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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의 눈물] "잡무 줄이고 '간호사=전문직' 대우해야"

<하> 간호인력 공급보다 관리에 방점을

"2년전 100명 입사 이젠 9명 남아"

대형병원 사례처럼 의료환경 악화

신규간호사 교육인력은 별도로

병원평가에 동원 등 부담 없애고

경력자 이탈 막기 처우개선 필요

지난 3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인근의 성내천 육교 난간에 업무 스트레스로 고통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박선욱 간호사를 추모하는 종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나 응급사직(무단결근 후 사직) 안 하면 정말 죽을 것 같아.”

서울시내 ‘톱3’에 꼽히는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A씨는 이달 초 친구에게 태움(괴롭힘)의 고통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A씨가 두려워한 것은 실직이 아니라 A씨의 사직으로 구멍이 뚫릴 병원 근무표와 이로 인해 쏟아질 선후배 간호사들의 비난이었다.

태움과 과로로 대표되는 간호사 문제 뒤에는 결국 인력 부족이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인구 10만명당 활동 간호사 수가 59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의 66%에 그쳤다. 인력 부족은 일상적 연장근로와 태움을 심화하고 간호사의 퇴사를 불러 결국 환자에게도 위험한 의료환경을 조성한다.

태움 문제가 대두하면서 지난 3월 보건복지부는 오는 2022년까지 신규 간호사 10만명을 증원해 업무 부담을 완화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신규 간호사 공급을 늘리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을지대·목포대·서울대가 올해 전국 1,042개 병원 간호인력 증감을 연구한 결과 간호대학 졸업생들이 쏟아져나와도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증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자가 많고 이직률도 높다는 얘기다. 2010년과 2015년 간호인력을 비교했을 때 해당 기간 새로 면허를 얻은 간호사는 32% 늘었으나 간호인력이 개선된 의료기관 비율은 19.1%에 그쳤고 10.3%는 되레 줄었다.

실제로 서울시내의 한 유명 대학병원의 경우 2016년 3월에 100여명의 간호사가 새로 입사했으나 이달 현재 불과 9명만 남아 있다. 최근 병원을 그만둔 간호사 백모씨는 “병원의 힘든 업무환경 탓에 간호인력이 바이오기업이나 제약회사 또는 의료 관련 정부기관 등으로 줄줄이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력 간호사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공급이 아닌 관리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병원이 신규 면허 취득자로 빈자리만 채울 게 아니라 처우를 개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장 간호사들의 잡무를 줄이고 신규 간호사 교육 인력을 별도로 두는 것이 즉각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강수진 보건의료산업노조 인·부천지부장은 “간호사들은 병동 이사 시 주말에 나와 청소를 하거나 사비를 들여 환경미화를 하고 실적을 채우기 위한 논문 작성 같은 간호 외 업무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며 “신규 간호사 교육도 프리셉터(담당 선배)에게는 추가적 업무가 되는 만큼 잡무 부담이 우선 해소돼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기관 평가인증의 부담이 간호사에게 전가되는 것도 문제의 원인 중 하나다. 의료기관 인증은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고 환자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의료기관을 평가하고 인증하고자 도입됐다. 동시에 4년마다 돌아오는 병원 평가는 병원의 수입인 의료수가와 직결되고 평가의 상당 항목이 간호사와 관련돼 있어 소속 간호사들의 업무 부담을 가중시킨다. 인증평가 부담으로 휴직이나 이직을 고민하는 간호사가 71.5%에 달한다는 실태조사 결과도 있다. 응답자의 73%는 “의료기관 평가인증 준비기간에는 매일 1시간 이상 연장근무를 했다”고 답했다.

지난해 11월1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홀에서 열린 ‘2017 간호 정책 선포식’에서 전국의 간호사들이 간호사 수급 불균형 해소를 촉구하고 있다./연합뉴스


심지어는 인증평가에서 인력 기준을 맞추기 위해 전산기록을 조작하는 경우도 있다. 인천 가천대길병원의 한 간호사는 “병원 평가를 앞두고 진료부·신장투석실 등 병동 소속이 아닌 간호사를 병동 인력인 것처럼 서류를 꾸며 인력이 충분한 것으로 조작하는 ‘유령간호사’도 공공연하게 존재한다”고 말했다. 길병원 병동 소속 간호사 1,500명 중 약 10%가 병동 소속이 아닌 ‘유령’으로 추정된다. 병원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편법이 인력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돈벌이에만 집중돼 간호사를 소모품으로 보는 병원 구조와 인식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정부는 병원 내 괴롭힘을 근절하기 위해 주기적 실태조사, 의료인 면허정지 등 의료법 개정, 신규 간호사 교육 관리체계 구축 등 대책을 쏟아냈다. 하지만 병원에서 자행되는 각종 불법적 ‘꼼수’를 제대로 단속하지 않으면 결국 ‘말잔치’로 끝날 공산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한간호협회의 한 관계자는 “한국은 외국처럼 협회가 면허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아 병원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면서 “9월부터 통합콜센터를 운영해 일선 간호사들의 고충을 수집하고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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