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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말합니다 "같이 살자"

<일민미술관 기획전 '디어 아마존:인류세 2019'>

인간의 욕망·지배가 초래한 환경문제

설치미술 등 통해 꼬집고 공존 모색

브라질·韓 19팀 참여...8월25일까지

작가그룹 파도식물의 ‘그린허그’는 일민미술관 방문객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때 비로소 만나게 되는 작품이다.




문 열린 엘리베이터 안은 짙푸른 식물들로 가득하다. 화분들 사이로 발 디딜 틈 없으니 겨우 비집고 들어서도 팔다리를 몸에 딱 붙인 채 꼼짝 못하고 서 있어야 한다. 문이 열리기 무섭게 밖으로 튀어나와 참았던 숨을 들이쉰다. 출퇴근 시간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에서도 흔히 겪는 일상이지만 작가그룹 ‘파도식물’은 ‘그린 허그(Green hug)’라는 제목의 이 설치작품을 통해 자연의 입장에서 세상을 다시 봐주길 청한다. 인간의 욕망이 지구 전체를 장악해버린 상황에서 설 곳은커녕 살 곳도 없어지게 생긴 자연의 속삭임이 들릴 듯하다. ‘같이 살자.’

광화문 광장 앞 세종대로에 위치한 일민미술관에서 한창인 기획전 ‘디어 아마존:인류세 2019’는 이처럼 전 지구적 환경문제를 주제로 인간과 생태계의 공존을 이야기한다. 전시제목의 ‘인류세’는 네덜란드 과학자 파울 크뤼천이 환경문제를 분석하며 ‘인간이 지배하는 지질시대’를 가리켜 쓰기 시작한 용어다. 지구의 산소탱크로 세계 산소의 20%를 만들어내는 아마존을 보유한 브라질 작가들이 주축을 이루고 한국 작가들도 동참했다. 19팀의 작가들이 미술관 3개층 전시장은 물론 옥상에서까지 작품을 선보였다.

신시아 마르셀의 영상 3부작 ‘폰테 193’(왼쪽부터), ‘교차’, ‘475볼버’. /사진제공=일민미술관


브라질 작가 신시아 마르셀의 영상작품 3부작은 멀리서 보면 O,X 등의 도형으로 이뤄진 추상작품 같다. ‘폰테(Fonte) 193’은 큰 원을 그리며 제자리돌기 하는 살수차가 계속 물을 뿌리고, ‘교차’는 수직으로 만나는 길을 따라 연주대가 일사불란하게 걸어 다니고, ‘475 볼버’의 중장비 트럭은 팔(8)자를 그리며 땅을 파댄다. 전시를 기획한 조주연 학예실장은 “인간 혹은 인간이 만들어낸 사물의 반복되는 움직임을 통해 자연과 도구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시도했다”고 설명한다.

작가 마르셀은 이들 작품으로 지난 2010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미래세대 예술상’을 받았고 지난 2017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브라질관 대표작가로 참가했다. 티아고 마타 마샤두의 ‘세기’는 좀 더 직접적이다. 널찍한 공터로 쓰레기 한 두 개가 떨어지는가 싶더니 플라스틱·양철통·타이어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던져진다. 9분37초짜리 영상은 순식간에 쓰레기 더미가 쌓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게 우리 현실의 모습이다. 얼굴 없는 손이 물건을 집어던지는 속도감이 우리가 처한 환경문제의 절박함과 비례한다.

티아고 마타 마샤두 ‘세기’


손혜민 ‘집단 발효’ 프로젝트.


마르셀 다린조 ‘제3차 세계대전 중 당신의 삶’은 한국 퍼포머 8명이 참여해 암울한 미래에 대한 경고를 전한다. /사진제공=일민미술관


1층 전시장 안쪽 방에는 마르셀 다린조가 한국 퍼포머 8명과 함께 ‘제3차 세계대전 중 당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대로 살아간다면 행위예술가들이 보여주는 멍하고 무력한 모습이 우리 자화상이 될 것 같아 섬뜩하다.

심각한 주제를 재치로 포장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발가벗은 남자가 이리저리 뻗은 배수관으로 자신의 성기와 얼굴을 가리거나, 반투명 비닐텐트 혹은 과녁판이나 그림 뒤에 자신을 숨기고 있다. 작가 귀 퐁데의 ‘캐릭터들’은 누드 남자의 몸을 붕괴 직전의 근대 건축물과 연결해 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립상황을 은유한다. 알렉산드로 브란다오는 시멘트 바닥에 우연히 새겨진 나뭇잎을 발견하고는 인간이 제아무리 자연을 뜻대로 장악하려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흰 모래 위에 숯가루 섞인 모래공을 군 설치작품은 관객도 만지고 굴려볼 수 있다.



귀 퐁데 ‘캐릭터들’


이 전시는 작가들 외에 문학가,환경운동가,정원전문가 등도 함께했다. 3층 프로젝트룸에는 라운지가 마련돼 명상과 요가, 낭독퍼포먼스를 음미할 수 있고 ‘집단발효’ 작업 때문에 익어가는 과일향기까지 자욱해 5감을 충족시킨다. 의자나 매트에 몸을 뉘고 자연과 함께 살아갈 미래를 생각하기 충분하다. 8월25일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사진제공=일민미술관

루카스 밤보지 ‘푸사지뇨(Puxadinho·멋쟁이)’ /사진제공=일민미술관


송민정 X 위지영 ‘날씨 팟캐스트’


일민미술관의 ‘디어 아마존:인류세2019’ 전시 전경.




파도식물의 ‘전시를 관람하는 식물들’은 로봇 청소기 위에 놓인 화분들이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설치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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