 종교가 다른 이민들은 그야말로 미국사회의 발전과 진보에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더욱이 특정 인종이나 민족과 치명적인 전염병 사이의 상관관계를 강조하는 유사과학이 미국사회에 널리 확산되면서 토착주의자들은 미국사회의 위생과 공중보건을 위협할 수 있는 이민들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이와 비슷한 현상은 오늘날 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올해 우리 사회에서 논쟁거리로 부상한 것 가운데 한 가지는 바로 난민이다. 국제 협약에 따르면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또는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국의 보호를 원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한다. 2013년 난민법이 시행된 이후 우리나라로 난민을 신청하는 추세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올해 900명 이상의 예멘 난민이 제주도로 입국하면서 이들의 수용 문제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무슬림에 대한 종교적 편견과 일자리와 지원금을 비롯한 경제적 문제, 증가하는 외국인 범죄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둘러싸고 예멘 난민들의 입국 및 출도를 반대하고 있다. 난민으로 인한 전염병 확산 가능성 역시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주장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법무부에서 지정한 병원에서는 난민들에게 매독이나 결핵,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등의 검사 결과가 포함된 신체 검사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더욱이 자살 우려가 있는 예멘 난민은 서울로 옮겨져 정신 질환 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20세기 초 트라코마를 비롯한 전염병이 미국사회의 입국 여부를 결정하는데 중요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염병은 난민 수용의 중요한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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