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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스토리]80년대 민주화 외치던 '전대협'…與 '뉴 파워맨'으로 떠오르다

참여정부 이후 대거 정치권 입성

초대 의장 이인영, 與 원내대표에

3기 의장 임종석은 現정부 2인자

靑이어 지방정부까지도 대거 장악

한국정치 '새 중심세력'으로 성장

"실력·유연함 없으면 실패" 지적도

“이해찬 대표님 모시고 다시 일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지난 1987년 6월항쟁 때 이 대표님 모시고 국민운동본부에서 일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잘 모시고 우리 당이 정말 넓은 당교를 통해 강력한 통합을 이루고 그것으로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아주 열심히 헌신하겠습니다.”

8일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신임 원내대표가 된 이인영 의원의 당선 직후 일성이다. 첫 소감을 밝히면서 ‘1987년 6월항쟁’을 언급한 것이다. 이 원내대표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초대 의장, 이 대표는 국본 집행위원이었다. ‘86세대(1980년대 학번·1960년대생)’ 운동권 정치인의 대표 격인 이 의원이 30여년 만에 집권여당 원내대표로서 당 대표와 호흡을 맞추게 된 것이다.





이 의원이 민주당을 이끌게 되면서 전대협 세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바야흐로 전대협 세대의 전성시대라는 정치권의 평가까지 나온다.

이번 이 의원의 원내대표 당선은 정치권에서 상징하는 바가 크다. 이 의원은 1987년 고려대 총학생회장, 1990년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냈고 학생운동의 중심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른바 ‘젊은 피’를 수혈하던 2000년 당시 새천년민주당에 영입된 후 최고위원을 거치는 등 민주당 진보정치의 산증인으로 자리를 지켜온 정치인도 이 의원이었다. 일부에서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며 강성 운동권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 의원을 비판하는 발언도 나왔다. 그랬던 그가 집권여당의 원내 사령탑을 맡았다. 2위와의 격차도 예상과 달리 27표 차로 대승이었다. 현 정부 여당 내 전대협 출신들의 막강한 건재를 증명하는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대협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약자로 1987년 8월19일 출범한 뒤 1993년까지 이어졌던 전국 각 대학 총학생회 연합체다. KTX 탈선 사고로 3월 물러났던 오영식 전 코레일 사장이 2기 의장이었고 문재인 정부 ‘2인자’라는 별칭까지 얻었던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3기 의장이었다. 송갑석 4기 의장도 20대 국회에 입성해 현역 민주당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기부터 4기까지 의장 출신이 여권에 포진하며 청와대와 정부, 당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모습이다. 이들 전대협 출신은 보통 지칭되는 86세대보다는 시기적으로 좀 더 좁혀진 세대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송영길 민주당 의원(81학번)과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김민석 전 민주연구원장(82학번) 등이 86세대 맏형으로 5·18광주민주화운동 세대로 규정된다면 전대협은 1987년 민주화 항쟁을 중심으로 활동한 운동권 지도부다.



1986년까지 지하서클 중심이었던 학생운동은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그해 6월 이한열 열사 사망 사건으로 공인된 연대와 조직화의 필요성이 커졌다. 이한열 열사 장례식 문제로 모인 전국의 대학 학생회장들은 ‘전국 단위 조직체’ 결성에 이견이 없었다. 당시 서울지역대학생협의회 회장이었던 이인영 고려대 학생회장이 의장을 맡았고 우상호 민주당 의원(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 부의장을 맡기로 하고 8월19일 95개 대학 3,000여명의 학생들이 충남대에 모여 전대협 출범식을 가졌다. 전대협 세대들은 수배와 고문·투옥으로 목숨마저 위태로운 시절을 거치며 결속력이 더욱 견고해졌다. 특히 전대협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것은 1989년 임수경 방북 사건이다. 86세대와 ‘세대’ 구분이 가능했던 것도 임수경 방북으로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각인된 덕분이었다. 1989년 6월30일 임종석 당시 의장은 3기 전대협 집행부와 함께 한국외국어대생 임수경을 전대협 대표자로 평양에 파견했다. 임수경은 그해 8월15일 문익환 목사, 문규현 신부와 함께 판문점을 통해 돌아올 때까지 ‘통일의 꽃’으로 불리며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언론을 도배했다. 전대협의 존재가치를 뚜렷하게 알렸지만 이후 친북 성향이라는 꼬리표가 지금까지도 따라붙는다.

이들이 정치권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것은 17대 총선이었다. 이인영·오영식·임종석 전대협 1·2·3기 의장이 나란히 국회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 정치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산업화 세력과 권위주의 세력 등 이전의 주류세력을 밀어냈다. 하지만 관료집단 등과 거듭 충돌하며 좌절을 겪었다. 일부에서는 ‘탄돌이(실력 부족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덕에 운 좋게 당선된 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재기에 성공한 것은 현 정부 들어서다. 현 정부 들어서는 의장 출신뿐 아니라 전대협 세대가 각 분야별 핵심파워로서 역할을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원광대 총학생회장과 전북지역조국통일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경력이 있다. 유송화 춘추관장(이화여대)과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국민대), 송인배 전 정무비서관(부산대) 등도 비슷한 시기에 총학생회장을 맡았다.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도 전대협 연대사업국장이었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 의원과 결선투표까지 간 경쟁자 김태년 의원도 경희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도 전대협 세대는 대거 자치단체장에 당선됐다. 대표적으로 허태정 대전시장은 충남대 총학생회 간부로 전대협 활동을 하다 투옥되기도 했고 서양호 서울 중구청장은 전대협 정책위원 출신이다.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 요구와 맞물려 한국 정치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한 셈이다.

다만 정당정치의 뿌리는 허약했고 실력은 목표에 이르지 못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참여정부 이후 대거 정치권에 입성한 전대협 출신은 정치권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또 다른 기득권이 됐다”며 “결국 정치권에 새 바람을 일으키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또 “유연함을 기르지 못한 채 이념편향이 여전하다”며 “실력과 유연함이 전대협 세대에게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송종호기자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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