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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 캠페인-아픈 사회, 우리가 보듬어야 할 이웃] 본인부담률 높고 지원 횟수제한...난임부부 두번 운다

② 난임부부-여전히 부담 큰 시술비용

정부 건보 적용 확대했지만

검사비·약제비 등은 제외에

회당 100만원 이상 지출

"지원 횟수 넘기면 부담 더 커져"

심한 압박감·불안감에 시달려

난임 여성 자살 충동 우려까지

경제·심리적 지원 동시 힘써야

차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에서 환자들이 난임 치료를 위해 대기실에 앉아 있다./송은석기자




난임 부부들이 겪는 첫 장벽은 경제적 부담이다. 자연임신이 되지 않는 난임 부부들은 병원의 인공수정, 시험관 시술 등의 방법에 기대고는 한다. 그 시술비용이 회당 300만~500만원에 이른다. 그마저도 한 번에 성공할 확률은 희박하고 수차례 시술을 거쳐야 겨우 수정에 이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따라서 국가적 지원이 없다면 난임 부부 한 쌍당 많게는 수천만원대의 비용까지 감내해야 한다.

다행히 지난 2006년부터 저소득 난임 부부를 위한 정부 지원이 시작됐다. 이후 지원이 확대돼 지난해 10월 마침내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난임 부부에게 건강보험이 적용됐다. 그럼에도 비용의 장벽은 여전히 높다. 난임 환자의 본인부담률이 30%에 달해 시험관 시술의 경우 여전히 회당 100만원 이상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와 별도로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검사비·약제비 등의 지출 부담도 적지 않다.

난임 지원에는 ‘연령·횟수제한’이 단서로 붙어 있다. 이것이 난임 부부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정부는 만 44세 이하 여성에게 총 10회(인공수정 3회, 체외수정 7회)에 한해서만 건강보험 적용 혜택을 주고 있다. 박춘선 한국난임가족연합회 회장은 “한 번에 임신이 된다면 좋겠지만 시험관 시술 등의 성공률은 여전히 낮아 대부분의 부부가 여러 차례 시술을 받는다”며 “횟수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스트레스가 되는 만큼 횟수를 초과할 경우 본인부담률을 높이더라도 어느 정도 지원해주는 방향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난임 극복 과정에서 당사자가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장벽이다. 박지연(36·가명)씨는 최근 임신을 위해 10년 넘게 다닌 직장을 그만뒀다. 8년째로 접어든 결혼생활, 신혼 때는 직장에서 자리 잡느라 애 가질 엄두를 못 냈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후에는 아이가 찾아오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며 번 돈으로 인공수정 등을 시도해 지난해 마침내 임신에 성공했지만 기쁨도 잠시, 불과 몇 개월 후 별다른 이유도 없이 유산을 경험해야 했다.

박씨는 “난임휴직을 쓰고 싶었지만 잘 안 됐고 내 나이를 볼 때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임신하는 데만 올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래 다닌 직장을 관둬야 하는 것도 슬펐지만 이렇게까지 했는데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에 하루하루가 초조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발표되는 학계의 연구 결과를 보면 난임 부부 중에서 특히 여성은 대여섯 가지가 넘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우선 행복한 가정을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과중한 책임감이 꼽힌다. 다음으로는 여성으로서 제 몫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주된 스트레스로 거론된다. 또한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를 갖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 여성에게서 문제의 원인을 찾는 사회적 시선·비난 등에 대한 분노와 울화도 난임 부부의 심리를 짓누른다. 여기에 아이를 낳은 가정을 볼 때면 자신도 모르게 나타나는 시기와 질투가 곁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감정들이 한꺼번에 치밀어올라 우울감에 빠져들다가는 자칫 자살 충동을 겪을 수 있어 세심한 사회적 배려가 요구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남아선호 사상이 팽배했던 과거에는 아들을 못 낳는다는 이유로 며느리가 구박을 받았고 지금은 자녀가 없다는 이유로 똑같이 사회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라며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의학적 난임은 정복을 앞두고 있지만 정작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이를 가로막으면서 또 다른 갈등을 낳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정신적 고통은 난임을 한층 악화시키는가 하면 이혼 등으로 이어져 가족의 해체를 촉발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해마다 명절 직후에 이혼율이 급증하는 통계에도 난임 문제를 둘러싼 가족 간의 갈등이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난임 문제가 가족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로 확산되자 영국·일본 등 선진국은 일찌감치 난임 부부를 위한 정서·심리적 지원 프로그램 등을 도입하며 체계적인 지원책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올해 6월에서야 중앙난임·우울증센터가 문을 열고 하반기 대구·인천 등 3곳에 권역센터 개소를 계획하는 등 마침내 난임 부부에 대한 심리 지원이 시작됐다. 하지만 예산·인력 측면에서 여전히 미흡하다. 중앙센터만 해도 상담인력이 3명에 그쳐 난임 부부를 어느 정도 실질적으로 돌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국가적 재앙으로 부상한 저출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난임 부부에 대한 심리 지원이나 출산 관련 비용 등은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또 난임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는 가임 여부를 예비 부모들이 미리 확인할 수 있도록 각종 검사 등에도 건강보험 혜택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각에서는 난임 부부에게도 아파트 분양과 연말정산 공제 등 자녀를 출생한 부부에 준하는 경제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안나 중앙난임·우울증센터장(산부인과 전문의)은 “예컨대 난소 나이와 기능을 확인하는 검사 등이 20대 초반부터 건강검진 차원에서 실시된다면 뒤늦게 난임 시술을 받기 위해 큰 신체적·경제적 부담을 지는 일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난임이 만혼과 늦은 임신을 초래하는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만큼 사회 전반의 인식이 변화할 필요도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최 센터장은 “결혼하면 당연히 임신해야 하고 결혼 후에도 아이를 낳지 않으면 이기적인 여성이 되는 분위기, 가임력이 한창 좋은 20대 초반에는 출산 경험이 오히려 비난거리가 되는 관습, 아이를 원해 모든 노력을 하고 싶어도 직장 동료에게 미안하고 상사 눈치가 보여 비밀로 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는 스트레스로 인한 사회적 난임도 다수 나타나게 된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어느 시기, 어떤 상황에서 임신하더라도 축복받을 수 있고 싱글맘이든 사실혼이든 관계없이 모든 가구가 출산의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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