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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직접관여' 물증·진술이 결정타

'오리발 전략' 역효과 불러왔다는 해석

구속 기각시 감당 어려운 '사법불신' 우려 분석

박병대 前 대법원장은 영장 또다시 기각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23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밖으로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법원이 24일 사상 초유로 전직 사법부 수장의 구속 결정을 내린 데에는 ‘재판거래’ 의혹을 받는 사안에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이 적극 관여한 물증과 진술을 검찰이 여럿 확보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 사유와 관련해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 중대하며,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검찰이 적용한 양 전 대법원장의 개별 범죄혐의는 무려 40여개에 이른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민사소송 ‘재판거래’,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개입, 헌법재판소 내부정보 유출, 사법부 블랙리스트 작성, 공보관실 운영비로 비자금 3억5,000만원 조성 등 반헌법적 중대범죄에 직접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범죄사실들에 대해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법원은 앞서 의혹 연루자 중 유일하게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해서도 “범죄사실 중 상당한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어 구속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검찰은 전날 5시간 30분간 이어진 영장심사에서 양 전 대법원장의 범죄혐의가 매우 중대하고, 직접 개입한 정황이 구체적이라는 점에 초점을 두고 영장 판사를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법원이 지난해 12월 7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해 “공모관계 성립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한 바 있기 때문이다. 검찰로선 이 같은 ‘공모관계 소명 부족’ 프레임을 깨고자 양 전 대법원장의 직접관여 증거들을 강조하며 ‘정면 승부’를 펼친 것으로 분석된다.

검찰은 지난 18일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징용소송 재판개입 등 이 사건에서 가장 심각한 범죄혐의들에서 단순히 보고받는 수준이 아니라 직접 주도한 사실이 진술과 자료를 통해 확인되기 때문에 구속영장 청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여부를 가를 주요 물증으로는 ‘김앤장 독대 문건’,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 ‘이규진 수첩’ 등 크게 세 가지가 꼽혔다. 특히 일제 강제징용 재판개입 관련 사건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박 전 대법관으로부터 단순히 보고받은 수준을 넘어 ‘재판거래’를 진두지휘한 정황이 드러난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자택 압수수색과 세 차례 소환 조사에 성실히 협조한 점, 전직 사법부 수장으로서 도주의 우려도 없다는 점을 내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법리 다툼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전·현직 판사 다수의 진술과 객관적 물증 앞에서 법원이 양 전 대법원장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검찰 조사 후 조서 검토에만 36시간이 넘게 소모하며 신중을 기했지만, 결국 구체적인 증거의 힘은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이 증거에 대한 충분한 해명 없이 “기억나지 않는다”, “실무진이 알아서 한 일”이라고 오리발을 내민 전략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특히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내놓은 후배 법관이 거짓 진술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오히려 증거인멸 우려를 키웠을 것이란 평가도 나오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전날 영장심사에서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았다”는 후배 법관들의 진술이 제시되자 ‘거짓 진술’이라고 반박했다.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수첩에서 자신의 지시사항을 뜻하는 ‘大’자 표시에 대해서는 “사후에 조작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법원이 쉽게 납득할 만한 기각 사유 없이 구속영장을 기각하면 법조계는 물론 국민적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비판이 일게 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해 전직 사법부 수장을 구속하는 고육지책을 택한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한편 구속영장이 재청구돼 이날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영장심사를 받은 박 전 대법관은 영장이 기각됐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선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이자 ‘주범’이라는 점을 법원이 인정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됐다. 심리를 맡은 허경호 부장판사는 박 전 대법관 영장 기각에 대해 “종전 영장청구 기각 후의 수사내용까지 고려하더라도 주요 범죄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사유를 밝혔다. 이는 “공모관계 성립에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한 종전 기각 사유의 취지를 그대로 유지한 셈이다. 검찰은 박 전 대법관이 형사사법정보시스템에 무단 접속해 지인의 재판상황을 알아본 혐의(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를 두 번째 구속영장에 추가했지만 법원의 판단은 바뀌지 않았다. 허 부장판사는 “추가된 피의사실 일부는 범죄 성립 여부에 의문이 있으며 현재까지의 수사경과 등에 비춰 구속의 사유 및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노진표 인턴기자 jproh9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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