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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 "아껴서 남주는 게 진짜 행복… 이제야 철 좀 드는 것 같아"

남들 가진 것들 부러워 말고

내 것 베푸는 게 가치있는 삶

예순살 되서야 어른 되는 듯

70넘어 보람있었다 생각되면

인생 제대로 살았다 느껴도 돼

어린 시절엔 툭하면 아픈 약골

부모님들 20살 넘길까 걱정도

조심하며 살았던 게 장수 비결

16년전 아내가 먼저 세상 떠나

돌이켜 보니 부부간의 사랑은

연정 뛰어넘은 인류애 같은 것

100세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성형주기자




“이제 백 살 되는 사람 만나러 오면 돈을 좀 받고 그래야겠어요.(웃음)”

기자가 ‘100세 철학자’ 김형석(사진)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만나 ‘백 살 되신 분은 처음 뵌다’며 놀라움을 표현했을 때 그가 아기처럼 웃으며 들려준 대답이다. 김 교수의 예상치 못한 농담에 기자의 긴장은 한순간에 풀어졌다. ‘시간여행자’를 만난 듯 ‘100년을 산 사람’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컸지만 실수는 하지 않을지, 세대차이로 의사소통은 잘될지, 실례가 되는 질문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지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유쾌한 농담으로 시작한 대화는 끊임없이 즐거웠고 어려운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아 편안했다. 우문(愚問)을 하더라도 오래 생각하지 않고 잔잔하게 들려주는 현답(賢答)은 그 자체가 메시지였다. 김 교수에게는 10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보다 인간적인 깊이가 더 느껴졌다.

100세라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웠다. 먼저 소감부터 물어봤다. 그는 “올해 생일(4월)이 될 때까지는 99세라고 생각했는데 하루를 건너니 백 살이 됐다”면서 “그때는 그저 내 나이 같지도 않고, 내 나이가 몇 살인지도 모르겠다”며 가만히 웃었다. 그는 이어 “누가 몇 살이냐고 물어보면 이야기하지 못할 것 같다”며 “그저 보이는 대로 부르라고 해야지”라고 덧붙였다. 기자가 곧바로 “70세 같으시다”고 하자 그는 그저 웃음으로 받아넘기더니 “백 살쯤 되면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하루 또 어떻게 사노’ 하고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오늘 주어진 일을 잘 마무리하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니 젊은 사람들과 하루의 출발이 좀 다르다”는 대답을 들려줬다. 김 교수에게 나이는 한 살, 두 살 이렇게 세는 단위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하나의 단위이자 ‘영원’이라는 시간을 통해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스무 살이면 법적으로 성인이지만 서른에도 철들지 않은 사람이 많은 세상이다. 나아가 아예 철들고 싶지 않은 ‘피터팬’도 많은 요즘이지만 철이 든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깊어짐을 의미한다. ‘100세 철학자’가 보기에 철드는 나이란 대체 몇 살일까. 김 교수는 “예순 살에야 어른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60세가 돼야 내가 나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내 친구인 김태길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김형석 교수는 철이 늦게 들어 오래 살 거야’라고 했다”면서 “자기가 먼저 철이 들었다는 의미인데 오래 사는 것을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며 웃었다. 그렇다면 가장 철들지 못한 행동 가운데 기억나는 게 무엇이냐고 묻자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데 2~3년 전 글을 보면 ‘그때 철들지 못했구나’라고 생각한다”며 “솔직히 요즘에야 철이 들기 시작하는 것 같고 백 살이 넘었으니 좀 더 철이 들 것 같다”고 했다. 다소 무례한 질문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몇십년 전 유럽에서 만났던 젊은 부부 이야기를 들려줬다. “남편은 그림을 그리고 부인은 애를 데리고 책을 읽고 있었어요. 그 풍경이 아주 행복해 보였어요. 직업이 뭐냐고 물으니 생산직 기능공이래요. 그런데도 그림을 그리느냐고 물으니 취미라고 하더라고요. 아내도 고등학교 시절부터 문학책 읽는 게 취미래요.” 김 교수가 ‘참 행복해 보인다’고 하니 자기는 사장은 절대 안 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사장이 되면 회사 걱정으로 쉬지를 못하는데 자기 시간을 갖고 사는 게 행복하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도 남부러워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남과 비교하는 순간 불행해지고 남과 비교해 우월해지며 느끼는 행복은 과연 얼마나 순도가 높은지를 자문하게 하는 말이다.



건강 역시 행복의 조건 중 하나다. 김 교수는 틀니나 보청기도 끼지 않았고 보기에도 건강한 것 같았다. 그에게 비결을 물으니 “다른 사람보다 일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 교수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 ‘왜 우리에게 기독교가 필요한가’ ‘행복 예습’ ‘100세 철학자의 인생, 희망 이야기’ 등을 잇달아 출간했다. 그는 “나처럼 오래된 사람들을 살펴보니 뭐든지 무리하지 않는다는 게 공통점이었다”며 “남 욕을 하지 않고 화를 잘 내지 않으며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들이 오래 사는 것 같다”고도 했다. 의외로 그는 어렸을 때 허약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스무 살까지나 살 수 있을까 걱정했을 정도였고 40~50세까지도 다른 사람보다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이 약하게 태어나고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조심조심 살았던 것도 건강의 비결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그의 답변을 들어보니 100년 가운데 단 한 장면을 골라달라는 것 자체가 우문이었던 것 같다. 김 교수는 행복에는 단위가 있다고 했다. 그는 “행복이란 학창 시절에는 뭐든 즐겁게 하는 것인 것 같고 20~30대에는 성취하고 성공하는 데서 느끼는 것 같다”며 “돌이켜보니 일흔 살이 넘어 보람 있게 살았다고 느끼면 행복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인생의 단위마다 즐겁게 살고 성공하고 보람 있게 사는 게 행복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그는 가장 높은 단계의 행복도 있다고 했다. 바로 안 쓰고 아꼈다가 남을 위해 내놓는 행위다. “얼마 전에 장학재단을 운영하시는 분을 만났는데 행복해하시더라고요. 그런 행복은 수준 높은 행복이죠.” 기자가 ‘그런 분들을 존경은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측면도 있다’고 하자 그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아는데 자식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안 먹고 남겼다가 주는 그런 것과 비슷한 행복”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의 아내는 16년 전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떠날 때까지 20년 넘게 병간호를 했다. 20년이라는 세월은 사랑하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에게 사랑이란 무엇이냐고 묻자 “젊었을 때의 사랑은 연애하는 감정인 ‘연정’이다. 결혼하고 가정을 가지면 연정이 애정으로 변하고, 내 나이가 되면 부부간의 사랑도 인간애로 변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연애할 때는 배타적이 된다. 우리끼리 사랑해야 하거든. 가족을 꾸리면 더불어 사랑하게 되고 인간애가 되면 누구나 다 사랑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100세 어르신을 만나니 별것이 다 궁금했다. 어떤 연예인을 좋아하셨느냐고 물었다. “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가 영화 심사를 해달라고 해서 영화를 많이 봤는데 그때는 윤정희씨, 장미희씨가 예뻤어요. (웃음) 연예인이 좋다 이런 건 아니고요. 인간 나름으로 좋아지는 사람이 있고 덜 좋아지는 사람이 있고 그렇죠. 살아보니까 직업인으로 남는 사람은 재미가 없어요. 군인이 군인으로 끝나면 재미가 없어요. 연예인도 마찬가지죠. 인간미가 있어야 해요. 우리 교수 친구들도 늙도록 친구가 되는 것은 학자라서, 교수라서가 아니라 인간이라서 좋은 거예요.”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He is

△1920년 평안남도 대동 △1943년 일본 조치대(上智大) 철학과 △1947년 중앙중학교 교사 △1954년 연세대 철학과 조교수 △1964~1985년 연세대 교수 △1977년 연세대 학생상담소 소장 △1979년 연세대 인문과학 연구소장 △1985년~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 △1990년 제1대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회장 △상훈 국민훈장 모란장, 제1회 인제인성대상, 제2회 연문인상, 제6회 숭실인상 형남학술대상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 “2030, 돈 보다 평생을 살고 싶도록 만드는 원동력 찾았으면”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살아온 100년의 삶에는 격동의 역사가 오롯이 녹아 있다. 그는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분단과 한국전쟁, 경제성장, 민주화운동, 외환위기 등을 거쳤다. 10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나라도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쳐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2030 청년들은 현재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부르며 삶이 힘겹다고들 한다. 청년들에게 지혜를 들려달라고 했다.

김 교수는 “연세대 학생들을 봐도 졸업을 앞두고 대다수는 취업 걱정을 한다”며 “아버지가 기업가라든가 큰 사업을 하면 별다른 걱정을 안 하는데, ‘금수저’라고 한다죠”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들려주고 싶은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제가 아는 사람이 조선왕조 마지막 왕실에서 재산을 많이 물려받았거든요. 서울대에서도 성적이 우수해 기대가 컸는데 재산을 관리하느라고 직업을 못 가졌어요. 재산을 관리하면서 60세가 넘었을 때 만났는데 ‘차라리 가난하게 태어났으면 직업이 있고 삶의 영역이 있었을 텐데 재산 때문에 내 인생이 모두 사라졌다’고 하더라고요. 받은 돈은 소중하지 않아요. 내가 번 돈이 소중하지. ‘금수저’라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에요.”



다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그는 “내 친구인 김태길 서울대 철학과 교수(2009년 별세)와 안병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2013년 별세)는 모두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다”며 “저는 가난해 초등학교도 대충 다녔지만 얻은 것도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생이라는 100리 길을 50리부터 시작한 사람은 나머지 50리밖에 얻지 못하지만 0에서 시작한 사람은 100까지 얻을 수 있는 성취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 않고 비현실적인 교과서 같은 말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성취감이라는 것은 오늘 하루나 한 달, 1년, 평생을 살고 싶도록 추동하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는 게 노학자가 전하고 싶은 삶의 지혜라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우리 청년들이 남과 비교하지 말고 제 갈 길을 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교육자인 저에게도 책임이 있는 문제”라며 “획일적으로 한 줄을 세우는 교육이 문제지만 그럼에도 다들 가고 싶은 길을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중학교 동창인 윤동주는 중학교 때 지금은 병아리 시인이더라도 나중에 큰 닭이 되어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줄 것 같았는데 결국 그렇게 됐다”며 “선배인 소설가 황순원도 60~70세가 되면 큰 작가가 될 거라고 했는데 그렇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 조치대 철학과 출신이다. 경제적인 부유함과는 거리가 먼 선택이었지만 가난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다 보니 남보다 앞서게 됐다고도 했다. “저희 연세대 문과대학 교수들은 세브란스병원 교수 의사들보다 봉급이 적어요. 의사들은 고생을 많이 하니까 많이 받아야죠. 그런데 저는 철학에서 앞서니까 세브란스병원에서 강의도 많이 해서 좀 뒤처지는 의사보다 많이 벌었을 걸요. (웃음)”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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