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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진단] 농가소득 24%가 보조금...24년간 혈세 186조 넘게 쏟고도 경쟁력 퇴보

<개도국 지위상실 위기 韓 농업 실태 어떻길래>

팔 곳 생각않고 농사...남으면 정부서 구입·소득 보전

'과보호' 농업 빗장 풀리고 재정투입 줄면 타격 불보듯

'식량안보' 명분 지원 아닌 시장 지향 생산구조로 바꿔야

지난달 18일 경기도 이천시 호법면에서 농민이 콤바인으로 벼를 베고 있다. 미국이 한국을 WTO 개도국 지위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농산물 생산에 타격이 예상된다. /연합뉴스








전 세계 개방경제 흐름을 거슬러 빗장을 걸어 잠갔던 국내 농업 분야가 서서히 임계점에 다가서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농업 등을 겨냥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부자나라들이 개발도상국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하라”고 자국 통상당국에 전격 지시하면서다. 한국 농업은 치열한 글로벌 경쟁무대에서 사실상 외딴섬으로 정부의 과잉보호를 받아왔다. 지난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당시 농업을 제외하고는 개발도상국 특혜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해 보호 대상이 됐다. 보호 수단은 높은 관세와 각종 소득지지용 보조금 지급이었다. 그 결과 글로벌 경쟁력은 오간 데 없고 대외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수출 기여도는 미미하다.

지금까지 농가는 굳이 ‘팔 데’를 생각하지 않아도 됐다. 남으면 정부가 사주고 값이 떨어지면 소득을 보전해주기 때문이다. 시장 논리와 동떨어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생산량 증대→공급 과잉→가격 하락→정부 지원→소득 보전’의 고리가 이어지다 보니 굳이 ‘팔 생각 없이’ 작물을 재배해도 됐던 것이다. 최근 생산량 급증으로 가격이 급전직하한 양파·마늘을 정부에서 전량 수매하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흐름이다.



쌀이 대표적이다. 국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80년 132.4㎏에 달했지만 지난해 61㎏까지 떨어졌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이런 추세가 심화해 향후 10년간 연평균 1.9%씩 쌀 소비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쌀 소비는 감소하는데 생산량은 되레 소폭 늘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1980년 이후 지난 38년간 쌀 재배면적은 연평균 1.3% 축소됐지만 총생산량은 0.2% 증가했다. 농심(農心)에 약한 정부·정치권은 대체로 농가 편에 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농가의 평균 연소득은 4,206만원으로 1년 전보다 10% 늘었다. 2005년 농가소득이 3,000만원대에 올라선 후 13년 만에 4,000만원을 돌파했다. 고무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농가소득이 증가했다고 하기가 머쓱하다. 농가소득 가운데 각종 보조금 등을 포함한 이전소득이 989만원으로 전체 소득의 23.5%를 차지했다. △2014년 681만원 △2015년 791만원 △2016년 878만원 △2017년 890만원으로 꾸준히 늘던 이전소득이 급기야 1,000만원에 다가선 것이다. 지난해 농가소득 가운데 농업소득이 1,292만원으로 1년 전보다 28.6% 대폭 오른 영향이 더 크기는 하지만 이 역시 정부가 2017년 9월 남아도는 쌀 37만톤을 사들인 덕에 쌀값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농가소득을 정부의 재정 투입으로 상당 부분 올려준 셈이다.

쌀값 변동에 따라 발동 여부가 결정되는 변동직불금을 제외한 농가소득·경영안정 예산은 지난해 2조4,376억원에서 올해 2조8,326억원으로 16.2% 급증했다. 재고쌀을 보관하는 양곡관리와 농산물 유통 예산도 3조3,101억원에서 3조6,249억원으로 9.5% 늘었다. 1992년 시장개방 이후 2015년까지 각종 농가 및 농업 보호 등에 쓰인 재정(투자·융자)이 무려 186조원에 달한다. 미국 농무부에 따르면 과거 1991~2000년 연 3.7%였던 총요소생산성 성장률은 2001~2012년 1.8%로 반 토막 났다. 총요소생산성은 노동·자본을 뺀 기술과 경영혁신 등이 생산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한 경제 전문가는 “농업의 특수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더라도 식량주권·식량안보를 내세워 빗장을 걸어 ‘쇄국’하는 것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고 꼬집었다.

이런 우려는 국제기구에서도 나온다. OECD는 지난해 한국 농업을 평가한 보고서에서 “OECD 국가 가운데 농업인에게 가장 높은 수준의 지원과 보호를 제공하는 나라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농업정책의 주류가 주요 곡물 생산과 농가의 소득지원에 맞춰졌다는 것이다. OECD는 “전체 생산자 지지 지원 정책의 90% 이상이 개별 품목의 생산과 연계됐다”면서 “이런 형식의 지원은 농가가 시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개입이 아닌 품목 선택의 유연성을 제고해 시장 지향적인 농업 생산으로 구조변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찬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일방적인 농가 보조금 지급 비중은 줄고 대신 융자 비중이 늘어나는 등 정책변화는 시도되고 있다”면서도 “현재와 같은 보조금을 농가에 나눠주는 방식에 대한 개선의 필요성은 분명 존재한다”고 말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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