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IT·SW 요람' G밸리가 흔들린다

눈앞 닥친 週52시간에 무방비

유연근로제 확대 감감무소식

최저임금까지 맞물려 '벼랑끝'





“우리 회사는 수주하는 처지라 야근이나 잔업이 많아요. 내년부터 주52시간이 적용되면 대응하기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인근의 다른 회사들도 마찬가지예요.”

4일 서울 구로디지털국가산업단지(G밸리) 키콕스벤처센터 앞에서 만난 한 정보기술(IT) 업체 직원은 눈앞에 닥친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걱정스러워했다. IT·소프트웨어(SW) 중소기업들이 밀집한 G밸리와 판교밸리 등이 ‘52시간 근무제’ 폭풍 앞에 무방비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G밸리는 게임을 비롯한 IT, 사물인터넷(IoT)이나 인공지능(AI) 등 기술 기반 중소벤처기업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IT의 요람’으로 불린다.

IT 업계의 특성상 연구개발(R&D)에 투입되는 인력이 많고 신규 프로젝트 수행 시 야근 등을 통해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개발탄력근로제, 시간선택형 근로 등 유연근무제가 절실하지만 단위기간 확대 등의 관련법은 국회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해 기업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관련기사 5면

구로구가 지난해 ‘근로시간·고용컨설팅’을 실시한 G밸리 기업 35곳 가운데 3곳의 컨설팅 자료를 본지가 4일 입수해 분석한 결과 3곳 모두 근로시간 단축 개정안(52시간 근무제)에 맞춰 취업규칙을 개정하지 못했다. 이 기업들은 모두 탄력근로시간제·시간선택근로제·간주근무제 등 근로시간 단축 대응을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고 취업규칙 및 인사규정에 반영하라는 구의 컨설팅을 받았다.

이 세 기업은 5~49인 사업장으로 52시간 근무제 적용시기가 오는 2021년 7월이다. 문제는 52시간 근무제에 대비하지 못한 G밸리 기업이 50인 이상~299인 이상(52시간 근무제 내년 1월부터 시행) 사업장에서도 상당수 발견된다는 데 있다. 취업규칙 변경 외에 당장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 추가 인력을 채용해야 하지만 최근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비용 부담이 크다.

구로구에 입주한 SW 개발기업 이노뎁의 이성진 대표는 “52시간 근무제로 인원이 더 필요하지만 이에 따른 경영 부담이 당연히 늘 수밖에 없다”며 “노무사의 컨설팅을 받는 우리 회사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지만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노사관계가 틀어지면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우려했다. 구로구는 지난해부터 52시간 근무제에 대비해 노무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지만 올해 채용 예정인 노무사는 5명뿐이다. 결국 G밸리에 입주한 1만개 기업을 모두 컨설팅하기는 불가능하다.

기업들의 부담은 커졌지만 이를 완화할 유연근로제 확대는 감감무소식이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확대하는 법안도 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IT 기업의 경우 개발자마다 선호하는 업무시간이 달라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는 아예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주52시간제에 흔들리는 G밸리] “야근 불가피한데…중소 IT 오겠다는 사람 없어” 발만 동동

주52시간 근무제, 집중근로 필요한 IT기업 특성과 안맞아

선택적 근로시간제 6개월도 턱없이 부족…1년으로 늘려야

“계약직 쓰거나 아웃소싱 맡길 수밖에” 비정규직 양산 우려도



직장인들이 4일 서울 구로구 구로디지털단지 일대를 오가고 있다. 구로디지털단지에는 업종 특성상 야근과 집중 근로가 필요한 정보통신기술 업체가 밀집해 있다./권욱기자


서울 G밸리에서 ‘이노뎁’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이성진 대표는 “주52시간 근무제 준비가 잘 돼 가느냐”는 질문에 “난감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이노뎁은 폐쇄회로(CC)TV 화면의 정보를 디지털 데이터로 추출하는 소프트웨어(SW)를 개발한다. 주차 차량이 빠져나가면 이를 정보화해 공간을 공유하게끔 하는 방식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어 시장의 관심을 받았고 지난해 직원도 80명에서 120명으로 크게 늘었다.

문제는 주52시간 근무제다. 이노뎁은 내년 1월1일부터 개정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아 주52시간 근무제를 어기면 이 대표는 징역 2년 이하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 대표는 “정량적인 근로 시간은 줄어들더라도 근로의 질이 떨어지면 안 되지 않느냐”며 “정부의 목표는 고용 창출이니 부합할 수 있어야 하겠는데 쉽지 않아 난감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정보기술(IT)·바이오 중소기업의 터전인 G밸리와 판교 테크노밸리가 주52시간 근무제 앞에 휘청이고 있다. IT·바이오 기업은 업무의 특성상 야근과 집중 근로가 불가피하지만 일괄적인 근로시간 단축 정책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황이다. 중소기업들은 주52시간 근무제를 앞두고 노사 갈등을 겪고 있으며 30인 이하의 영세 기업 대표는 영문도 모른 채 처벌 대상이 될 수도 있다. IT 업계가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인 선택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상황이다.

4일 서울 구로구 G밸리 키콕스벤처센터 앞에서 만난 IT 기업 직원들은 ‘주52시간 근무제’에 대한 대응책이 “전무하다”고 답했다.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전문 중소기업에서 관리직으로 일하고 있는 이모(44)씨는 ‘회사에서 근로시간 단축 대비책을 내놓고 있냐’는 질문에 “기자님이 매뉴얼을 작성해 저희한테 보내주시면 안되겠냐”며 쓴웃음을 지었다. 규모가 큰 기업도 주52시간 근무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게임회사 넷마블에 근무하는 강모씨는 “지금 우리 회사 내부에서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판교 테크노밸리의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주52시간 근무제가 업계의 특성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개발부서의 경우 블록버스터급 신작게임 개발이나 기존 게임의 업데이트가 집중되는 시기에 업무 강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주52시간을 정석대로 지켜가면서 업무 효율성까지 함께 유지한다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형 게임기업 A사의 한 관계자는 “대형 마케팅 행사나 해외 주요 파트너사, 고객사와의 중요한 협업 일정이 있을 때에는 전사적으로 달려들어 준비하고 업무를 진행하는 데 관련 부서원이나 간부가 주52시간 상한 때문에 업무시간을 일부 줄이거나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되면 다른 사내 구성원들의 업무부담이 가중되는 경우가 가끔씩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근로시간 단축이 고용 창출의 목적도 띠고 있지만 실제 목표 달성은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이 많았다. 가뜩이나 IT 인력이 부족한 마당에 중소 업체로 들어오는 사람은 더더욱 적기 때문이다. 최근 2년간 급등한 최저임금도 기업인들에게 부담이다. 구로디지털단지에서 재난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B사를 운영하는 황모(57) 대표는 “인력 채용하기가 진짜 하늘의 별 따기”라며 “사람을 구해도 인건비 부담이 상당한데, 막말로 국가가 돈을 더 대주는 것도 아니지 않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따라 주52시간 준수로 늘어나는 인력충원 수요를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흡수할 수 있도록 관련 비용부담을 정책적으로 감경해주는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근로시간 단축이 비정규직 일자리만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C사를 운영하는 김모(46) 대표는 “저희도 딱히 대책이 없어 비정규직이나 계약직 위주로 직원을 뽑거나 해외에 아웃소싱을 맡기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중소기업 경영인들은 탄력근로제, 선택형 시간근로제 단위기간 확대가 반드시 필요한데 제도화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라고 불만을 제기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3일 법안소위와 전체회의를 잇달아 열어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 이상으로 늘리는 법안을 통과시킬 예정이었지만 여야의 이견으로 결국 ‘빈손’으로 끝났다.

이런 상황에서 업무 시간을 근로자의 자율에 맡기고 단위기간 내의 업무 시간 평균을 내 법정근로시간에 맞추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개정은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다. 경영계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단위기간을 현 최장 1개월에서 1년까지 늘려 업무 자율성을 보장하고 탄력적인 근로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경사노위에서 탄력근로제 합의를 이룬 2월 “탄력근로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지만 이번 논의에서 제외된 선택적 근로시간제 역시 탄력근로제와 함께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지만 이는 경사노위에서 아예 논의되지 않고 있다.

이성진 대표는 “SW 업계의 특성이 있어서 새벽마다 일하면 일의 능률이 높아지는 사람도 있고 아침에 잠깐 일하고 잠을 자는 사람도 있다”며 “탄력근로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IT 기업의 경쟁력을 한층 높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변재현·심우일·백주원기자 humblenes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