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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도시-아모레퍼시픽 신사옥]고요하고 당당한 기품...한국의 美 품은 랜드마크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주변과의 연결성 극대화하기 위해 타워형 빌딩 대신 큐빅 형태를 택했다. ‘달항아리’의 완결성과 한옥 중정의 개방성 등 한국적 미를 재해석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새 고층 빌딩들이 속속 들어서며 구도심의 허물을 벗어가는 용산. 삼각지역에서 용산역 앞 사거리까지 한강로 구간은 화려하고 미끈한 빌딩들로 대변신 중이다. 그중에서도 기품 있는 건물이 유독 눈에 띈다. 아모레퍼시픽 신사옥이 그 주인공이다. 이 건물은 요란하게 뽐내는 듯한 미인들 사이에 단아하고 단단한 아름다움을 가진 미인처럼 서 있다.

‘201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민간 부문 대상을 차지한 이 빌딩은 올해 준공식을 가졌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이 글로벌 뷰티 그룹으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응축해 담은 신사옥을 약 10년 만에 완성했다. 미학적 야심, 사회적인 기능, 시공의 완성도 등에서 호평받고 있는 이 건물은 좋은 건축주, 뛰어난 설계자, 그리고 실력 있는 시공자가 만난 결과물이다. 임진영 건축평론가는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미학적 성취, 기업의 비전, 공동체에 대한 배려 등이 모두 어우러져 완결성을 가진 드문 사례”라며 “우리 시대의 문화유산으로 남을 만한 건축물”이라고 말했다.

총 3곳(5·11·17층)에 옥상정원을 배치해 도시의 경관을 끌어들였다. 5층 정원의 수변공간은 건물 저층부 아트리움의 천장이기도 하다.


■고전미의 현대적 재해석

달항아리·한옥 중정의 이미지 도입

절제된 아름다움의 본질 공간에 담아

세계적인 건축가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노먼 포스터의 한국타이어 테크노돔(연구시설),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독창적인 건축물로 한국의 도시에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이들과 달리 고전의 재해석을 통해 지역과 융화되는 랜드마크 설계에 빼어난 건축가다. 아모레퍼시픽 사옥 역시 그의 장점이 빛을 발한 작품이다.

그는 한국의 고전미를 품은 ‘달항아리’를 현대의 건축으로 재해석했다. 형상이 닮았다면 클리셰에 불과했을 것이다. 대신 달항아리가 가진 절제된 아름다움의 본질을 건축 디자인에 담았다. 치퍼필드는 “백자에는 조용히, 그러면서도 당당히 빛나는 아름다움이 있다”며 “노골적으로 한국적인 미를 표방하는 건물이 아니라 그 본질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5층에 위치한 옥상정원은 한옥의 중정을 연상시킨다. 그곳에서는 팔로 감싸 안은 듯한 한옥 중정의 아늑함이 느껴진다. 옥상정원 너머로 보이는 서울 도심과 용산공원의 풍경은 마치 한옥의 창문과 중정 너머 보이는 풍경과 닮아 있다. 공동설계자인 윤세한 해안건축 대표는 “동양 건축에서 차경(借景·빌려온 풍경)의 개념이 아모레퍼시픽 사옥의 대형 오프닝(비어 있는 공간)에도 녹아 있다”며 “건축심의 과정에서 거대한 큐빅 형태의 건물이 자칫 위압감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대형 오프닝 덕에 타워형 건물에 비해 경관을 덜 가리고 주변과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건물의 외관 역시 절제된 아름다움과 맥이 닿는다. 건물 입면은 번쩍이는 커튼 월을 직접 노출시키지 않고 수직 알루미늄 루버(차양)로 가렸다. 루버의 간격과 크기에 미세하게 변화를 줘 부드러운 느낌을 연출했다. 입면이 위로 올라갈수록 약간씩 돌출되도록 디자인한 것도 자칫 위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건물의 볼륨감을 줄이기 위한 장치다.

물론 기능도 고려한 입면계획이다. 통풍과 채광을 고려해 루버의 크기를 조절했다. 이종혁 아모레퍼시픽 팀장은 “루버의 깊이를 남쪽과 동쪽 입면은 깊게, 북과 서쪽은 얕게 설계했다”며 “봄과 가을에는 창을 열어 밖의 공기를 안으로 들여놓는다”고 설명했다.

저층부의 아트리움은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해 간결하고 강한 디테일을 살렸다.


건물을 둘러싼 회랑은 도시와 건물의 경계 공간을 만들어낸다.


■ ‘쓸모 없는’ 공간의 미학

임대료 비싼 상업공간 들어설 자리에

고대의 신전 닮은 회랑·아트리움 눈길



아모레퍼시픽 사옥에는 경제적인 의미에서 보면 ‘쓸모없는’ 공간들이 눈에 띈다. 대표적으로 건물 1층에는 열주가 빙 둘러 박혀 있어 일종의 회랑이 조성돼 있다. 마치 고대의 신전이나 중세의 궁전처럼. 일반적인 건물이라면 응당 가장 임대료가 비싼 상업 공간이 들어서 있어야 할 자리를 텅 빈 공간으로 남겨둔 것이다. 번잡스러운 도시에서 빌딩으로 진입할 때 거치는 경계 공간과 같은 역할을 한다.

또 다른 빈 공간은 빌딩에 들어서면 마주하는 거대한 아트리움이다. 3층 높이로 시원하게 뚫려 있다. 유리 천장은 옥상정원의 바닥이기도 하다. 유리 천장의 위에는 얕은 물이 채워져 있다. 옥상정원에서 보면 일종의 수변 공간이지만 아트리움에서 보면 잔잔한 물결에 흔들리는 자연광이 들어오는 통로다. 아트리움 1층은 중앙의 안내데스크, 라이브러리, 지하 미술관 입구, 그리고 오설록 카페 등 최소화한 상업시설 외에는 비워뒀다. 노출 콘크리트 기둥과 에스컬레이터가 가장 눈에 띄는 구조물이다. 단순하고 고전적인 건축미는 고결하고 숭고한 느낌마저 준다. 마치 미의 신전과 같이. 회랑·아트리움 외에 건물 중간에 위치한 옥상정원 역시 마찬가지로 비어 있는 공간이다.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이같이 기능 없는 공간에 관대하다. 물론 이런 공간들은 상업적인 의미에서 쓸모가 없다는 것이지 이용자들에게는 어쩌면 가장 가치 있는 공간일 수 있다. 빈 공간에서 사람들은 지친 마음을 달래고, 편안함을 느끼고, 타인과 교류하기 때문이다.

6~21층에 배치된 사무 공간은 개방형 오피스로 설계돼 직원들 간 소통과 협력을 지원한다.


■기업의 비전을 담은 건축

지하 뮤지엄~3층 문화공간 외부 공개

다양한 행사로 주말에도 살아있는 건물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사옥 건축에서 놓치기 쉬운 건축의 사회적인 역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설계에 있어 ‘연결성’은 중요한 화두였다. 지역사회와의 연결성과 직원들 사이에서의 연결성, 두 가지 모두가 고려됐다.

일반적으로 사옥은 그 회사 직원들만을 위한 폐쇄적인 공간인 경우가 많다.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일반 사옥 건축과는 다르다. 건물의 진출입구는 사방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지하 1층 뮤지엄부터 3층의 문화 공간까지 외부인들에게 공개된다. 아트리움에서는 패션쇼 등의 행사가 열린다. 그러다 보니 사옥임에도 주말에도 살아 있는 공간이다.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직장의 콘셉트를 획기적으로 바꾼 사옥 건축이기도 하다. 약 7,000명의 직원이 일하는 ‘커뮤니티’로 설계됐다. 5층에는 루프가든과 직원식당뿐 아니라 피트니스센터·마사지실·모유수유실 등 직원들의 복지를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6~21층의 일반 사무 공간도 소통을 고려해 유연하게 설계됐다. 곳곳에 상하층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내부 계단을 마련해 직원들이 모이고 소통할 수 있는 작은 공간들이 꾸며져 있다. 또 협업을 위한 공용 공간과 집중 업무를 위한 1인용 공간 등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유연한 근무 환경이 만들어졌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기업 성장의 오랜 역사를 함께한 용산에 다시 자리를 잡으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주변 지역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게 건축의 기본 원칙이었다”며 “자연과 도시, 지역사회와 회사, 고객과 임직원 사이에 자연스러운 교감과 소통이 이뤄질 수 있게 만들고자 고심했다”고 설명했다. /이혜진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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